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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륭짱 Oct 02. 2023

순례 28일 차: 빗속에서 만난 100km

26.9살 막바지에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22/11/16 수요일 Walking D+26 & Stayed 2(Logroño, Leon)

Sarria(사리아) -> Portomarin(포르토마린) 약 22km


오늘은 N언니 없이 3명이서 걷는 날이었다. 4명이서 함께 걷는 것이 제일 좋지만, 건강문제과 다른 이유로 무리하지 않겠다던 N언니의 상황이었다. 무리하지 않는 게 최우선이다.




아침부터 비가 와 우비를 쓰고 걸었던 우리였다. 역시 갈리시아 지방이다. 숲 속과 아스팔트를 걸어갔는데 꽤나 그 길은 운치가 있었으며 멋있었다. 그래서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 기분은 은근 재밌었다. 이전엔 비 오는 날 걷는 걸 싫어했었는데, 몇 번 경험해 보니 익숙해진 탓일까? 금세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 


아무래도 비 오는 날은 걷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걷고 빗소리에 집중을 하며 차박차박 걷는. 이런 날은 정말 다른 음악이 필요 없었다. 


바로 빗소리가 음악이니까!


오르막을 오를 땐 마냥 힘만 들었지만 내리막은 많이 달랐다. 온 신경이 발 끝과 바닥에 고정이 되어있어서 시간이 배로 걸리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길을 계속 걷고 걸었다. 우비를 입고 걷는 것은 조금 힘들었지만, 언니들과 같이 걸어서 괜찮았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한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햄버거를 팔고 있었다. 당연하게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세트로 알고 주문을 했는데, 알고 보니 단품메뉴여서 감자튀김만 따로 시켰다. 모든 일엔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한번 더 깨달은 나였다.


특이하게도 햄버거 중앙을 잘라놓았던. 또 그 안엔 노른자가!


생각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햄버거를 많이 먹었다. 그만큼 간단하고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햄버거였는데, 과연 패스트푸드의 일인자다웠다. 흔한 체인점의 햄버거와는 다른 수제 버거들이어서 맛도 제각각이었다. 어디는 패티의 육즙이 예술이었으며 어디는 번이 굉장히 딱딱했던.. 같은 햄버거이지만 비교하는 맛도 있었던 즐거운 순례길이었다.


다 먹은 우리는 우비를 챙겨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근데 문을 열자 바로 앞에 소떼들이 지나가는 게 아닌가?! 거의 몇 십 마리의 소들이 줄지어서 길을 따라 가는데 실로 진귀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소들이 다 지나간 후에야 뒤따라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오늘은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100KM인 지점을 지나는 날이었다. 그 말은 즉, 남은 거리가 2 자릿수가 되는 날이기도 했다. 매번 앞자리 수가 바뀔 때마다 마냥 기뻤던 나였는데, 이젠 갈수록 걸을 거리가 줄어드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기도 했다. (이제 이 짓(?)을 3번만 더 하면 된다는 마음과 순례길이 끝나간다는 아쉬운 마음 반반이었던)


눈앞에 지나가던 소떼
100km 지점에서

포르토마린까지의 길은 쉽지 않았다. 우선, 비가 내리기도 했고 길도 평탄하지 않았었는데 그러다 우연히 중간에 한 한국인 순례자를 만나 덕분에 쉽지 않은 길을 재밌게 같이 걸을 수 있었다. 혼자 순례길을 온 이 분은 여자였고 나이도 우리 또래였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 언니) 나이대가 비슷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내리막길에 다다른 우리였다.


마을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내리막이 너무 심했으며 비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빗길에 한번 넘어진 경험이 있었기에 또다시 넘어지고 싶지 않아서 정말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갔다. 발목도 시큰하게 아파 나중에는 다리를 절다시피 했는데 


"조금만 참자..! 조금만..!"


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숙소 도착해서, 통증이 있는 부위에 파스를 붙였다)


마치 닌자처럼. 빨간 우비는 나, 파란 우비는 B언니


기나긴 빗속에 드디어 포르토마린 마을에 도착을 했다. 모두들 너무 고생이 많았다.


난 다 같이 걷고 무사히 도착을 해서 

"고생했다" 

이 한 마디가 참 위로가 되었다.


같이 추억을 만들어가는, 그 추억 한 페이지에 언니들이 있어서 힘들지만 행복한 날이었다. 이제 3일만 걸으면 순례가 끝이 나는데 아직까지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마지막까지 무사히 완주할 수 있길 바라며.. 그럼 아디오스!


Go to Portomarin across the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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