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향한 멕시코의 몸부림
디에고 리베라 무랄 박물관에 있는 <아랄에다 공원에서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꿈>은 멕시코의 역사적 인물들이 모두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와 멕시코 근대화의 아버지이자 원주민 최초의 대통령인 베니토 후아레스 그리고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에서 건너와 3년간 멕시코를 지배했던 막시밀리아노 황제이다. 이외 리베라 자신과 그의 부인이자 동료 예술가인 프리다 칼로가 등장한다. 이들을 확인하며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멕시코의 역사가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진다.
먼저 그림을 중앙을 살펴보면 멕시코의 상징적인 아이콘이자 해골 여인인 카트리나가 서있다. 카트리나는 서구문화에 빠져 민족적 정체성을 잃어버린 멕시코인의 모습을 풍자한 캐릭터로 1913년 사이에 호세 구아달페 포사다가 만들었다. 카트리나는 서양을 동경하듯 포사다는 피부가 휘고 전형적인 프랑스 스타일을 옷을 입고 있다.
카트리나 바로 옆에는 어린 시절 디에고 리베라의 모습과 그의 아내인 프리다 칼로가 그려져 있다. 프리다 칼로가 손에 갖고 있는 음양의 구는 디에고와 프리다 칼로가 서로 보완적인 관계임을 상징하며 어린 디에고 주머니에 있는 개구리는 프리다 칼로가 못 생긴 디에고를 부르던 애칭이었다.
그림 오른편에는 원주민들을 핍박하는 경찰과 그 가운데에 뒤돌아보고 미소 짓는 백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위로 멕시코 혁명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제일 위 편에 보이는 멕시코 국기 앞에 멕시코 혁명을 위해 노력한 디에라 대통령의 모습도 조인다. 작품 전체적으로 멕시코라는 나라의 사회적 단면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다음으로 그림 왼편의 가장 구석 위에 손에 피를 묻히고 있는 인물이 스페인 침략자 에르난 코르테스이고 그 위로 연두색 모자와 치마를 잊었으며 벌거벗고 채찍 자국이 나있는 인물은 아즈텍 마지막 황제인 쿠아우테목이다. 황제 밑에 보이는 수녀는 여성 권익을 위해 공헌한 인물로 현재 멕시코 화폐 200페소에 그려진 솔 후아나 크루즈이다.
수녀의 바로 옆에 왕관을 쓴 인물은 오스트리아 왕자로 유럽이 멕시코를 침공한 후 멕시코의 황제로 만들어 놓았던 막시밀리아노 황제이다. 그는 베니토 후아레스의 혁명군에 의해 암살당했다. 막시밀리아노 황제의 오른쪽으로 가종이를 들고 있는 인물이 멕시코 건국 대통령 베니토 후아레스로 오늘날 멕시코의 국부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제 자유를 향한 멕시코 투쟁의 상징인 차풀테팩 성으로 갈 차례이다. 멕시코의 지하철의 역 이름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모두 그림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지하철 노선도나 지하철역 안의 지명에서 대포나 인물 그리고 벌레 등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차풀테팩 성을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1호선 차풀테팩 Chapultepec 역에서 내려야 한다. 차풀테팩은 메뚜기를 뜻하는 말로 지하철역에 메뚜기가 그려져 있다.
지하철 역을 나서면 차풀테백 공원의 중앙에 소년영웅 기념비가 나온다. 1847년 9월 13일 미국이 차풀테펙 성을 포위했을 때 끝까지 항전한 6명의 사관학교 학생들을 기리기 위해 1952년에 지어진 기념탑이다. 특히 6명의 학생들 중 후안 에스쿠티아 Juan Escutia는 마지막 순간에 멕시코 국기가 미군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몸에 국기를 칭칭 감은 채 성벽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공원을 지나 언덕을 조금 오르면 성이 나온다.
1785년 스페인 총독 베르나르도 데 갈베스의 명령에 의해 성을 지었지만 멕시코 독립전쟁 기간이었던 1810년에서 1821년까지 방치되었다가 1833년 개조되어 사관학교로 문을 열었다. 이후 1846년에서 1848년에 걸친 멕시코와 미국 전쟁 동안 여섯 명의 젊은 생도들이 미국 해병대에 맞서 이곳을 방어하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결국 멕시코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까지의 거대한 영토를 미국에 넘겨주면서 지금의 영토를 갖게 되었다.
