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리머소녀 Nov 16. 2020

미국 코로나 재확산, 이제 어쩌지?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다음 주 추수감사절 연휴에 시카고에 다녀오려고 항공권을 예매해 두었었다. 미국의 대명절인 추수감사절을 대가족과 함께 왁자지껄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 가족이 작년 가을 랜딩해 온갖 삽질을 하며 낮은 마음으로 지내던 그곳에서 추억 놀이도 하고 싶었다. 남편이 하루 종일 쭈그려 앉아 이력서를 쓰던 아주버님 댁 지하실에도, 썰매를 타고 깔깔대며 뒹굴던 뒷마당에도, 고개 푹- 숙이고 다니던 큰아이 학교와 가가볼장에도, 눈 덮인 놀이터에도, 살까 말까 망설이다 사지 않고 나오던 쇼핑몰에도 다시 가보고 싶었다.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 먹으며 정이 옴팡 들어버린 시카고 가족들과 칠면조도 굽고 와인잔도 기울이며 한 해의 감사 제목들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미국 곳곳의 코로나 상황이 좀 심각하다 싶더니 급기야 일리노이주와 메릴랜드주 모두 타주 방문객을 대상으로 코로나 테스트와 자가격리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날씨가 추워지면 코로나도 더욱 기승을 부릴 거라고 우려는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한다. 인구 600만 명의 메릴랜드주는 갑자기 하루 확진자가 2,000명이 넘어가고 있다. 인구 1,200만 명의 일리노이주는 하루 확진자가 11,000명을 넘어가는 판국이다. 전국에서 가족들, 친척들이 모여 함께 먹고 즐기는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있으니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어, 많은 주들이 앞다투어 자가격리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얼마간 이 상태로 가다가는 또 한 번의 셧다운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다.


큰아이 축구팀은 가을 시즌 마지막 훈련을 앞두고 있었는데 훈련을 중단한다고 이메일이 왔다. 에너지가 넘쳐 주체가 안 되는 아들이 겨울에도 운동을 조금씩은 했으면 해서 실내 축구도 신청해놨었는데, 역시 전부 취소되었다는 이메일이 왔다. 카운티 교육청에서는 내년 1월 말부터 일주일에 2회씩 학교에 가는 하이브리드 모델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이메일을 보내왔었는데,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봄까지 쭉 온라인으로 수업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한 2020년을 이렇게 코로나와 함께 마무리하려나 보다.


마스크 착용을 아직까지도 정치적인 제스처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다. 메릴랜드 주지사가 나와서 제발 마스크 좀 잘 착용해달라고 간청을 하면서 “Just wear the damn masks! (제발 빌어먹을 마스크 좀 써!)”라고 했는데, 너무 공감이 갔다. 그놈의 마스크 좀 쓰고 다니는 게 대체 그렇게 못할 짓인가?


시카고행 비행기표도 실내 축구도 환불 신청하고, 실내 축구화도 리턴해버렸다. 항공사도 체육관도 먹고살아야 되다 보니 환불은 안되고 크레딧으로 돌려줄 모양이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준비하고 있으면 그것보다 조금만 나아도 감사할 수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이 기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기운이 빠지고 서서히 지쳐간다. ‘코로나 블루’라는 걸 내 입으로 인정해버리면 정말 우울해질까 봐 나는 괜찮다고, 잘 버티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지만, 솔직히 이 상황이 답답하고 힘들다.


그래도 주말을 우울해하며 보내버리기에는 가을 막바지 날씨가 아까워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웨스트버지니아주 하퍼스페리(Harpers Ferry) 국립역사공원에 다녀왔다. 가을 햇살을 맞으며 낙엽을 밟으며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쉐난도우(Shenandoah) 강가에서 아이들과 돌멩이도 실컷 던지고, 강 위에 떠있는 철조 다리도 건너고, 미국 남북전쟁의 흔적들도 살펴보며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넉넉한 품 안에서 위로를 받고 돌아왔다.


하퍼스페리 국립역사공원에서 보낸 오후 - 우울할 땐 자연으로 나가 몸을 움직이자! (Photo by dreamersonya)


2020년 한 해를 이렇게 코로나와 함께 하다 보니 솔로몬의 전도서가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언제 다시 집 안에 콕 처박혀 지내게 될지 모르는 이때, 가을 햇살과 풍경을 즐긴 것은 얼마나 잘한 일인가.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던 이민 초기 시절, 아이들 데리고 시카고 박물관과 아쿠아리움 무료 행사에 찾아다니길 얼마나 잘했나. 이제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데. 아이를 시카고 학교에 보낸 것도, 잠깐이었지만 교회 유년부에 보낸 것도, 어색했던 바이블 스터디 모임에 따라다녔던 것도 얼마나 잘한 일인가. 지금은 보내고 싶어도 못 보내고 사람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는데. 10주년 결혼 기념 여행으로 시카고에서 애틀란타까지 로드트립을 한 것도 얼마나 잘한 일인가. 언제 다시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식당이 문 열었을 때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사 먹은 것도, 수영장을 열어줬을 때 신나게 수영한 것도, 축구팀을 시작해도 될까 고민하다 시작한 것도, 할로윈 캔디를 수확하러 다닌 것도 얼마나 잘한 일인가.


세상만사에 다 때가 있는데, 인생의 계절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충만히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할 수 있을 때 일하고, 쉴 수 있을 때 쉬고,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만날 수 있을 때 만나고, 여행할 수 있을 때 여행하고, 글 쓸 수 있을 때는 쓰면서 말이다. 기나긴 이 겨울에는 무얼 하며 알차게 보내면 좋을지, 온 가족이 머리 맞대고 브레인스토밍을 해봐야겠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전도서 3:1-8
귀요미들이랑 딱 붙어서 잘 지내봐야지 뭐, 이것도 다 때가 있나니... (Photo by dreamersonya)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사커맘이 되어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