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파라미드
멕시코 시티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테오티우아칸은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큰 피라미드 유적지이자 죽은 인간이 신이 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멕시코의 중앙에 세워진 거대한 피라미드는 신선한 충격이다.
테오티우아칸 유적은 기원전 300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고 인신공양을 시행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태양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150년경, 달의 피라미드는 기원후 500년경에 지어졌다.
전성기인 기원 후 300~600년에는 인구 15만 명이 살았던 테오티우아칸 문명은 과테말라의 마야 문명에까지 영향을 주었으나 기원후 600년이 되면서 쇠퇴하였다. 훗날 이 유적을 발견한 아즈텍인들은 규모에 놀라 신들의 도시라 믿었고 그들이 사용했던 나와틀어로 <신의 탄생지>또는 <신의 길을 가진 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로 테오티우아칸이라 지었다.
테오티우아칸은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와 죽은 자의 거리 그리고 케찰코아틀 신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케찰코아틀 신전은 도시에서 가장 계급이 높았던 사제들과 관리들이 살았던 곳으로 신전 가운데 작은 피라미드 2개가 세워져 있다. 그중 뒤편에 있는 것이 케찰코아틀 신전으로 아즈택인들이 하늘과 창조의 신이자 깃털 달린 뱀인 케찰코아틀을 섬기던 곳이다.
계단 좌우와 기단마다 깃털 달린 뱀의 조각상이 보인다. 깃털 달린 뱀은 조개껍질 사이를 헤엄치는 물결 모양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그 옆으로 동그라미 두 개의 고글 눈을 가진 불뱀인 시구아틀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는 전쟁의 신으로 추측된다. 1980년대 이곳에서 발견된 수많은 전사의 해골 유골이 이를 증명하며 그 속에 통치자의 몸도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테오티우아칸 중앙에 있는 죽은 자의 길은 달의 피라미드까지 길이 4km, 폭 45m로 신에게 바칠 인간 제물을 운반해서 죽은 자의 길이라고 불렀다. 도로 양쪽에는 신전이나 주거지역으로 건축물과 광장의 잔해가 남아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3번째 크기를 자랑하는 태양의 피라미드는 가로 225미터, 세로 65미터의 피라미드로 기자의 피라미드보다는 작지만 계단과 함께 단을 이루는 피라미드는 정교하다. 기원전 200년에 시작하여 기원 후 150년에 완성된 피라미드는 기존의 피라미드에 새로운 피라미드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250개의 계단을 걸어올라 정상에 서면 발아래 테오티우아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태양의 정기를 받기 위해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여행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춘분과 추분이 되면 피라미드 꼭대기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고 한다.
죽은 자의 길이 끝나는 북쪽 끝에 달의 피라미드가 있다.
테오티우아칸의 실질적인 중심 달의 피라미드는 기원 후 500년에 만들어졌으며 가로 150m, 세로 42m의 피라미드로 실제적인 의례들을 올린 곳으로 이 곳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달의 피라미드 아래에는 하얀 기둥이 세워진 케살파발로틀 궁전이 있다. 이 곳은 달의 피라미드에서 제례를 지내던 신관이나 왕족이 거주하는 곳으로 안쪽의 기둥에 나비와 새의 무늬가 새겨진 프레스코화와 부조가 남아 있다.
테우티우아칸을 여행하였다면 멕시코 사람들에게는 기적의 장소로 알려진 과달루페 성당을 둘러보고 멕시코 시티로 돌아오면 좋다.
1531년 12월, 후안 디에고라는 인디언이 길을 가는데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사랑과 구원을 위해 당신을 위한 성당을 세우라고 이야기한다. 디에고는 이 사실을 스페인 신부에게 알렸으나 신부는 믿지 않았다.
얼마 후 디에고 앞에 다시 나타난 마리아는 그에게 장미꽃을 따서 그의 옷에 싸서 주며 이것을 들고 신부에게 가서 성당을 지을 것을 전하라고 한다. 디에고는 다시 신부에게 가서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의심하던 신부는 장미를 보자 깜짝 놀란다. 장미는 자신의 고향에서만 피던 카스티야산 장미였으며 장미를 들고 온 디에고의 옷에 마리아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성당을 세웠는데 그 성당이 과날루페 성당이다.
성당의 중앙제단에 후안 디에고가 본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보이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마리아의 모습이 아니라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를 가진 인디언의 모습이다. 성당이 완성되자 교황을 비롯하여 멕시코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찾았다.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인디언과 멕시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과달루페 성당은 곧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성당에서는 입구에서부터 걷기를 포기하고 무릎만 써서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성모 마리아의 축일인 12월 12일이 되면 멕시코 전역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를 생각하며 무릎으로 기어서 성당으로 들어간다.
처음 세워진 성당은 땅이 약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지금은 출입이 금지되어 이를 대신하여 1976년, 바로 건너편에 보다 큰 건물을 세웠다. 과달루페 성당은 가난한 멕시코 인들과 인디언들에게 힘든 현실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주는 성스러운 곳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