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여행사

사회생활의 시작

by 손봉기

여행사에 입사한 나는 회사의 사장님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절대 사기꾼이 되면 안 된다



당시 여행업은 초기 단계로 패키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패키지 회사들은 저렴한 판매가로 경쟁하며 부족한 수익을 채우기 위해 현지에서 무리한 쇼핑과 옵션 그리고 팁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여행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장님은 우리 자식들이 학교에 가서 아버지 직업을 물었을 때 여행사에서 일한다고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배낭여행 상품이었다.


이는 현지에서 강요되는 일체의 쇼핑과 옵션이 없는 상품으로 자유롭게 혼자 다니는 프로그램과 인솔자가 있어 도움을 주는 단체 프로그램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상품 가격은 패키지에 비해서 조금 높았지만 여행기간을 15일에서 30일까지 늘려 고객의 만족도를 높였다.


상품이 나오자 대학생과 교사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회사는 전국에 지점을 둘 정도로 성장해 나갔으며 그 무렵 나는 결혼을 서둘렀다.


당시 지금의 아내와 나는 학교에서 만난 캠퍼스 커플로 5년이 넘게 사귀고 있었다. 같이 사회에 나온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혼하기로 결심을 하고 양가에 인사를 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당시 맹목적으로 토속신앙에 빠져 있던 어머니는 점집에 들러 우리 둘의 궁합을 보았는데 찾아간 점집마다 둘이 결혼을 하면 내가 3년 안에 죽는다는 사주가 나왔다.


한 집도 아니고 여러 집에서 똑같은 사주가 나오자 어머니는 심하게 결혼을 반대하셨다. 그리고 결혼식 이틀 전까지 나를 말리셨으나 내가 결심을 바꾸지 않자 결국 반대를 포기하셨다. 그리고 아들은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결혼식 전날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굿을 하셨다. 나는 결혼식날 아침까지 알 수 없는 북과 징소리를 들으며 예식장으로 향했다. 그 덕분인지 결혼은 무사히 치렀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결혼식을 하고 나자 3년 안에 내가 죽는다는 말이 나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매일마다 내가 살아남은 기간을 스스로 세어가며 불안해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결혼을 하고 3년째 되는 날 친구들을 불러 크게 술을 사며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는데 IMF가 찾아왔다.


주가는 바닥을 치고 환율은 치솟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줄줄이 도산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 역시 어려움에 처해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사표를 쓰고 나가야 했다. 당시 부산지사장이었던 나는 퇴직금과 가지고 있던 여유자금으로 망한 회사를 인수하여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매출 0원의 기나긴 겨울을 버텨야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서서히 경기가 회복되자 이전의 고객들이 다시 여행사를 찾기 시작했다.


줄어든 인원으로 상담과 인솔이 감당이 안되어 새로운 구성원을 충원해야 했다. 그런데 조그만 여행사에 지원자가 많이 없어 친한 학교 후배들을 불러서 함께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유럽 출장을 갔다 오니 회사 구성원 모두 사표를 내었다. 회사에 돈이 있는데 월급을 왜 많이 올려주지 않느냐는 것이 퇴사의 이유였다. 사전에 어떤 이야기도 없이 갑자기 모두 한 뜻으로 사표를 내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들었다. 더욱이 친한 후배들이 함께 동참하고 있어서 더욱 충격이었다.


계속 여행사를 운영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 없이는 이 일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통장에 들어 있던 돈은 매출이 없다면 6개월도 버티지 못하는 액수였다.


다음날 출근도 하지 않고 혼자 지리산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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