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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Oct 27. 2020

멕시코 시티 여행 3

인류학 박물관과 프리다 칼로

멕시코 시티의 국립 인류학 박물관은 멕시코에서 가장 큰 박물관으로 1층은 각기 다른 12개 문명에 관한 유물 전시관으로 2층은 멕시코 각 지방의 민속과 풍물을 엿볼 수 있는 민속관으로 구성되어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유럽의 멕시코 정복 이전의 원주민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재규어를 묘사한 그림이 있고 중앙에는 마야 문명의 유적에 있는 생명의 나무에서 모티브를 얻은 커다란 분수 기둥이 있다.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중앙아메리카 문명의 시작인 마야 문명의 유물과 그 뒤를 이은 테오티우아칸 유물 그리고 오늘날 멕시코의 시작인 아스텍 문명의 흔적이다.


먼저 10 전시실로 이동하여 마야문명의 유물을 감상하자.


기원전 2천 년 경에 시작된 신비의 마야문명은 서기 100년에 인구 10만의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250~900년 사이에 거대 도시국가들을 중심으로 절정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전성기가 끝날 무렵에 기후 변화와 가뭄으로 농업이 붕괴하면서 부족한 자원을 놓고 전쟁이 격화되어 인구가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마야문명은 천문학과 수학 그리고 예술적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라틴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상형문자를 갖고 있었다. 특히 0과 20진법을 사용한 수학과 천문학을 바탕으로 한 마야력은 2012년 지구 종말론을 불러오기도 했을 만큼 유명하다. 마야 전시관은 기원전 600년 전부터 싹트기 시작한 여러 지역의 마야 문명에 관한 유물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지하로 내려가면 완벽하게 재현한 파칼 왕의 지하 묘를 감상할 수 있다.



팔렌케는 마야 문명의 고대 도시로 800년대까지 번성했었다. 팔렌케의 12대 왕인 파칼은 마야 문명국가의 왕 중 가장 오래된 68년의 재위 기간을 가진 위대한 왕이었다. 그의 시신을 모신 무덤의 석관에는 마야의 내세관을 보여준다.



석관의 덮게에는 왕관을 쓴 파칼왕의 모습이 중앙에 보인다. 당시 인신 공양의 전통에 따라 신단위에 비스듬히 누운 왕은 새와 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창조주이자 태양의 신인 케찰코아틀에게 바쳐지고 있는 모습이다.



파칼왕의 무덤에서 압권은 파칼왕의 마스크이다. 발견 당시 유골의 얼굴 부분에 씌워져 있었던 마스크는 300개의 옥 조각을 모자이크 기법으로 정교하게 조각하여 만든 가면으로 당시 마야의 공예와 세공기술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대다수의 데스마스크가 생전에 인물의 모습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파칼왕의 외모를 단편적으로라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마야의 멸망 원인은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아즈텍과 잉카 제국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멸망해서 인과 관계가 명확하다. 반면에 마야 문명은 신대륙 발견 이전에 거의 붕괴한 상태였고 남아있던 소수의 부족도 정복자들과 전염병에 희생되어 역사에서 사라졌다.


다음으로 5 전실로 이동하여 테오티우아칸의 유물을 감상하자. 테오티우아칸은 신대륙 발견 이전의 중미에 위치했던 도시들 중 가장 큰 도시로 서기 원년부터 500년 사이에 인구 10만에 육박하며 가장 절정기를 누렸다. 당시 도시 인구 10만은 전 세계 모든 도시를 통틀어 가장 많은 인구수였다.



테오티우아칸 전시실에서 돋보이는 것은 케찰코아틀 신전이다. 전시실 중앙에는 6층으로 이루어진 케찰코아틀 신전 가운데 3층 부분을 복원해 놓았는데 대리석과 화강암 위에 전형적인 메소 아메리카의 빨간색 페인트가 눈에 띈다.  또한 신전에 새겨진 깃털 달린 뱀 형상을 가지고 있는 케찰코아틀 신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메소아메리카 지방에서 뱀은 다산과 대지를 상징한다. 그랴서 깃털 달린 뱀을 모습을 한 케찰코아틀은 문명의 초기에는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이 숭상했던 농업의 신이었다.

이후 다른 신들의 신격을 흡수하면서 풍요와 태양 그리고 창조와 부활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기원전 10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테오티우아칸 유적지에는 케찰코아틀을 공양하는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는데 박물관에서 그 모형을 볼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7 전시실로 이동하여 멕시코의 전신이 되었던 아즈텍 문명의 유물을 감상하자.


멕시코에는 마야문명 이후 몇 개의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영향이 강했던 테오티우아칸 문명이 7세기경 멸망하고, 그 뒤를 이은 톨텍 문명이 12세까지 멕시코 지역에서 맹위를 떨치다가 멸망하였다. 이후 북방에 살던 민족들이 멕시코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 중 가장 늦게 이주한 종족이 아즈텍인들이었다. 그들은 싸움과 전쟁에 능했으며 약탈을 하며 살았다.


