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무전여행
1994년 학교를 졸업했지만 시위 전과로 모든 취업이 가로막혀 있었다. 마지막에 지도 교수님이 큰 화장품 회사를 추천해 주셨지만 면접에서 역시 탈락했다.
백수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돈이 없어 늘 친구 집에서 노닥거리며 강소주를 마셨고 음악을 듣는가 하면 가까운 곳에 여행을 다녔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때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보다 어린 여대생이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하고 왔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한 번 가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이라는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당시 소련 연방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등 세계사적인 격변기에 그 현장을 여행하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어디든 떠나고 싶었던 것이 더 솔직한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했다. 젊기도 하고 명확한 목표가 있어 공사일은 힘든 줄 몰랐다. 그렇게 3달을 일하자 유럽을 한 달 동안 여행할 수 있는 경비가 생겼다.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유럽으로 갔다.
스마트폰은 물론 변변한 정보책자 하나 없던 시절, 런던에 도착한 나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정보가 거의 없어 도심 중앙에 있는 호텔에서 먹고 자며 2박 3일 동안 여행했다. 덕분에 경비의 5분의 1을 사용했다. 런던의 물가는 공포 그 자체였다.
런던에서 이틀을 보낸 후 서둘러 야간에 운행하는 유로라인을 타고 벨기에로 건너갔다. 유로라인은 버스를 싣고 도버해협을 건너는 배로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요금이 저렴하고 숙박도 해결할 수 있어 당시 돈 없는 배낭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벨기에에 도착하여 기인 같은 한국인 여행자를 만났다.
그와 동행하면서 여행 경비를 아끼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하루 세끼 바케트만 먹었으며 잠은 기차역이나 야간열차에서 해결했다. 그렇게 그와 며칠을 보내고 나니 경비는 많이 아꼈으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얼마 후 그는 여행경비의 절반 이상을 남기며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말로는 남은 여행 경비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대전 엑스포 관광에 사용할 것이라 했다. 나는 그와 진심으로 기분 좋게 이별을 하였다.
그를 보내고 독일로 넘어왔다. 야간열차에서 내려 이제 막 통일이 되어 어수선한 베를린을 걷고 있는데 나를 잡는 여인이 있었다. 그분은 거지꼴로 다니는 내가 너무 애처로워 밥을 사주신다고 한다. 몇 번 거절하였으나 그분의 강력한 제안에 할 수 없이 이끌려 밥을 얻어먹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매니저가 왔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유명한 가수인 <문희옥>인 줄 알았다. 그녀는 해외동포를 위해 위문공연을 왔다가 우연히 나를 발견하여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 후로 한 번씩 TV에서 그녀를 보면 고마움이 절로 일어나 진심으로 응원하였다.
베를린의 숙소에 짐을 푼 뒤 나는 독일이 분단되었을 때 동서 베를린을 왕래할 수 있었던 유일한 관문인 <체크포인트 찰리>를 찾았다.
우리로 치면 판문점과 같은 곳으로 이 곳에는 더 이상 군인들은 없었다. 다만 사진 찍기에 바쁜 관광객만 넘치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으로 왔다.
프로이센 제국의 위상을 자랑하기 위해 세워진 브란덴부르크 문은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부터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1989년 11월 10만여 명의 인파가 이 곳에 모인 가운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현재 브란덴부르크 문은 통일 독일의 상징이 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조금 걸어가면 떨어진 무너진 베를린 장벽이 나타난다. 장벽 아래 전시된 사진들을 차례로 보고 있는 동안 분단된 나의 조국이 생각나며 가슴이 물밀듯 먹먹해져 왔다. 이런 감정이 나에게 남아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시내로 조금 내려오면 공원 옆으로 1600평 규모의 부지에 수 백 가지 높이와 크기의 콘크리트 블록들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의자 높이의 블록들을 부담 없이 지나 중앙으로 들어가면 안으로 갈수록 내 키를 훨씬 넘는 블록들이 나를 감싸며 상당한 압박감을 자아낸다.
이 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에 갇혀있다가 사망한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비석들이 다양한 그들의 몸과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베를린 여행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비석처럼 묵직한 돌덩이가 마음에 담겨 있음을 느꼈다.
다음날 나는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로 가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다. 당시 동유럽은 공산권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물가가 엄청나게 저렴했다. 그때 부다페스트에서 먹었던 굴라쉬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여행 일정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알프스였다.
밤마다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는 알프스의 산장에 며칠 묵으며 함께 모인 한국 여행자와 함께 라면과 삼겹살 그리고 백숙을 직접 해 먹으며 한국음식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또한 오전부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걸었던 알프스 하이킹은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바로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를 일주하고 파리를 거쳐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귀국하니 대한민국에서 처음 생긴 유럽 배낭여행업체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원서를 내고 면접까지 마치자 입사하라는 전화가 왔다. 초봉 35만 원이라는 뒤에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