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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현 Feb 04. 2022

1920년대와 2020년대의 만남, 그리고 그것에 대해

2021.11.24 경주

불국사와 첨성대로 유명한 경주이지만 이번 경주 여행은 다른 곳에 관심이 있어서 다녀왔었다. 물론 첨성대는 보고 왔다. 요즘 경주는 황리단길이 유명해지고 경상도 핫플레이스로 알려져서 나한테까지 그 소식이 온 것이다. 황리단길은 대릉원과 첨성대와 같은 유적지들이 위치한 황남동에 있는 작은 도로다. 한옥 위주의 건물들 사이에 술집, 카페 등이 들어서면서 황남동의 경리단길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 황리단길이다. 실제 명칭은 황리단길이 아닌 포석로, 첨성로, 사정로 등 포석로 일대를 일컫는 이름이다. 

하루 만에 결단을 내리고 도착했던 경주의 첫인상은 작았다. 지도에서 보는 것보다도 경주역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도 가까웠고 건물들도 대부분 낮은 건물들이라 도시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아마 문화재가 많이 있고 아직도 계속해서 발견되는 지역이라 고도 제한도 있고 개발을 하는데 한계점도 많아서 그럴 것이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황리단길로 바로 발걸음을 향했다. 원래 계획은 자전거를 대여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주변 지역을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평일임에도 황리단길에 몰린 인파를 보고 직접 걸어서 이동하는 게 낫겠다 싶어 도보를 택했다. 이곳의 상권은 이미 SNS를 통해 접했던 카페와 식당들 말고도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다. 제일 많이 보였던 것이 즉석 사진관과 옛 골동품들을 모아서 판매하는 만물상 스타일의 가게들이었다. 이 외에도 옷 가게가 꽤 많이 보였고 전체적인 디자인 분위기는 또 익선동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리단길로 불리기는 하지만 경리단길보다는 익선동의 분위기를 많이 참고했거나 따라간 지역이 황리단길이었다. 


분명 원래부터 있지 않았을 것 같은 기와지붕을 따라서 시선을 건물 아래로 내리면 소위 말하는’힙’한 디자인의 포스터와 인테리어가 가능한 상업시설들이 거리의 입면을 가득 채운다. 배경으로 있는 2020년대와 1920년대의 양식이 혼재된 거리 앞에는 친구와 놀러 온 학생 무리, 관광을 온 가족들, 그리고 커플들로 가득했다. 내가 알기로는 경남 쪽에 이런 분위기의 거리도 흔히 보기 힘들기에 이 지역 전체의 상권이 아주 잘 운영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더 좁을 골목, 그리고 중심가를 벗어나서 골목을 꺾어 들어가니 이미 폐업하고 철거 중인 가게들과 건물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경리단길도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성공이자 실패 사례가 되었는데 부흥하기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지도 않은 이 지역도 벌써 쇠퇴의 길은 걷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가게들이 더 많이 들어오기 위해 공백을 늘려가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와 동시에 역사성을 남기는 방법 중에 기와지붕과 같은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전통적인 디자인이 있다 한들, 다른 부분들이 지극히 현대적이라면 그 표현방식은 역사적인 존중이 들어간 것일지, 이용만 하고 존중은 하나도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는지도 의문이었다.

며칠간 고민한 후에 내린 나의 결론은 이렇다. 대중은 생각보다 우매하지 않다. 기와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전통성을 주장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한옥을 온전히 보존해서 전통성을 지킬 수도 있고, 사용하기 불편한 옛 건축양식은 포기하고 대신에 제대로 된 기념관 혹은 설명할 시설을 새로이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마 무엇을 하던 처음에는 입소문이 나서, 혹은 뉴스에 나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신중하다. 어떤 방식을 택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나 결과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거나, 부적절함, 혹은 부조화가 있다면 사람들이 빠르게 모여든 만큼 빠르게 떠나갈 것이다. 수원 화성행궁 앞의 행리단길도 마찬가지로 금방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나, 이곳은 화성행궁이라는 문화재를 꾸준히 관리해온 시간 덕분인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물론 기존의 상인들이 떠나고 새로운 분들이 오셨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철거를 하다가 멈춘 건물이나 폐업을 한 상가는 아직 보지 못했다. 황리단길도 마찬가지로 꾸준히 관리하고 진심으로 지역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필히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몇 년 후에도 꾸준히 찾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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