그들은 한 때 톨택족의 노예 상태로 살았으며 13세기 톨텍 족의 공주를 살해하는 일을 저질러 도시에서 쫓겨나 늪지로 강제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늪지 한가운데에 있던 섬에서 선인장 위에서 뱀을 먹고 있는 독수리를 보고 이를 신의 뜻으로 생각하여 그곳에 정착한다. 1325년 아즈텍 족은 섬 주위에 있던 늪지를 개척해서 지금의 멕시코 시티 자리에 테노치티틀이라는 도시를 세웠으며 15세기 말부터 군사와 정치력을 증강하여 멕시코의 주인이 되었다.



아즈텍 전시실에는 1520년 스페인 군대가 파괴하기 전 아스텍 제국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을 축소한 모형도와 그들이 섬겼던 신의 형상, 동물 모양의 그릇 등 화려하고 장엄한 전시물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태양의 돌이다. 태양신을 섬긴 아즈텍 인의 우주관을 보여주는 태양의 돌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으로 농경과 의식의 시기를 결정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들의 달력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제5 태양 시대는 2012년 12월 23일에 끝난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 태양이 사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 인신공양을 행했다.


그들은 즉 세계의 본질인 허무의 암흑과 싸우는 태양에게 인간의 피와 심장을 바쳐, 아스텍 시대를 영원히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를 위해 여러 개의 신전을 세웠으며 인신공양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포로들을 잡아들였다. 그러나 깃털 달린 뱀이 흰 피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돌아와 자기들을 구언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과는 달리 흰 피부의 스페인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다.


코르테스가 아스텍을 정복한 후 무엇보다 먼저 한 것이 인신공양 금지와 신전 파괴였다. 뒤이어 이루어진 대대적인 가톨릭 포교는 폭력과 약탈, 파괴를 수반하였으며 수 없이 많은 인디오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들의 문화 역시 사라졌다.


아즈텍 전시실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전시물은 코아트리 쿠에 여신상이다.



높이 2.5미터의 거대한 코아트리 구에 여신상은 죽음의 신이자 다른 신들의 어머니 여신으로 뱀으로 얽힌 치마를 입고 짐승의 발톱을 가진 모습이다. 여신의 복부에 새겨진 머리 잘린 뱀에서 떨어진 피가 대지로 스며들면 모든 식물들이 살아난다는 전설이 있다.  


이제 멕시코 시티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인 프리다 칼로의 생가를 방문하자.


프리다 칼로는 평소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 정도로 여겨졌지만 그녀의 인생 말미와 생후에는 디에고 리베라가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녀의 강렬한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멕시코 시티에 있는 그녀의 집 블루하우스는 그녀의 생활과 작품 활동을 한 곳으로 언제나 많은 여행자들이 집을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그녀가 그린 그림과 그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이는데 특히 누워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인 프리다 칼로는 6살 때 소아마비로 가늘어진 오른쪽 다리 때문에 심각한 열등감에 휩싸이며 성장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바꾼 사건은 18살에 일어난 교통사고였다.


당시 그녀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며 버스의 레일이 그녀의 배를 관통하여 척추를 뚫고 들어오는 대형 사고를 겪었지만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 사고로  평생 아이들 가질 수 없는 불구자의 몸이 된 그녀는 32번의 수술을 해야 했고 특수 제작된 코르셋과 몸을 지탱해주는 기구를 착용해야만 했다. 사고 후 그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침대 위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그림은 그녀의 인생이었고,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프리다 칼로를 말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디에고 리베라이다. 프리다에게 디에고는 영혼이었고 고통의 근원이었으며 삶의 목적이었다. 그녀의 책상 위에 디에고의 사진이 보인다. 프리다 칼로는 21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며 디에고 리베라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지만 디에고 리베라의 지칠 줄 모르는 애정행각은 그녀를 멍들게 했고, 고통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그리고 마침내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디에고의 깊은 관계를 알고 큰 충격을 받은 프리다는 별거에 이르렀고 이혼을 하게 된다. 프리다는 이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지만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서로 생활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디에고와 다시 재결합을 시도한다.



그녀의 작품 <두 명의 프리다>에서 디에고를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외로워지는 프리다와 고독과 아픔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프리다를 보여준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프리다의 심장은 비어 있고 동맥은 끊어져 있다. 프리다에게 이별은 자아가 두 개로 분열되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 <상처 입은 사슴>을 살펴보자.



아스텍 달력에서 사슴의 날이 자신이 생일인 프리다는 사슴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사슴의 몸을 하고 몸에 화살을 맞은 프리다가 등장한다. 뱃속의 아이까지 잃은 프리다는 디에고로부터 화살에 맞은 사슴처럼 잔인한 슬픔을 당하면서도 끝내 사랑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재결합을 한다.



그녀의 <우주와 지구, 그리고 멕시코에서 나와 디에고> 작품에서 벌거벗은 디에고를 안고 있는 자신과 그들을 안고 있는 여신이 보인다. 여신은 조국 멕시코를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프리다는 디에고에 대한 사랑을 모성애로 승화시키며 여성으로서의 자신과 작가로서의 자신을 성숙시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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