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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Sora Jun 01. 2024

[워킹맘편]퇴근 후에 하는 얼렁뚱땅 백일잔치

엄마가 미안하다


아기의 백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백일잔치 안 해주는 집도 많다지만

첫째라 그런지, 처음이라 그런지 잘해주고 싶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화사하고 풍성해 보이는 백일상 대여를 신청하고, 잔칫날 아기에게 무슨 꼬까옷을 입힐지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문제는 아기 백일이 내 출근일이었다는 것이다.

양가부모님을 모시고 하자니 주말이 좋긴 하고, 아기 백일도 마침 딱 주말이었는데, 하필 그날이 내가 출근하는 날이었다.

(나는 평일엔 아기보고 주말에만 출근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그냥 내가 퇴근하고 백일잔치를 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네 시에 끝나니 집에 오자마자 아기 사진 찍고 양가 부모님과 저녁 식사 하면 간단히 잔치를 잘 끝낼 줄 알았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 주말에 하필 환자도 많고, 인계받을 사항도 많고, 유독 정신이 없는 날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또 엄청난 초보 엄마 티를 팍팍 내고야 말았다.




#1. 여보 아침에 밤만 물에 좀 불려줘.

남편과 나는 백일이어도 아기 때문에 정신없으니까 양가부모님 식사는 그냥 배달 음식을 시키기로 하였다. 그런데 막상 시키자니, 안 그래도 출근해서 우리 아기 잔치도 잘 못 신경 써주는데, 갈비찜 하나만 내가 해놓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전날 갈비찜을 해놨고, 보다 못한 남편이 미역국과 밥은 자기가 해놓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나는 전날 밤, 얼렁뚱땅 어떻게 갈비찜을 해놓고 잠을  자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처남이 밤을 좋아했다면서 밤을 사 오고,

"낼 아침에 갈비찜에 밤만 물 좀 불려 으면 될 것 같아. 그러고 자기 오면 잠깐만 끓여서 양가 부모님 처남이랑 동생이랑 먹자."

라고 대답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잔칫날, 일어나서 남편이 말한 대로 밤을 물에 담가 놨다.

30분 불리고 기존 갈비찜에 넣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출근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온다.


'아, 내가 또 뭐 잘못했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자기야, 정말 밤을 불리기만 했네. 아니, 밤을 익힌 다음에 기존 갈비찜에 넣었어야지^^;;;;"


아, 그렇구나.

나는 이렇게 또 살림 초보 티를 팍팍 낸다.


정신없는 와중에 남편은 안 그래도 양념이 쪼그라들고 있는 갈비찜에 밤을 익히랴, 양념 간 다시 맞추랴 불 앞을 떠나질 못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저 집 남편이 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2. 아기 밥도 이상하게 준 엄마

수유 시간을 계산해 보았을 때, 아기한테 유축모를 안 먹이고 분유를 먹이면 한 번만 먹이면 될 것 같았다. 그날, 백일 잔칫날은 내가 출근하는 동안 친정엄마가 아기를 봐주고 계셨는데, 출근 전 엄마한테 젖병에 분유 담아놨으니 분유포트(분유 물 정수기) 한 번만 누르면 된다고 설명해 놨다. 또한 분유 포트는 분유통에 쓰여있는 대로 수유량(160ml)의 대충 2/3에 근사한 105ml로 맞춰 놨다.

출근해서 아기 밥시간이 지나고 엄마한테 카톡을 했다.


"엄마, 아기 160ml 다 먹어?"


"응, 꿀떡꿀떡 잘 먹던데. 근데 160 아니고 한 110 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암튼 다 먹었어. 더 먹고 싶어서 우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이상했다. 왜 160ml가 아니고 110ml 지??


이상했지만 백일 잔칫날은 정신이 없어서 넘어갔고 그다음 날 내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이미지입니다. 분유는 1단계로 잘 먹였어요,,,

내가 분유통의 설명서에서 3번을 빼고 분유를 탄 것이다. 물을 더 넣어서 총량을 맞춰야 하는데 2/3만 보고 아기에게 밀도 높은, 진한(?) 분유를 타 준 것이다.


우리 아기는 엄마가 없는 동안 진한 분유를 먹고 백일잔치를 하였고, 배가 아팠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똥을 잘 쌌고 그 뒤로 잘 먹고 잘 잤었으니 문제가 없었겠으니, 그러려니 한다. 아기가 말도 못 하고 속으로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






그렇게 우당탕탕 백일잔치를 마쳤다.

아기에게 완벽한 백일잔치를 해주고 싶었는데 완벽은커녕 정말 얼렁뚱땅 넘어갔다.



출근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그걸로는 차마 커버가 안 되는 실수 투성이 백일잔치였다.



돌잔치는 꼭 잘해줄게 아가야...

그러니까, 화려하거나 뭐 그런 잘해주는 것 말고 밥이라도 잘 챙겨줄게.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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