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고양이 Oct 02. 2021

Big


나를 긴장하게 하고 움츠러들게 하고, 마음 졸이게 하고, 손을 떨게 하는 것이 나의 개성이라면 기꺼이 개성을 벗고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다. 인생은 고통이다. 라고 철학자들이 말한다. 거듭 고통을 반복하다 깨달음을 얻으면 열반의 세계로 가서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다. 고 불교에서 말한다. 고통도 두려움도 아픔도, 살아있음에 느낄 수 있기에, 살아있음에 감사하라는 말은 성당에서 한다. 


가만 보면 세상 사람들은 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거 같다. 나라고 특별할 거 없이, 나라고 유일할 거 없이.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 언제는 우연한 만남으로 한 여자를 알게 되어서 같이 전시를 보러 가고 브런치도 먹었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가 사이비라는 것을 알게 되어 슬펐다. 운전면허 학원에서 선생님이 나에게 자기 강아지 사진을 보여줘서, 그 사람이 나에게 욕을 해도 착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다. 보는 눈을 기를 필요가 있다는 말은 너무하다. 시력이 좋아진다고 해서 달의 뒷면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처음으로 성당에 갔다. 사실 나는 신자도 아니고 사실 종교가 없다. 그런데 꿈에서 나는 성당에 갔고 거기에 갔더니 동생과 아빠가 먼저 와 있었다. 인사를 하고 옆에 나란히 앉아 손을 잡았다. 상처는 완전한 회복이 가능하다는, 신부님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눈을 떴을 땐 다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흐르지 않는 눈물에 마음이 말라 버스럭거렸다. 그래서 저녁엔 깨끗한 옷으로 차려 입고 집근처 성당에 찾아 갔다. 기대했던대로, 미사 시간에 코를 먹으며 울수 있었다. 물 먹은 솜처럼 몸이 축축했졌으나 여전히 마음은 버스럭거렸다. 


미용실에 가서 커트를 했다. 샴푸를 해주는 손길이 따뜻했다. 아주 노련한 두피 마사지였지만 그 단단한 손가락도 나의 머리 속 생각을 멈추지는 못했다. 그리고는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 부드러운 리본이 달린 작은 쇼핑백을 손에 들고 나왔다. 저녁을 먹을까 했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먹지 않았다. 집에 와서 내 앞으로 도착한 택배를 뜯었다. 새 목걸이를 목에 차고, 반짝이는 시계를 왼쪽 손목에 찼다. 손목 위에 앉은 아름다움도 나의 생각을 멈추진 못한다. 


기계적으로 택배 상자를 정리하고 분리수거를 하러 내려가 가을 바람을 맞았다. 비로소 지겹게 길었던 여름이 지나간 것이다. 방으로 돌아와는 룸 스프레이를 뿌렸는데, 넓은 바다를 표현한 향이라고 했다. 넓고 미지근한 바다에 몸을 맡기던 때 처럼, 긴장을 풀고 잠에 빠지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못하고 생각만이 계속된다.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생각이. 지금은 눈물을 쏟지 못한 두 눈이 무척이나 피곤하다. 


누군가가 나는 너무 착해서 걱정이라고 한 말을 건너 들었다. 누구는 나보러 정이 너무 많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속까지 다 들여다보고 안아 줄 필욘 없다고. 세상에는 뒤틀리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 착한 사람이 오히려 더 적다고. 지금껏 나를 평범한, 보통의, 정규분포표의 가운데 부분에 위치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을까 봐 무서운 기분이 든다. 


나의 절망과는 상관없이, 옆에 앉은 모르는 남자는 포장해온 피자를 꺼내 먹고 귀뚜라미는 합창한다. 사람은 너무 불완전하기 때문에 절대자를 찾는다고 그래서 종교가 있는 게 아니겠냐고. 하지만 성당에서 온 문자를 받아 읽어도 나아지는 건 없는 거 같다. 따뜻한 친절을 받아 감사할 뿐이다.  


사람은 입체적이라, 어떤 관계 속에서도 그 시점에서의 역할을 연기할 뿐이고,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도. 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기를 선택한다. 사실 선택이 아니고 그냥 내가 그렇다. 끝없이 생각함으로써 나의 몸과 마음이 소진되지만, 나라고 특별하게 없다는 안심이 채워져 돌아온다. 

작가의 이전글 Glas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