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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치아 Apr 24. 2021

[작문연습]~야/아 미안해

미안함의 문법

뭐가 미안한데?

듣자마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호환과 마마보다 더 두렵다. ‘이미 미안하다고 했는데 굳이 그 이유를 찾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이런 볼멘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하는 이 한마디는 한때 ‘연인 사이 금기어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불필요한 다툼에 기름을 붓는 것 같지만, 이 말은 사실 ‘미안함’의 본질을 꿰뚫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미안하다’라는 말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미안하다’는 형용사다. 즉, 무엇의 상태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를 들면, ‘얼음이 차갑다.’라는 문장에서 ‘차갑다’는 얼음의 차가운 성질을 뜻한다. 이렇듯, 형용사는 서술을 받을 수 있는 목적어가 꼭 있어야 한다. 대응하는 그 ‘무엇’이 없다면, 형용사는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다. 만약 우리가 “아름답다.”라고 말을 한다면, 듣는 사람은 자연스레 “뭐가?”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다. 이런 형용사의 특징을 고려하면 ‘미안하다’라는 말 역시 미안함을 받거나 이유가 되는 명확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자,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저 물음에 대한 답은 형용사의 사용법을 고려한 “내가 한 (어떤) 행동 때문에 미안해.”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미안함에 대응되는 분명한 ‘무엇’이 있는 것이 문법적으로도 맞는 ‘미안하다’의 용법이다. 여기에서 “그냥 (다) 미안해”라고 하는 건 틀린 답이다. 미안함이라는 감정의 본질 역시 마찬가지다. 사과라는 행위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뉘우치는 자세에서 출발한다. 난감한 상황을 만든 책임의 주체를 분명히 해 잘못을 인정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낮춰 용서를 구하는 것까지가 진정한 미안함이다. 이 조건들이 성립하지 않는 사과는 목적어가 없는 형용사처럼 공허한 사과일 뿐이다.

     

전국에 “미안해” 바람이 불고 있다. 동영상으로, 해시태그로, 사과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다들 자신만의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미안함’들에는 그 마음을 받는 목적어가 없다. 미안한 감정의 조건인 책임의 주체를 아는 것과 용서를 구하는 자세도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유행에 동참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사과 아닌 사과가 더 많아 보일 뿐이다.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만 남기는 유체이탈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다시 ‘미안하다’라는 형용사의 사용법과 사과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복습해보자. 그래야 “그냥 미안해”라는 참을 수 없는 미안함의 가벼움에서 벗어나 진심의 무게가 담긴 사과를 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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