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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ranger Sep 17. 2021

운동선수는 아닙니다만

강철체력으로 살고 있습니다

체력은 타고난 거라고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응 맞는 것 같다. 감사하게도 나는 엄마 아빠가 강한 면역력과 체력을 물려주셔서 힘들다거나 아프다거나 한 적이 거의 없다.


코로나 본격 시작 이후 이직 전까지, 1년 반 동안 나의 스케줄은-


7:00          기상

7:15           출근 (걷거나 마을버스)

7:30-40   회사 도착

11:30         집으로 출발 (걷거나 마을버스)

12:00        집에 도착, 최소 3명 밥 차리고 설거지

12:30-40 집에서 다시 출발(걷거나 마을버스)

17:00        퇴근 (걷거나 마을버스)

17:25-30 집에 도착

17:30        4명 저녁 차리고 설거지


이것이 끝은 아니다, 빨래, 그릇 정리, 청소, 아이 숙제에 다음날 준비물 확인, 아이 씻기기, 재우기 등등...... 할많하않.


이직 후에는-

6:30          기상

6:45          출근 (운전)

7:00          회사 도착

11:30         필라테스나 요가

16:00        퇴근 (운전)

16:30-50 집에 도착, 저녁 차리고 설거지

18:00        수영


으로 조금은 변경되었다.


혹자는 살인 스케줄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이라 그냥 괜찮은 것 같다. 코로나로 회사 짐(gym)이 닫혀서 운동을 할 수 없었던지라, 걸어서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운동한다고 생각한 것이고, 나 하나 움직임으로써 다른 가족들이 조금 편해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스러웠다.


딸이 수영 레슨이라도 있는 날이면, 나는 점심에 운동을 했든지 안 했든지 상관없이, 저녁에 딸이 레슨 받는 시간 동안 나는 다른 레인에서 자유 수영을 한다.


요즘은 거의 매일 점심에 필라테스를 하고, 월, 수, 금 저녁은 딸의 수영 레슨이라 그동안 나는 자유수영을, 화, 목은 딸 레슨이 없어도 같이 수영장 가서 놀고 온다. 물론 주말에도 수영장에 가곤 한다.


내가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이유는 내가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빠 성향을 닮아 집순이인 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다.


어려서부터 물을 좋아하고, 다른 운동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오로지 관심이 있고 굉장히 좋아하는 운동이 수영이고, 아직 혼자 수영장에 드나들기 힘들어하므로 내가 같이 가주어야 한다.


물론 나랑 수영장에 가서 하는 건, 수영 연습이 아니라, 물놀이, 잠수, 물장난 등 노는 것이 다이지만, 물속에 있을 때 딸의 표정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해서, 내 컨디션 상관없이 같이 가서 놀고 싶어 진다.


딸의 평소 운동량과 비교하면 수영장에서 엄청난 양의 운동을 해서, 힘들어하면 어쩌나 했지만, 힘들지 않다고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수영장 가는 날이니 학교 과제 및 할 일을 미리 하라고 하면 매우 흔쾌히 그렇게 한다.


무엇보다 나와 물에서 노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하므로, 딸과 시간을 보내고 하려면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기에, 무슨 운동선수도 아닌데 하루에 두세 번씩 (주말에 보드 타거나 요가 레슨을 받는 날이면 세 번씩) 운동을 하게 된다.


지난주에는 점심에 필라테스를 하고, 저녁에 자유수영을 너무나 열심히 했는지, 수영 후 집에 와서 포도한 알을 먹었는데 갑자기 당이 돌아서 그런지 앞이 막 까맣고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딸에게 "엄마도 힘든가 보다" 했더니, 딸의 대답은,


어, 그럼 엄마 체력이 아닌데?! 엄마는 강철 체력이잖아.


그래 내가 강철체력이긴 하지. 그렇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나이가 들어가고, 나이를 감안한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면 힘들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지. 이건 자연스러운 것이야.


"엄마도 나이 들어서 그래"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왠지 딸에게 나이 들어서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또, 딸에게 보이는 것을 의식하여 매일 나의 최대치 이상의 체력을 소모한다는 기분으로 살고 싶지도 않다. (물론 운동을 하면 기분이 매우 좋지만...)


나는 나 자신이 매우 중요한 사람인데, 영혼까지 끌어모아 힘을 내서 딸이랑 놀 에너지를 마련하는 것을 보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이런 게 사랑의 힘인 가보다. (이 공식은 딸 대신 남편을 대입해도 성립이 된다.)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딸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저녁에 수영하러 갈 예정이다.


나는 강철체력이니께!


P.S. 이번 주 토요일, 그러니까 내일 수영장 가기로 했는데, 오늘 내가 갑자기 며칠이나 빨리 period를 시작했고, 그래서 토요일은 엄마가 수영하기가 힘들겠다고 딸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하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얼마나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미안하고 안쓰럽다. 담주엔 매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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