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시리즈 우리의 인생처럼 물러설 곳 없는 섬
섬 속의 섬을 여행하고 싶었다. 제주도를 몇 번을 다녀왔지만 우도, 최남단 마라도, 가파도는 가본 적이 없다. 그리고 꼭 보고 싶은 섬의 학교들.
섬은 인생의 달콤한 맛보다 짠맛을 더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푸른 바다 위에 그림같이 아름다워 보이다가도 저무는 바다로 사라지는 모습은 외로워 보인다. 인생의 시련처럼 이따금 파도는 덮칠 기세로 달려든다.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꺼지듯 물살은 가장자리를 쉴 새 없이 때리고 들락거린다.
최첨단 마라도는 바람이 너무 세 큰 나무는 자라지 못한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마라도의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었다. 학교는 교정이라 할 것 없는 작은 집에 마당이 있다. 풀들은 세찬 바람으로 반쯤 누워있지만 뿌리는 굳건히 땅에 의지하고 있다. 큼지막한 돌에 ‘가파초등학교 마라 분교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곳을 메웠던 웃음소리는 세상을 향해 나갔고 바다를 건넜다. 인기척 없는 학교는 궁금해하지 않을까. 이곳을 뛰놀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디선가 세찬 삶의 바람을 맞으며 마라도의 풀들처럼 넘어지지 않고 지내고 있겠지. 시간과 바람으로 얼룩진 마라도 학교는 먼바다로 뱃일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 같다.
섬에서는 뒷걸음쳐도 갈 곳이 없다. 우도는 가파른 절벽 사이로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바다로 둘러진 울타리는 사라졌다. 조물주가 빚어준 작은 섬은 사람 발길 닿는 어디든 말소리와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범벅이 되었다. 섬을 지키며 주저앉지 않고 억척스레 살아낸 사람들과 비장하거나 달콤한 꿈을 안고 들어온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작고 작은 섬 우도에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며 어디로 닿을지 모르는 삶이 여기에 있다.
섬에 분주함을 내려놓고 싶지만 이제 섬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태생적인 고요함과 외로움이 사라져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 섬이 더 지친 듯 보여 서글프다. 마음을 달래준 것은 우도초등학교였다. 양쪽에 길게 늘어선 나무들과 꽃들을 지나야 교문이 있다. 초록 잔디와 축구 골대가 보인다. 곳곳에 있는 야자수와 푸른 하늘 아래 작은 건물 두 채가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왜소하지만 거대한 세상을 품고 있다. 끊긴 세상과 이은 것이 학교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제는 끊어질 일 없는 섬이 되었고 여전히 학교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세 개의 섬 중 유일하게 마을버스가 있는 곳이다. 주민들이 타는 버스를 ‘마을 안’ 버스라고 한다. 타는 곳도 요금도 다르다. 사람들로 꽉 찬 관광버스와 달리 마을 안 버스를 타니 우리 부부와 기사뿐이다.
골목에 들어서자 낮은 지붕의 집들이 이어진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래 줄에 해녀 복이 걸려있다. 물기가 마르면 다시 물에 담그기를 몇 번을 했을까. 어쩌면 미처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바다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림자 없는 바닷속을 이리저리 헤매며 잡아 올린 것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날것의 삶이다. 마당에는 집집마다 덤벼드는 바람과 햇빛 아래 쪼그라든 해초류가 널브러져 있다. 그들은 바다와 바람, 햇빛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낮은 담장과 해녀들의 몸을 녹이는 불턱은 세상과 맞서되 거스르지 않고 살아온 곳이다. 마을 돌담 사이 길과 푸른 바다가 보이는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버스 창으로 보는 것과 걸어야 보는 것은 다르다. 돌담을 ‘슥’ 스치듯 만지는 손끝이 쓸린다. 들락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우도가 쓰리다.
가파도는 집과 길을 빼고 온통 보리밭이다. 바람에 넘실거리면 섬이 움직이는 듯하다. 섬의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아보고 마을 길로 들어섰다. 초등학교가 보인다. 수업 중이라 정숙해 달라는 문구와 학교 안을 들어올 수 없다는 표지판을 교문에 걸어 놓았다. 초록 잔디 위에 낮은 건물이 좋다. 높은 빌딩들 사이를 걷다 낮은 건물을 보고 걸으니 위로 오르려는 경쟁심이 낮아지는 듯하다. 눈높이가 맞는 것은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홀로 떨어져 파도와 맞서는 외로운 섬은 때로는 물러설 수 없는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다. 마라도 우도 가파도는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삶을 본 듯하다. 시인 천상병 ‘귀천’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이라 했다. 삶을 소풍이라 했다. 시인은 하루하루를 소풍이라 말한 것이 아닐까 한다. 시인이 말하는 소풍의 정신세계를 넘지 못할뿐더러 자신 있게 삶의 소풍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섬 여행이 즐거움으로 푸른 바다처럼 넘실거렸듯 나의 소풍이 끝나는 날도 그랬으면 좋겠다.
참 어렵다. 삶의 여행 설문지가 있다면 ‘매우 좋음, 좋음, 나쁨, 매우 나쁨’ 중 어디에다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을까. 삶을 여행하면서 무엇을 하며 무엇을 준비하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누군가 “지금 까지 여행은 어땠냐고.”묻는다면 무어라 말할까?
매일 소풍 같은 날들이 모여 큰 인생이 되는 동안
모도 나고 날카로웠지만 구르는 동안 부서지고 깨져서
그럭저럭 굴러간 삶을 만들었다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