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한 동료에게서 힘들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내가 이직한 지 3개월 남짓 되었을 때, 현 직장 동료였던 S가 나에게 제조업계로 이직상담을 해왔다. 아마, S는 이 회사가 첫 회사이고, 나는 벌써 크고 작은 이직을 다 합치면 4-5번 이직을 했으니 경험자로서 조언을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S는 같은 회사에서 5년 넘게 다니면서, 계속 비슷한 업무를 하였는데, 6년 차임에도 중요한 건은 다루지 못하여 커리어에 발전이 없다고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이미 나한테 상담을 요청한 때에는 다른 회사에 지원하여 1차 면접까지 마친 후였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로서는, 직장동료에게 이직을 권유하는 게 좀 현 직장에 송구한 마음도 있었지만, S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고, 그녀의 상황과 커리어를 고려해서 본의 아니게 이직을 권유하게 되었다.
먼저, 다른 회사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지원 및 면접까지 진행한 것이면, 본인의 이직 의사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였다. 회사 다니다 보면 슬럼프도 오고, 그럴 때 가끔 채용사이트 들어가 보고 하지만, 실제로 이력서를 작성 또는 업데이트하고, 지원 페이지의 개인정보, 학력, 경력, 지원동기, 입사 후 포부 등등에 살뜰하게 자신의 것을 작성할 정도면, 이직 의사는 강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S는 최근에 회사와 정 반대 방향의 곳으로, 출퇴근 왕복이 3-4시간 걸리는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향후 출산 및 육아를 고려하여 부모님 댁 가까운 곳으로 집을 사서 이사를 하였다고 들었는데, 이직을 '실질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면 지하철을 한 시간 반이나 타야 하는 곳으로 이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회사에 계속 다니고 싶었다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 영유아 모두 보육이 가능한 회사 일층 어린이집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현 직장의 비즈니스 및 문화가 지겹다고 느끼고 있었다. 제조업처럼 구매, 제조에서부터 물류, 판매, 연구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 아니라, IT, 서비스라는 조금은 한정된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는 현 직장에서 5년간 일하면서 일이 너무나 익숙해졌고, 그 과정에서 조금 싫증 난다는 속내를 공유해주었다. 무엇보다, 비슷한 일만 하고, 중요한 업무는 본인이 다루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억울하기도 하고 역량이 업그레이드될 기회가 없어서 걱정되기도 한다고 했다. 사실, 본인이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으면, 손들고 하고 싶다고 하면 되는 분위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한 것을 보면, S는 자신의 업무와 회사에 대하여 권태가 온 것이지만, 개선보다는 이직을 마음에 둔 것이라 짐작되었다.
새로운 경험과 업무 환경에 있어 환기가 필요한 거 같았다. S는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는 본인의 다른 친구, 선배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은 훨씬 규모가 크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궁금하고, 본인도 그런 일을 하면 더욱 커리어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살면서 비교하지 않기란 매우 어렵지만, 일단 들은 바가 그렇고, 본인이 궁금해한다면, 게임 끝. 궁금한 이상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기에...
일단은, 내가 현 직장에 옮겨온 이유가 새로운 것 해보고 싶어서, 궁금해서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궁금하면 해봐야 아는 것이기에, 해보지 않고 끙끙 앓으면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나도 했었으니까.
덧붙여, 오래 한 회사에 다니면 생기는 장점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신뢰와 역량이 축적되면 회사에서 중요한 일도 할 수 있고, 회사의 히스토리도 함께 그 안에 녹아들 것이며,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경험 또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떠난 마음은 다잡기 힘들고, 살면서 새로운 환경을 한 번씩 맞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익숙함을 뒤로하고 새로운 환경을 마주했을 때,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면서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기에, S가 이직하여 도전과 적응을 통하여 업그레이드되는 경험도 해볼 만하다고 추천하게 되었다.
S는 고심 끝에 이직을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났다. 이직하자마자, 출근버스에서 설레고 걱정된다는 문자가 왔길래, 파이팅으로 회신하고, 그 이후 업무에 관하여 질의가 있어서 연락이 한 번 오고, 한 한 달 반 정도 연락이 없었는데, 지난 주말 저녁에 연락이 왔다. 서바이벌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일이 너무 많아서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하고 있는데, 본인이 일을 못해서 그런 거 같다고, 너무 힘들어서 계획했던 출산과 육아는 그 회사에서는 엄두도 못 내겠다고 했다. 가장 최근 상사와 면담 때는 이제 일을 더 준다고 까지 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보지도 못하고 일주일 묵혀둔 일이 있으며, 하루 종일 전화통화 때문에 멘털이 탈탈 털리는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물론 제조업계가 업무 범위가 넓고 사건사고도 많고 문화도 경직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이 정도로 힘들어하다니, 내가 너무 제조업계 출신이라 추천했건만, S는 이게 무언가 싶었나 보다.
팀에서 팀장 바로 아래, 경력도 꾀 인정받고 들어가고, 연봉도 그 수준으로 만족할 정도로 받고 입사하였고, 그래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고, 일도 그만큼 던져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적응할 시간도 없이 자신에게 기대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할 여력도 없이, 일이 물리적으로 많아도 많다고 할 기회도 없이 힘에 부치게 달려온게 아닌가 싶었다.
힘들지만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느끼고 있을 S가 애틋했다.
나는 나도 했던 일이니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지만 경험이 쌓이면 나중엔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해갈 수 있는 일이라고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모르는 걸 안다고 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알아보겠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때에 따라 '이것도 모르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별로 없고, 본인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간극을 채우기 위해 공부하고 알아가는 것은,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비추어질 것이고, 그리고 끝내는 자기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노력하고 애써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은 하되, 객관적으로 시간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힘든 것이라 판단되면 이를 위에 이야기해서 조정을 요청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팁도 공유하였다. 약해 보일까 봐 말 못 하고 불만과 고통이 쌓여가면서 자신을 갉아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하게 되어 조금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는 일들이 축적되가면 차차 일이 조금은 더 편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다독여주었고,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힘내세요, 시간과 경험이 해결해 줄 것이에요. 잘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