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9 토요일 Walking D+29 & Stayed 2(Logroño, Leon)
Arzua(아르주아) -> Santiago de Compostella(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약 38km
지루하고도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산티아고에 가는 날이자 그곳에 도착하는 순례의 마지막 날이었다. 어김없이 다른 날과 같은 하루이지만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너무도 다른 그런 날이기도 했다.
19일 토요일, 이른 아침 아직 껌껌한 하늘아래 우리는 숙소에서 제공해 주는 아침을 간단히 먹고 마지막이 될 순례길을 떠났다. 특별히 오늘은 H오빠와 동행을 했는데 너무 신기하게도 프랑스에서 만난 우리는 처음과 끝을 같이 한 사이가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완벽한 밤처럼 어두운 아침이었다.
H오빠가 있어서 그나마 덜 무서웠다. 이때 느낀 건 역시 혼자보단 둘이 낫구나, 사람이 많을수록 좋구나- 한 것이었다.
복잡한 마음과는 대비되는 조금은 조용한 순례길이었는데 한걸음 한걸음 떼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었다. 그렇게 H오빠와 두런두런 얘기를 하며 어둡고 진흙투성인 길을 천천히 걸었다.
어두웠던 하늘은 차차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산티아고와의 거리도 차츰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지막 날,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중간에 한 보카디오 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 샌드위치와 햄버거를 맛있게 먹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마지막 날, 나를 설레게 만든 순간이...
보카디오 집에서 생긴 일
나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테이블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뒷문으로 사람들이 엄청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진 30일 동안 걸으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들이었는데, 그중에서 한 여성분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며 엄청 반갑게 인사를 했다.
"Asian girl~~~!!"
먼저 인사를 건넨 그분도 같은 아시안 사람이었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순례길에서 동양인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었다. 그래서 우리 보고 엄청 반가웠다고..!
홍콩 university 교수님인 그분은 제자와 함께 왔는데 교수와 제자가 같이 여기에 온다는 사실이 우린 너무도 놀라웠다. (사실 지금도 놀라움)
순례길엔 여러 루트가 있는데 우린 프랑스길을 걸었고 그분들은 북쪽길을 걸어서 얼굴을 마주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들어온 사람들도 다 북쪽길 사람들이었는데 그 길이 제일 어렵고 험난해서 그런지 모두들 파이팅이 넘치고 그들 간의 유대감도 끈끈해 보였다.
우린 점심을 다 먹고 다시 출발하려고 우비를 입었다. 알다시피, 우리의 우비는 빨강/파랑/연두/핑크 등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색깔이었는데 갑자기 누가 밥 먹고 있는 북쪽길 순례자한테 뜬금없이 질문을 했다.
"which color do you like?"
대충 우리의 우비 색깔 중에 무슨 색을 제일 좋아하니? 이렇게 물은 것 같았다.
그 순례자는 내가 입은 red우비를 골랐고 난 기쁜 마음에 주먹인사를 하려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주먹인사와 동시에 갑자기 일어나더니 갑자기 나를 포옥 껴안은 것이었다.
만만치 않은 덩치를 가진 내가 키가 매우 큰 그의 품에 쏘옥 들어갔는데 그 순간 심장이 너무너무 뛰어서 얼굴이 우비색깔처럼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순례길을 더욱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들어준 북쪽길 사람들 덕분에 산티아고까지 가는 길이 비도 오고 힘도 많이 들었지만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았다.
1. 보카디오 집에서 우비를 입고 2. 산티아고에서 완전체로 모인 - 홍콩 교수님과 함께 / S는 사진을 찍었답죠..코쓱
우리는 보카디오 집에서 만난 홍콩 순례자와 함께 걸었다. H오빠는 교수님과, 언니들과 나는 그 제자분과 나뉘어 걷게 되었다. 알보고니 이분은 홍콩에서 전공이 한국어였고 조금의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본인이 한국어 전공인 걸 부끄러워했었던. (아마,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아무튼, (편의상 S라 지칭하겠음) S와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걸으면서 얘기를 꽤 했는데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처음 본 S와 솔직하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나 스스로가 조금은 신기했다. (낯선 곳에서 나오는 이상한 자신감이랄까)
잠깐의 만남 후 우리는 산티아고를 향해 계속 걸었다. 안개가 많이 꼈으며, 비도 오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땅히 쉴 곳도 없어서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면 우비를 돗자리 삼아 깔고 쉬었는데, 사유지라며 앉자마자 쫓겨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렇게 제대로 쉬지도 못했던 마지막 순례길이었는데,
그래도 점점 줄어드는 KM를 보니 지금 쉬는 것보다 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핸드폰으로 구글맵을 보며 산티아고 숙소위치를 계속 확인했다. 계속 새로고침을 하며 남은 키로수를 확인했다. 핸드폰을 보면서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지났을까 그 많던 나무들이 점점 사라지고 큰 도로와 자동차들이 가득해졌다.
그렇다.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을 한 것이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는 사진을 남기고 바로 이어서 성당으로 갔다. 급격하게 날씨는 어두워졌고 비도 많이 와서 이때부터 체력이 점점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앞장서서 걷고 있는 나는 오늘만큼은 그들을 에스코트하고 싶었다. 편안하게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내가 길을 찾고 성당과 숙소까지 안내를 하고 싶은 남모를 책임감이 있었다. (믿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고 싶었던)
산티아고에 들어서고, 성당까지는 얼마 걸리진 않았는데 비 때문에 계속 들고 있던 핸드폰에 액정이 비로 가득해서 안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배터리도 간당간당 했었다. 액정을 닦으며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자 저 멀리서 반짝이는 성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순례자들도 꽤 있었고 모두들 가는 방향이 같아서 그냥 사람이 많은 쪽으로 걸어 나갔다.
점점 성당이 가까워지고 밝은 쪽으로 가니 말로만 듣던, 우리가 마침내 오고 싶었던 산티아고 대성당이 눈앞에 거대하게 있었다.
실제로 보자, 긴장이 풀려서일까 생각보다 엄청난 큰 감정보다는 그저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더 컸었다.
산티아고 도착!!
이렇게 약 한 달간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났다. 유럽땅을 밟은 것도 처음이고, 장기여행도 처음이고, 이렇게 오래 걸은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분명 미숙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며 아쉬움도 많았겠지만 이런 부분 또한 솔직하게 인정하니, 더욱 나다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마주하기 어려운 것은 부족한 나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발전시켜야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가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여행이었다.
거창한 무언가를 얻고 온 건 아니지만, 인생사 다 그렇듯 보통의 평범한 날에 이렇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음에 매번 감사함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