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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륭짱 Aug 26. 2023

순례 22일 차: Don't worry?

26.9살 막바지에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22/11/10 목요일 Walking D+20 & Stayed 2(Logroño, Leon)

Hospital de Orbigo(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 Astorga(아스토르가) 약 17km


아스토르가의 한 아파트.

좋은 숙소에 나무로 된 테이블에 앉아 밀린 일기를 쓰고 있다.

벌써 순례길을 걸은 지 22일째라고 하는데, 정말 믿기지 않지만.. 어떻게든 걸으면 끝이 보이는구나 싶었다.




아직 K언니의 목소리가 낫지 않아서 오늘은 비교적 짧은 거리인 약 17km를 걸었다. 다 같이 아침에 일어나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갔는데, 배낭을 메고 걸으니 확실히 발에 무게가 실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진 아침이었다.

그래도 하나 다행인 건, 아직까지 나의 체력이 괜찮다는 것이었다.



아스토르가로 향하는 귀여운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갔다. 고생 끝에 도착한 아름다웠던 마을을 바로 떠나려고 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다음 마을에 있는 숙소가 꽤나 좋기 때문에 훌훌 털고 걸어갔다.


흙길과 자갈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간간이 있는 포장도로는 또 왜 이리 반가운 지.


얼마나 더 걸었을까? 약간 경사진 흙길 끝에는 누가 봐도 쉬었다 가라고 만든 긴 의자가 딱 하나 놓여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커다란 십자가도 함께 말이다. 그렇게 4명이 옹기종기 그 의자에 앉으니 딱 맞았다.

 

나는 크게 한숨을 돌리며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붉은색 흙길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생각보다 오래 쉬진 않은 것 같았다.

다시 엉덩이를 털고 가방을 메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날씨는 맑았지만 똑같은 풍경에 계속되는 걸음에 살짝 지칠 때쯤 음식을 파는 작은 상점이 나타났다. 그곳에 가니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있었고 모두 음식을 나눠먹으며 쉬고 있었다.

기부제로 운영되는 이 상점을 둘러보았는데, 마땅히 먹을 게 없어서 우린 쎄요(도장)만 찍고 나왔다.


 

이때 난 약간의 해프닝이 생겼었다. 그건 바로 갑자기 통장에 약 200만 원 조금 넘게 돈이 입금이 된 것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온 것이라 돈이 들어올 곳이 없는데?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 직장에서 오송금을 했었던 것이었다. 순간 웬 꽁돈이야! 하고 좋아했던 나 자신이 참으로 민망스러워진 순간이었다.

(돈은 다시 잘 돌려주었다)


그리고 N언니가 한 순례자와 얘기를 했는데 그때 산티아고 미사 얘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언제까지 가면 향로미사를 볼 수 있다고 말했던 모양인 것 같았다. 그렇게 갑자기 산티아고 향로미사에 꽂힌 우리들은 그것을 보기 위해 남은 거리들을 계산하고 날짜를 맞추며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게 되었었다.




아스토르가까지는 이곳에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부지런히 걸어갔다.

그리고 또 하나 배가 몹시 고팠기 때문에 빨리 가서 밥을 먹고 싶어 부지런히 걸어갔다.


아스토르가를 향해 걸어가는 나

저 멀리 마을이 보이고

도착한 끝에



곧장 햄버거 집으로 들어갔다.

빵이 심각하게 딱딱했지만, 패티는 육즙으로 꽉 차있어 너무 맛있었다.

감자칩은 레이즈(*Lays : 시중에 파는 감자칩 과자) 같았지만, 그래도 짭짤하니 시원한 콜라와 딱이었다.



햄버거를 든든하게 먹고 숙소까지 걸어갔다.


ASTORGA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제야 이곳에 도착했구나!라고 실감이 되었다.


맥주는 병이지요


깔끔하고 모던한 숙소에 일찍 도착하여 장도 보고 빨래도 하고 일기도 쓰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못다 마신 맥주도 마시면서.


그리고 이날, 엄마와 아주 오랜만에 통화를 했는데, 감기 걸린 목소리를 들켜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만들어 버렸지만 그래도 통화를 하고 나니 왠지 모른 개운함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개운하고 뿌듯한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나하면


내일은 바로 "철의 십자가"를 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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