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원체 말이 많지만 특히 잠자리에 들기 전 그 정도가 심해진다. 하루종일 생각안나던 것들이 눕기만 하면 쏙쏙 튀어나보다.
문득 학교에서 있었던 속상한 일을 얘기할때도 자랑할 일을 얘기할때도 있다.
10시가 훌쩍 지났고 자야할 시간이지만 아이와 이야기하는 순간이 좋아서 인심쓰듯 들어본다. 대부분은 맞장구를 쳐주지만 어떨땐 불쑥 화가나기도 한다. 콩깎지 씌인 엄마의 기우일수도 있지만 아이가 바보같이 할말도 못하고 속상해 하는것 같아서다. 그럼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말로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걔가시켜도 내가 좋아서 하는건데? 나는 기분이 안나쁘다고. 내지
나는 속상해서 얘기했는데 왜 엄마가 더 화내?
얼굴이 달아오르는 순간이다.
아이의 말 중 나를 둥둥 떠오르게 하는 게 있는데 바로 기쁘다란 말이다. 대부분의 격한 감정표현은 이모티콘으로 대신하는 요즘, 기뻐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나역시도 기뻐라고 말하며 오글거리지 않을 자신이 없다.
어쩌다 기쁘다는 말이 소설 속 인물의 문어체 대사 같아졌을까. 하지만 아이가 기뻐 라고말하면 사랑스러움이 퐁퐁 솟아난다. 그 말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딱 아이를 위해 태어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두고 참 팔불출이네 뜨끔 하다가도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핀다.
아이는 내가 입원했다 집에 오면 엄마, 엄마가 와서 기뻐 라고 말했다. 기뻐를 말하는 입술이 사랑스러워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면역력 때문에 1년이 넘도록 엄마와 떨어져 자다 다시 함께 잘 수 있게 된 날도
엄마랑 같이 자서 기뻐라고 말해줬다.
생각해보니 아이에게도 기뻐는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다. 좋아, 재밌어는 흔히 쓰지만 기뻐는 정말 가슴을 차오르게 하는 뭔가가 있어야 나오는 말인 것도 같다.
아이를 기쁘게 하는 일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기쁘다는 말이 언제까지나 어색하지 않고 오글거리지 않게. 자연스러울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