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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Dec 02. 2021

김장, 엄마가 생각나는 계절


텃밭은 이제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다.

이번 주부터 비바람이 심하면서 날씨가 급격히 추워진다기에 서둘러 밭에 가서 무와 배추를 뽑았다. 얼면 먹지 못한다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급했다.


심었을 때는 별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뽑고 나니 양이 많았다. 속이 꽉 차지는 않았지만 배추는 무려 20포기가 넘었으며 무 역시 그 정도의 양이었다. 심고 가꿀 때는 너무 즐겁고 뿌듯했지만 막상 뽑고 나니 이 많은 채소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사실 나는 아직 한 번도 스스로 김장을 해 본 적이 없다. 늘 양가의 도움으로 김치를 얻어먹었기 때문에, 혼자 김장을 하려니 막막함이 앞섰다. 그렇다고 이 김장 때문에 멀리 사시는 엄마께 도움을 청하기도 애매했다.



나는 남편과 서로 말이 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김장하는 법을 검색했다. 사실 한 번도 검색해 본 적이 없었다. 매해 겨울,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김치를 보냈고 나 역시 당연하다는 듯 그걸 받았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어떻게든 내가 키운 채소들을 맛있게 먹어야 했다.


김장을 검색하면서 나는 세 번을 놀랐는데, 첫 번째는 김치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배추를 절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 마지막은 이걸 내가 혼자 다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마트에 가서 김치 속 재료를 사 보기로 했다. 어느 정도의 양이 필요한지 몰라서 그냥 대충(?) 샀다. 그냥 고춧가루에 액젓을 넣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특히 풀을 쑤어야 한다는 것에 놀랐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가는구나.


그다음으로는 내일 있을 김장을 위해 배추와 무를 절이기로 했다. 무는 많이 절이지 않아도 되지만 배추는 넉넉히 절여야 한단다. 배추를 쪼개는 것부터 세척, 소금을 뿌리고 이리저리 뒤집어 주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무엇보다 허리가 너무 아팠다.


다 있다는 그곳에 가서 김장 매트를 사서 밑도 끝도 없이 김장을 시작했다. 사실 지금도 김장이 제대로 된 건지 잘 모르겠다. 그저 생각보다 맛이 나쁘진 않아서 처음치고는 괜찮았다 싶다.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김장이 끝나고 수육을 삶아 남편과 둘이 마주 앉아 맛을 보았다.


김치를 먹는데 눈물이 났다. 나 조차도 왜 눈물이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복잡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단순히 몸이 피곤해서 눈물이 난 것은 아니었다.


이 많은 김치를 그동안 나는 당연하듯 받아먹었고(심지어 멀리 산다고 도운 게 손에 꼽힌다) 엄마는 늘 집으로 돌아가는 내 차 트렁크에 그저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고 바리바리 싸서 올려 보내셨다. 엄마는 내게 줄 김치를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치 하나를 만드는 데 이렇게 많은 마음과 정성이 들어간다는 것을, 그 김치 하나에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간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내가 돌아가고 나면 엄마는 피곤함과 긴장의 풀림 때문에 이틀이고 사흘이고 앓아누웠다는 것을 왜 난 뒤늦게 알았을까. 나도 나중에는 내 딸에게 이렇게 김장을 해 주겠지. 그때가 되면 나도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려나. 엄마의 사랑은 도대체 어디까지 일까. 나는 언제쯤이 되어야 엄마를 더 이해하고 철이 더 드려나.


엄마의 사랑은 내가 매일 무심한 듯 차리던 밥상에서조차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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