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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e Nov 28. 2021

그녀는 나를 두고 고양이 별로 떠나갔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친구의 집들이였다. 낯가림이 심하고 까탈스러운 성격이어서 뒷모습만 겨우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친구가 아이를 낳았는데, 고양이를 데리고 있을 수 없어 아기 백일까지만 시골집에 맡긴다는 말에 내가 잠시 임보 해주겠다고 나섰다. 그때는 여러 가지 문제로 너무 힘들었 때문에 그녀는 나의 문제를 잊게 해 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백일은 생보다 금방 지나갔다. 이제 친해졌나 싶었는데 떠나가게 되었다. 친구는 그녀를 데려가기 전에 아기를 위해 그녀는 털을 밀어야 했다. 전신 마취하고 털을 빡빡 밀어 놨더니 기분이 나빴는지 내가 집에 없는 틈에 우유 구멍을 열고 집을 나가버렸다. 한 겨울에 털도 없는 상태에서 밖에 있으면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거란 생각에 난 정신이 반쯤 나가 그녀를 찾아다녔고, 아파트 단지 구석에서 죽기 직전의 그녀를 겨우 찾아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 사건이 그녀와 나를 마음으로 이어준 계기가 된 게 아닌가 싶다. 한 겨울 꽁꽁 얼어 있는 그녀를 옷 안에 넣고, 나는 펑펑 울며 병원을 향해 전력으로 뛰었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나를 쳐다봤었는데, 그때 나에겐 다른 사람들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었다. 부디 살아기만을 바라며 빌었던 너무나 간절했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잠깐이라도 숨 고르느라 멈추면 나 때문에 이 작은 생명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머릿속 꽉 차 있었다.


 한동안 친구의 집으로 돌아간 그녀가 너무 그리웠다. 그러다 친구가 잠시 더  맡아 줄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내심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돌잔치를 위해 시댁 식구들이 올라오는데 어른들이 별로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한번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다시 만난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반가워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낯선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던 도도한 그녀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도 우리는 처음보다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곤 얼마 후 잠깐 열어둔 베란다 문으로 그녀는 다시 도망갔다. 평소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아 고양이는 자기 이름을 모르나 싶었는데, 반나절을 아파트 단지를 뒤져 건너편 동 구석에서 다시 그녀를 찾았는데, 본인도 집을 잃어버려 당황했었는지, 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렸는데도 너무나 반갑게 야옹 대며 나에게 안겨왔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내가 이름을 불러도 보지 않았던 것은 그냥 무시했었던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집에서만 살아왔지만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당황스럽게도 조금만 틈을 보이면 바로 집을 나가 버렸다.


 시부모님 계실 동안만 잠시 맡겨두겠다던 친구한테선 다시 연락이 없었고 그녀는 언제가 부턴가 당연히 우리 집 고양이가 되었다. 어느새 나와 그녀는 이제 데려가겠다 해도 못 내줄 만큼 정이 들어 버렸었다. 그렇게 그녀는 쭉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마 후 우리는 시골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때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집에만 있었는데, 하루 종일 넓은 집에 둘이 있어서 그런지 그녀는 나에게 무척이나 애착을 가졌었다. 화장실도 따라오고 잠도 같이 잤다. 우리 둘만의 애틋하고도 묘한 사이가 형성되었을 때,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가 어릴 때는 괜찮았는데, 걸어 다니면서 문제가 되었다. 아들은 그녀가 신기한지 꼬리와 다리를 갑자기 잡아당, 앉아서 쉬고 있으면 가서 놀라게 하고 소리를 질렀다. 혼자 조용히만 살던 그녀는 아들과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밖으로 나가려고 방충망을 뜯기 시작했다. 그때는 여름이라 문을 자주 열어뒀었는데, 문만 열어두면 방충망을 뜯어 하루는 남편이 '그래 네가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하고 홧김에 문을 열었더니 잡을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뛰쳐나갔다. 그때는 한밤중 이 었는데, 처음에는 본인이 원해서 나간 거라며 잠시 후 돌아올 거라며 쿨하게 말하던 남편은 한 시간 후에도 들어오지 않자 여긴 시골인데 떠돌이 개한테 물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냐며 울먹이며 그녀를 찾으러 나갔다. 늘 그렇듯이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참을 찾아도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그녀가 스스로 다시 찾아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애타는 밤이 지나갔었다.


 다음날 옆집에 갔더니 그녀는 걱정한 우리를 바보처럼 바라보며 자기 집처럼 태평하게 누워있었다. 부모님이 옆집에 사는데, 스스로 우리 집에서 나가 옆집으로 이사 간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부모님 댁에 살게 되었다. 그 후론 본인이 원하는 대로 낮에는 문을 열어두면 한 번씩 산책 갔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동물을 좋아하셔서 금세 그녀의 충실한 하인이 되어버렸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녀 마지막까지 지켜주었다.


 그렇게 평안하게 지내다 삼 년 전쯤엔 그녀의 턱뼈가 부러졌었다. 사람이 그랬는지, 자기가 넘어져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똑 부러졌는데 얼굴이 너무 작아 기브스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병원에서 턱을 고정해야 한다고 해서 한 달 동안 주사기로 먹이와 물을 먹여줬었다. 이제 나이도 많은데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을 했는데,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한 달 후 완쾌했다. 그리곤 그녀는 우리에게 건재함을 보여주려 했는지, 감사함을 표시하려 했는지 쥐 한 마리와 참새 세 마리를 잡아 주었다.


 우리는 다사다난하게 십 년을 같이 살았다. 그녀는 속이 안 좋으면 본인이 이삼일 정도 밥을 안 먹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너무 오래 밥을 안 먹는 것 같다고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하셨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신장 수치가 너무 안 좋게 나왔었다. 의사는 마지막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러고도 반년을 더 우리 곁에 있어줬다. 어느 날 다시 밥을 안 먹기 시작하더니 보름 동안 먹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아침 지구에서의 십오 년 삶을 뒤로하고 고양이 별로 떠나갔다. 내가 그녀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십 년을 같이 산 가족이기도 했고, 내가 가장 힘들 때 내 곁에 있어준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의 힘든 난임기와 임신기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내 곁을 지켜주었.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련을 같이 건너 주었던 이다. 우리는 같이 먹고, 같이 자고, 화장실도 같이 갔다. 때로는 남편보다 더 위안이 되는 존재였다.


 아들이 태어나고 전보다 신경을 많이 못써줘서 항상 내 마음이 무거웠어. 그렇지만 너를 향한 사랑 변한적은 한순간도 없. 그래도 우리 같이 살면서 많이 행복했지? 난 너로 인해 세상에 여러 가지 종류의 행복 존재한다는 걸, 이렇게 작고 귀한 생명체도 존재할 수 있단걸 알게 되었어. 다음 생에도 꼭 다시 만나줘! 내 사랑! 고양이 별에서 날 기다려줘! 


다시 만나게되는 그날까지 그때처럼 쉬지않고 너를 향해 달려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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