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나는 왜 가족들을 위해 아등바등 살았을까?
나는 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그만두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별다른 취미 없이 가족을 위해서 평생 헌신하며 살아가는 남자는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 그가 벌레가 되자 가족들 역시 당황하며 하루빨리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그를 보살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다시 한 달이 지나도 사람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없자 가족들은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가자 그는 그토록 헌신한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이제 가족들은 그에게 대한 관심은 물론 빨리 죽어버리기를 바랐다.
벌레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은 그에게 늘 고마워했다. 특히 피아니스트가 꿈인 여동생을 위해 힘들어하면서도 자신의 직업인 보험 영업을 그만두지 않았다. 빛나는 미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위로 삼아 하루하루를 힘겹게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없어도 잘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왜 그렇게 가족들을 위해 아등바등 살았는지 후회가 되었다.
소설 마지막에 그레고리는 여동생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그레고리의 죽자 가족들은 그동안 마음고생하던 것을 서로 털어 버리자며 가벼운 마음으로 소풍을 떠난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줄거리이다
체코 프라하에 가면 어디서나 카프카를 만날 수 있다.
프라하 구시가지의 시청사를 지나면 옛날 교수대가 있었던 자리에 우 카타 U KATA 식당이 있다. 그래서 식당의 간판도 교수대 모양이다. 그 식당 맞은편에 카프카의 생가가 있다.
4층으로 된 생가는 처음에는 버려졌으나 최근에 단장을 막 끝내면서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일생의 흔적을 보여준다.
카프카는 부유한 유대인 상인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현실적이고 빈틈없는 아버지 헤르만에게 아들 카프카는 헛소리나 해대는 몽상가에 불과했고, 어린 카프카의 눈에 아버지는 지독한 일벌레로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사업의 성공에만 미친 사람으로 보였다.
더구나 어머니 율리도 남편의 사업을 도와 하루 12시간씩 일하느라 평일에는 부모 모두 집에 없었고, 카프카와 그의 형제들은 보모와 하인들이 돌아가며 키웠다.
1901년 프라하의 카를 대학교에 진학한 카프카는 문학과 예술사 강의에 흥미를 보였으나 아버지의 요구대로 법학을 선택하여 1906년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졸업 후 프라하의 보험회사에 취업했으며 몇 번의 이직은 있었으나 그가 죽기 2년 전까지 낮에는 보험 일을 하였으며 밤에는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의 일에도 최선을 다였는데 그 결과 몇 번의 승진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일생의 유일한 의미와 목표는 문학창작에 있었다.
1912년 그의 평생지기 막스 브로트의 집에서 카프카는 펠리체 바우어를 만났다. 펠리체는 베를린에 있는 속기용 구술 녹음기 회사를 다니며 일하고 있었다. 그 후 5년간 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제를 하였다. 두 번이나 약혼하기도 했지만 1917년 결국 그들은 헤어졌다.
1917년부터 카프카는 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회복을 위해 쉬는 게 필요했고 가족들, 특히 그의 셋째 누이 오틀라가 그를 돌보았다. 그 자신은 자신이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남들에게 혐오스럽게 인식될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소년 같고 깔끔하고 꾸미지 않은 외모, 조용하고 멋진 태도, 꽤 지적이고 천연덕스러운 유머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결핵이 점점 더 심해지자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1922년 그는 보험회사를 퇴직하고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잠깐 가 있었지만 결핵이 악화되어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결핵 요양소에 입원하였지만 얼마 후 사망하였다. 원인은 굶주림이었다.
당시 카프카는 음식을 먹으면 목의 통증이 너무 심했다. 정맥영양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때라 영양공급을 할 방법이 없었다. 그의 유해는 프라하로 보내졌고 1924년 6월 11일 유대인 묘지에 매장되었다.
카프카는 사후 그의 모든 서류를 소각하기를 유언으로 남겼으나,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의 유작과 일기 그리고 편지 등을 출판하여 현대 문학사에 그의 이름을 남겼다. 당시 카프카가 직접 썼던 원고와 펜 그리고 그의 유품은 프란츠 카프카의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구시가에서 카를 교를 건너 오른쪽 밑으로 내려가면 나타난다.
박물관 정원에는 오줌 누는 사람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다비트 체르니의 조각상과 카프카의 이름 앞자인 K를 새긴 큰 설치물이 놓여 있다.
특히 입체적으로 움직이며 오줌을 누는 체르니의 작품은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그가 생전에 남긴 원고와 작품 그리고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카프카 박물관은 친절하게도 한글로 된 안내 책자를 만들어 우리 여행자들의 박물관 감상에 큰 도움을 준다. 한글 안내 책자는 박물관을 나올 때 반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카프카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는 곳은 프라하 성이다. 프라하 성에 입장하여 성 이지 교회를 지나면 황금 소로가 나타난다.
원래 이곳은 성을 지키는 사병들이 살았던 곳으로 16세기 후반 금은 세공사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황금 소로라 불렸다.
이곳 22번지에 있는 파란 집에서 카프카는 1916년 11월에서 다음 해 5월까지 <성>을 집필하여 완성하였다.
실존주의 문학가 카프카는 <성> 이외에 그의 대표작으로 <변신>, <심판> 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