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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YB Dec 28. 2023

당신은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가?

앤서니 보데인의 죽음에 대해

https://youtu.be/6oIzFdKzNoE?si=SQNAOrkxhrJEJ3Wg

돈과 경험은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

돈과 새로운 경험이 주는 행복은 과연 "좋은 것"일까?

평생 세계 여행을 다니며 새롭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 현대인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영상에서 다루는 인물 <앤서니 보데인>은 그런 현대사회인들이 부러워하는 삶 그 자체를 보여주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을 가진 자"로 불려 왔지만 2018년 출장 중 호텔 욕실에서 자결해 세계를 큰 충격으로 빠뜨렸다.


우리는 대체로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의 허망함을 잘 알고 있다.

100억을 벌면 1000억을 벌고 싶어 하고, 끝이 없는 게 인간의 욕심이며, 결국 불만족하며 죽는 게 돈을 추구하는 자들의 말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21세기에 떠오른 것이 지식과 경험에 대한 추구와 욕망이다.

물질보다 경험을 추구하게 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앤서니 보데인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듯 경험과 지식에 대한 욕망도 인생에서 작용하는 방식은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과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과유불급이다.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정보에 대한 추구, 그에 대한 욕심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영상에는 이에 대해 재고해 보게 만드는 시가 소개되어 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Le Voyage(악의 꽃)

우편엽서를 사랑하는 아이에게,
세상은 자신의 상상력(욕망하는) 만큼이나 넓다.

등불 아래에서 보는 세상은 얼마나 넓은가!
상상 속에서 더듬는 세상은 얼마나 좁은가!

이는 세상을 다 경험하고 난 뒤 돌아와 느끼는 지루함과 시시함, 즉, 세상에 대한 권태를 이야기하고 있는 구절이다.

우편엽서를 사랑하는 아이는 아직 세상을 꿈꾸고 있는 상태이므로 그대로 놔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꿈을 꾸고 있는 상태가 더 아름답지 않을까?


이 시의 구조는 여행을 아직 가보지 못한 아이가 하는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여행을 질릴 정도로 갔다 와 모든 것을 겪은 사람이 대답해 주는 형식으로, 화자가 겪은 신기한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경험들을 쌓은 화자는 어딘가 앤서니 보데인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딱히 찾아다니지도 않았지만, 모든 곳에서 본 것이 있는데
운명의 사다리 위부터 아래까지 주렁주렁 매달린 것,
인간의 끊임없는 죄악이 펼쳐지는 지루한 광경이었다.

앤서니 보데인도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난한 지역이나 슬랭을 많이 경험했다.

라오스에 갔던 앤서니와 출연진은 민간인 폭격기가 날아드는 와중에도 한가롭게 누워 선탠이나 하며 전쟁을 구경하는, 한가롭게 요리 프로나 찍고 있는 자신들을 자책하기도 했다.

앤서니 보데인이 느끼는 현실은 항상 불공정하고 불안했다.

그는 어린 시절 마약을 하다가 끊은 경험이 있는 반면 미국 최고 요리 명문대인 CIA를 나왔다.

그는 지루한 삶을 혐오하면서 동시에 평범한 삶을 목표로 했다.

그는 늘 자유를 갈망하면서 안정을 꿈꿨다.

그런 모순 속에서 다른 삶을 관찰했다.


평범하고도 특별한 듯 다른 삶을 사는 각양각생의 여러 인간의 여러 모습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할수록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인간의 끊임없고 지루한 죄악이 펼쳐지는 광경이었다.

모든 것이 지루해지고 허무해질 정도로 세상의 곳곳을 다닌 앤서니 보데인은

삶이란 건 어쩌면 어느 정도 비슷비슷하다고, 이제 더는 새로움을 찾을 수 없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아 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시간이 됐다! 닻을 올려라!
이 세상은 이제 지겹다, 죽음아! 항해하자! 나는 출발할 준비가 되었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무슨 상관인가?
모든 심연의 끝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이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마인드와 한 가지의 집중하는 성향(하나를 하면 끝장을 보는 성향)이 요구되는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들,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잊고 살기 쉽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안정된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첨가하는 방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호기심과 창의력은 클래식한 안정감에 기반해야 오래가는 것이 아닐까.

정착과 이주, 익숙함과 새로움, 안정감과 불안감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 갈지에 대한 과제를 우리에게 남겨 두고 떠난 그의 뒷모습은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추구해 왔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묻는 것 같다.








토니(앤서니)는 외로웠나 봐.
가슴속의 고통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고 느낀 것 같아.
- 로드러너 중에서


그런데 좀 다른 얘기지만, 내 생각엔 앤서니 보데인이 죽은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삶에 대한 권태도 작용했겠지만 죽음의 결정적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이 아니었을까.

그의 죽음 직전에는 닳고 닳아 버린 그의 거친 연애 세포를 깨워준, 색다른 매력에 그를 흠뻑 빠지게 한, 20살 연하의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가 있었다.


그의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아시아와 관련된 일에서는 중립을 잃고 ‘갓 총각 딱지를 뗀 고교생’처럼 흥분했다고 한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 혹은 동료라도, 아시아와 불화가 있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를 통보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심지어는 아시아와 함께 영화 촬영을 했던 남자 배우가 당시 미성년자였던 자신을 그녀가 성폭행했다고 주장하며 고소했을 때, 앤서니 보데인은 사랑하는 그녀를 대신해서 합의금 4억을 지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있은 후 얼마 안되어 아시아가 연하의 프랑스 작가와 날마다 스킨십하는 사진이 기사에 보도된다. 다시 그로부터 얼마 후, 앤서니의 인스타에 의문의 영상이 업로드 되었고, 그는 호텔 객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나는 내가 너무 중독적으로 빠져드는 사람, 내가 너무 매력을 느껴서 중심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매력을 좀 덜 느끼는 사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보다 사랑할 대상으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러한 감정은 스스로를 망치기가 너무 쉽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정확히는, 내 삶과 나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한번 도파민에 중독된 뇌가 그 자극을 끊기 위해서는 극고의 고통이 수반된다. 우리의 뇌는 그렇게 생겨먹었다. 마약을 이미 한 번 맛본 사람이 마약을 절제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내내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단언해서 말하면, 도취적으로 빠져드는 강렬한 감정으로는 사랑을 이룰 수가 없다. 오히려 그 감정 때문에 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사랑은 어떠한 마법처럼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치부하는 것은 사랑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사랑은 오히려 결의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때문에 자신의 내면 속 가장 고요한 자리의 중심은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그걸 타인에게 넘겨주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혼자서 온전히 서지 못한 채로 다른 사람에게 깊이 빠져드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수용해 주지 못한 짐을 남에게 떠미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가 기대하는 만큼 자신을 채워주지 않는다며 불안해하고 화를 낸다.


나의 삶과 일보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우선시하여 판단하고 있다면, 그건 내가 그 관계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다. 중독적 이끌림 때문에 자신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건 내가 나를 파괴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불같은 호르몬의 장난이 끝나고 상대에 대해 설렘이 사라지는 것은 전혀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서로를 알아가던 열정적인 시간이 끝나면,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결국 자신의 세상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오기 마련이다. 두근거림과 이끌림은 사랑의 메인이벤트가 아니라 뒤에 따라올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안정되고 성숙한 사랑을 하기 위한 미끼일 뿐이다. 그리고 진짜 메인이벤트를 맞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중심을 지키려는 의지와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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