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무게

흰둥이를 키우며 비로소 알게 된 것

by 앙니토끼

우리 집은 엄마를 제외한 모두가 개를 너무 좋아했다.


내 기억 속에 우리 집에서 살았던 개는 모두 다섯 마리였다.


첫 번째 개는 검둥이라는 이름의 믹스견이었다.

그때만 해도 동네에 개들이 많이 돌아다녔는데 우리 집 앞을 지나가던 주인 없어 보이던 까만 발바리가 안쓰러워 아빠가 남은 생선을 밥에 비벼주었다.

밥을 다 먹고 난 개는 가지 않고 우리 집에 눌러앉아 버렸다.


엄마아빠는 가게를 했었고 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손님들이 드나드는 입구에 검둥이는 자리를 잡았다.

강아지를 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엄마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신이 났다.

작은 이불을 깔아주고 하루를 재웠지만 ‘다음날엔 나가겠지’ 엄마는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둥이는 그렇게 우리 집에 살게 되었다.


검둥이가 우리 집에 산 지 몇 달 지나자 엄마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나 보다.

아빠와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시골에 계신 고모할머니댁에 검둥이를 보냈다.

우리 삼 남매는 너무 슬펐고,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검둥이는 너무 똑똑해서 엄마를 귀찮게 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예쁜 애를 엄마는 왜 좋아하지 않는지…


그때는 몰랐다.

돌봄의 무게를.

하루 종일 가게일을 하며 어린아이 셋을 키워내고 살림까지 해야 했던 엄마의 무게를.




몇 년 후, 아빠는 누군가 준 개를 데려왔다. 까만 미니핀이었다.

하지만 그 개도 얼마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게 되었다.

그 개가 낳은 새끼는 몇 달 만에 집 앞에서 교통사고로 떠났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엄청나게 많이 울었다.



몇 년 후, 아빠는 또 누군가 준 개를 데려왔다.

그때만 해도 개는 누군가 주는 거였다.

산다거나 입양한다는 개념조차 낯선 시절.

키우던 개를 끝까지 책임진다는 개념도 별로 없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었다.


푸들 뽀삐는 우리 집에서 2년간 살다가 새끼를 세 마리 낳았다.

새끼 중 한 마리를 우리가 키우고 어미는 아빠가 데려왔던 것처럼 누군가 데려가 버렸다.

헤어질 때마다 우리는 너무 슬펐지만 우리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뽀삐를 데려갔던 사람은 새끼를 낳게 해서 돈을 벌 목적이었다고 한다.

데려갈 때, 안 된다고 할걸. 후회했지만 어렸던 우리는 힘이 없었다.

애견사업이 막 커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개 때문에 엄마와의 갈등이 심했다는 건 나중에 커서야 알았다.

그럼에도 아빠는 책임감도 없이 자꾸 데려왔다는 것도.


우리 집에서 살았던 개들


우리 집에서 태어난 푸들 삐삐는 우리가 끝까지 키운 개였다.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 살았지만 7년 만에 아파서 세상을 떠났다.

대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삐삐를 보내고 한동안 개를 키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다른 개를 사랑한다는 것이 삐삐에게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만약에 만약에 언젠가 또 개를 키우게 된다면 그때는 진짜 잘해 줄 거라고.

고통스럽게 갔던 삐삐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아픈지 안 아픈지도 잘 살펴볼 거라고.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준비가 되면 데려올 거라고.

그렇게 다짐했다.



삐삐를 보내고 7년 후, 나는 흰둥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흰둥이를 키우며 돌봄의 무게를, 그 책임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에게 와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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