1862년 나폴레옹 3세 통치하에서 프랑스가 멕시코를 침공하였으며 2년 후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이 아내인 황후 카를로타와 더불어 멕시코 황제로 등극한다. 막시밀리안은 성을 개조하여 유럽풍의 화려한 궁전으로 만들었다. 이후 1867년 제국이 몰락하자 차풀테펙 성은 대통령 거주지가 되었다가 1939년에는 국립 역사박물관이 되었다.
국립 역사박물관 입구로 들어가면 천장에 멕시코 국기를 두르고 투신을 하는 사관생도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1층의 넓은 방에는 멕시코의 화가인 시케이로스가 그린 멕시코 독립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대형벽화들이 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1854년에는 원주민 변호사인 후아레스가 멕시코 초대 대통령이 되어 개혁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으로 종교의 정치 개입을 금지하고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개혁을 이루었다.
후아레스를 이은 포르피리오 디아스 장군은 30년간 독재하며 경제를 발전시켰으나 자신의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에게 무자비한 탄압을 하였다. 작품에서 디아스는 대통령의 의자에 앉아 헌법을 짓밟고 있다. 이는 자신의 중임을 허용하는 헌법을 개정하면서 독재정치를 했던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그의 주위에는 장군들과 자본가 그리고 매춘부들이 둘러싸고 있다.
디아스의 통치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자 1910년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다. 멕시코 혁명 당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투쟁을 하는데 그 모습을 벽화를 통해 볼 수 있다. 당시 투쟁에 참석하였던 북부 광산 노동자와 및 남부 농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전설적인 영웅 판초 비야와 멕시코 남부 농민운동의 대부인 사 빠따 등의 모습이 보인다.
바퀴벌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라쿠카라차>는 1910년부터 1920년까지 일어났던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혁명군이 부르던 노래로 보잘 것 없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아무리 죽여도 나타나는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암살로 생을 마감한 멕시코 혁명전쟁의 영웅인 판초 비야를 위한 노래로 알려져 있다. 혁명 이후 1917년에 농민과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된 혁신적인 신헌법이 시행되면서 멕시코는 오늘날 근대 국가의 바탕이 되었다.
역사박물관을 나와 바로 옆에 보이는 막시밀리아노 1세가 머물렀던 프랑스식 궁전을 관람하자.
나폴레옹 3세의 후원을 받은 멕시코의 보수주의자들은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셉의 동생인 막시밀리아노 대공을 황제직으로 맞이하지만 나폴레옹 3세가 프러시아와의 충돌을 구실로 프랑스군을 멕시코에서 철수시키면서 막시밀리아노의 힘이 약화되고 미국 또한 막시밀라아노 황제의 퇴위와 출국을 요구했다. 결국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자유주의자들의 군대가 그를 체포하고 국내외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1867년 처형하였다.
1864년 초대 황제였던 막시밀리아노 1세는 차풀테펙 성을 제국의 공식 관저로 격상하면서 현재의 궁전으로 개조한다. 당시 황제는 수많은 유럽과 자국 출신의 건축가를 데려와서 화려한 궁전을 지었다. 또한 유럽에서 수많은 가구를 들여와 궁전을 장식했다.
화려한 2층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12개의 방들과 탑이 있다. 2층 건물에 연결된 테라스로 나가면 화려한 바닥 문양이 눈에 들어온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차풀테펙 공원과 도시의 풍경이 아름답다.
테라스에서 궁전으로 돌아오면 마치 프랑스 궁전을 보는 듯 굉장히 화려한 내부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대통령들이 사용했던 식기와 가구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식당과 집무실 그리고 침실 등이 여행자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끈다.
화려하면서 고풍스러운 방들을 지나면 중국으로부터 선물 받은 도자기가 놓인 전시실과 화려한 문양의 스태인 레스가 장식한 복도를 만난다.
복도를 지나면 2층 안쪽으로는 멋진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멕시코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정원 중앙에는 멋진 탑이 있어 동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독립과 해방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역사와 그 위에 세워진 화려한 식민지 궁전의 모습은 멕시코의 모든 것을 한 번에 보여주는 멕시코 시티 최고의 관광지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