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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Sora Jun 08. 2024

육아하며 대학원 다니기가 가능할까?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대학원 과정 중에 임신 출산 육아가 다 겹쳤다.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중간에 포기할까,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을 수차례 했다.

그나마 임신했을 때는 편했다.

많은 임산부들이 싫어하는 말이지만

(나의 경우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했다.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대학원을 병행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아기가 겨울에 태어나서 대학원 개강까지 시간을 좀 벌 수 있었다.


그렇게 대망의 개강일이 되었다.


대학원 수업을 듣는 날,

정말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쐬었다.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얼굴에 달라붙는 3월의 공기가 이렇게 차가운지 몰랐다.


학교에 도착해 강의실에 들어갔다.

교수님께서는 열정적으로 수업을 해주셨다.

그런데, 교수님께 죄송하지만,

솔직히 수업 내용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모유수유 텀시간을 계산하고 있었고, 아기가 나 없이도 잘 지내는지,

혹시 젖병으로 먹다가 토하지는 않았는지,

이번주에 쿠팡에서 시킬 물건이 뭐가 있더라, 아 기저귀 빨리 시켜야지,


이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게다가

중간중간 몇 차례 고비들이 있었다.


중간고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아기는 울어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그냥 내 낮잠을 포기했다. 학부생일 때는 백 점을 목표로 공부했는데 지금은 그냥 성의를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볼펜만 잡으면 아기가 운다. 다음장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육아하며 백점은 사치다.


그리고 과제 발표도 준비해야 했다. 컴퓨터를 켜면 아기가 울었다. PPT 표지만 만들었는데 하루가 다 갔다.



또 한 번은 수업이 좀 길어진 적이 있었다. 분명 수유패드를 내 브래지어에 붙이고 나왔는데 젖가슴은 참지를 못하고 수유패드와 브래지어를 넘어서 옷에 뚝뚝 떨어진다.

아, 드라마에서만 보던 상황인데 나도 겪게 되다니.

너무 민망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른 사람들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가방으로 가슴을 가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재빨리 집으로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약해졌을 때가 있었는데, 바로 아기가 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지금 생각하면 아기가 아픈 것도 아니고, 위장기능이 아직 미숙하여 아기가 토하는 것은 대수가 아닌데도 그날따라 그 소식을 듣고

집 나간 엄마는 대역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우당탕탕 한 학기를 마쳤고, 얼떨결에 마지막 학기만 남겨두었다.

과연 남은 학기를 마저 끝낼 수 있을지 여전히 의구심이 들지만,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던 것은 남편과 양가부모님 덕분이다.


육아는 정말 해봐야 안다는 말을 절실히 느낀다.

아기는 낳아봐야 정말 사랑스럽고, 내 새끼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힘들고, 혼자서는 절대 못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기도, 나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꾸 비교하면 안 되지만 우리나라의 육아 환경은 정말 뒤떨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일단 용품이나 의료서비스는 정말 잘 되어있다. 쿠팡으로 기저귀를 시켜도 바로 다음날 오고, 육아용품도 종류별로 다 갖춰져 있고, 산부인과나 (소아과 의사가 부족하다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과 질은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육아에 대한 제도나 인식은 정말 한참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키우기 전에는 나도 육아휴직이 일 년이나 필요할지는 몰랐다. 한 삼 개월이면 아기 키우기 충분한 줄 알았다. 그런데 낳아보니 엄마나 아빠 중 주양육자 한 명은 '적어도' 일 년은 쉬어야 한다.

한의사들한테는 육아휴직은 거의 없다.

그냥 나처럼 일 년 쉬고, 또 막상 일을 아예 안 하기엔 답답하니(커리어가 걱정되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을 한다. 이럴 때는 한의사여서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출근을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했다면 나는 (속된 말로) 미쳤을 것이고, 또 그렇다고 일을 택해서 일주일에 5일 이상 출근하기에는 아기가 너무 어리고, 부모를 필요로 한다. 육아휴직은 정말 필요하고, 일 년은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내가 한의원을 운영한다면 직원 한의사나 간호사에게 일 년 육아휴직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또 너무 부담스럽다. 결국에는 국가에서 강제로 지원을 해줘야 한다.



그리고 양가부모님이 있어서 아기를 맡기고 가끔 출근도 하고, 대학원 수업을 듣거나 과제도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꼭 양가부모님이 아니더라도 그냥 시터한테 맡기고 남편과 데이트를 하고 오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나도 매번 양가부모님한테 맡길 수는 없어서 양가부모님이 안되실 때 시터제도를 찾아보았는데 제도는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남의 손에 아기를 맡기고 놀러 간다는 인식이 아직까지는 안착이 안 된 것 같다. 찾아보면 잘 이용할 수 있을 텐데 나부터도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옆에서 자고 있던 아기가 낮잠에서 깨려 하자 급하게 쪽쪽이를 물렸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래도 백일도 잘 넘기고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이유식에, 미운 네 살에, 사춘기에, 넘을 산이 첩첩산중이겠지만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으며 앞으로의 산도 하나씩 잘 올라가 봐야겠다.




*그동안 두서없이 쓴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 논문을 마저 쓰기 위해 이번화로 브런치북을 마칩니다.

논문을 써도, 안(못) 써도

다음 브런치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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