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잃었던 몇 달
5-6월 즈음이었나? 일기장을 확인해봐야겠지만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남편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와 딸에게 가시가 되어 꽂히고, 항상 둥그렇게 웃고 있던 남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으며, 말 수는 적어지고, 화는 많아졌던 몇 달간의 상황이 시작된 것이 말이다.
늘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고 말도 부드럽게 하며 항상 유머스러운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이상하게 남편이 차갑고 멀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와 딸이 한 말들은 비수가 되어 돌아왔기에, 나는 남편을 피했고, 딸은 자주 울었다.
그즈음, 아버님이 경동맥으로 쓰러지시기 직전에 병원에 가셨고, 여러 차례 검사 후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급기야 아버님이 입원하시고, 코로나로 인해 여러 보호자가 들어갈 수 없어 며칠을 같이 병동에 있어야 하는 터라 어머님이 같이 병원에 계셨는데, 어머님도 몸이 약하신지라 아프셔서 남편이 발을 동동 굴리며 부모님 걱정도 많이 하고 여기저기 다니기도 많이 다녔다.
지난 10년이 넘도록 부모님을 엄청 자주 찾아뵙거나 하지는 않으면서도 연락은 나보다는 훨씬 자주 드리는 스윗 한 아들이었던 남편은, 갑자기 지방으로 서울로, 병원으로 집으로 부모님을 에스코트하다 보니 진이 빠져서 본케를 잃은 건지, 아니면 본인의 말처럼 갱년기가 온 건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의 남편은 내가 알던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즈음, 남편의 여동생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남편의 여동생은 "이제야 오빠가 오빠 같다"라고 했다.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부모님과 동생의 가족까지 살뜰히 챙기게 된 남편의 모습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싶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나는 남편을 잃은 것 같은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님도 무사히 퇴원하시고, 딸과 나는 남편과 거리를 두면서 그렇게 9월이 되었다. 9월 즈음에는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나는 나이 들어서도 서로 미워하면서 마지못해 살아가는 그런 부부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은데.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딸과 둘이 살면 더 행복할 거 같다...
독립하고 싶다...
그렇다. 상황은 이토록 심각했었다. 매우 각별하게 서로를 아끼는 사이었기에, 갑자기 변한 것 같은 남편의 모습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그렇게 계속 살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나의 무서운 면은, 나는 평소에 절대 말을 안 하고, 웬만한 건 이해하고 넘어가거나, 이해하지 못해도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꼬투리나 트집을 잡지 않지만, 그게 쌓여서 한계치가 넘는 순간(한계치가 높긴 하다) 바로 단절하는 것이다. 그냥 한 순간에 내 인생에서 끊어버린다.
남편에게는 특히 그 한계치가 엄청나게 높은 나이지만, 그 임계점이 다가오는 걸 느꼈을 때, 나는 더욱 의연해졌다. 왜냐면, 나를 괴롭게 하면서 까지 사는 그런 짓은 절대 하지 않을 터였기 때문이다.
그래, 이 인연을 여기서 끊고 씩씩하고 자유롭게 신나게 딸이랑 둘이 살면 되지...라는 무섭고도 단호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딸도 항상 친구나 삼촌 같은 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굉장히 쌓인 상태여서, 우리는 자기 전에 누워서 아빠가 어려운 시기(본인이 말하는 갱년기)를 겪고 있으니 우리가 이해해주자는 이야기를 자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급기야 9월 말 즈음에는, 문자로 조용히 내 생각을 전달했다. 말로 하면 울먹거리는 찌질이가 될 것이 뻔하므로.
첫째, 나는 나이 들어서 애정 없이, 할 수 없어 살아가는 부부사이라면 싫고, 아이 때문에 참고 사는 삶이란 나에게 없다.
둘째, 내가 말한 것은 안중에도 없고 같은 말을 남에게서 들으면 중요하게 생각해서 섭섭하다. 그러나 일시적인 거라 생각해서 견디고 있다.
셋째, 딸과 나에게 말할 때 친절하면 좋겠고, 긍정적인 언어로 말해주면 좋겠다. 이 것도 일시적인 거라 생각하지만, 일시적인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넷째,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것도, 이해하려고 하지만 잘 안된다.
다섯째, 다른 사람과 있을 때에는 할 말도 많고 즐거운데, 나에게는 딱히 할 말이 없는 듯하여 섭섭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시무룩하거나 말이 없거나 한 것은 이 모든 것을 그냥 말 안 하고 수용하려는 기간이니 그렇게 알아주십사 하고 한 단락의 메시지를 전했다.
남편으로부터 "잔소리를 안 하려고 참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급 화를 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그때그때 잔소리를 하던지 아니면 계속 참던지 해보겠고 나머지는 더욱 유의하겠다"는 뼈 있는 회신이 돌아왔다.
사실, 나는 잔소리 안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인 반면, 잔소리를 많이 듣는 편인데, 그것조차 남편은 참았다가 하는 것이라고 하니. 정말 슬펐다. 우리에게 지적할 점이 그리 많나... 하는 생각에 서운했다.
그렇게 일단락될 줄 알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님편과 밤에 와인 한잔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남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가장 친한 친구,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나이고, 다른 사람들과 별로 쓸모없는 이야기 웃자고 하는 이야기만 하는 건데, 내가 그걸 섭섭하게 생각하다니 이해가 안 간다는 거였다. 그러자 이전 메시지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했던 결심은 무너진 채, 어느새 울먹이면서 2절을 하게 되었다. 지난 몇 달간 남편이 나와 딸이 한 이야기에 대해 얼마나 모질게 반응해서 슬펐는지, 나이 들어서 서로를 미워하고 짐처럼 여기면서 사는 여느 나이 든 부부들의 모습으로 살기 싫고, 코로나라 사람들 못 만나는 것에 대해 심하게 안타까워하는 것이 잘 버티고 있는 나와 딸로 하여금, 우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찌질하게 울면서 말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그냥 끊어버리면 될 것을, 울면서 내 생각이나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남편과는 싸운 적이 없기 때문에 (분위기 안 좋은 적도 손에 꼽힌다) 더욱이 내게 이런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인정하기 싫고, 대면하기 싫었던 것을 마주하고, 찌질했지만 그 순간을 겪어냈다.
그 결과, 그 뒷날부터 매우 빠른 시간 내에 남편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가 주말에 카페에서 내가 찍은 사진을 몇 장 남편에게 보냈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킬포가 있네"라고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보냈지만, 그 사진에서 내가 찍은 남편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그래서 계획에는 없었지만, 내 사진첩 사진 중 남편이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 찍은 사진(이라기보다 찍은 사진들 중엔 핸드폰을 보고 있는 장면이 많을 뿐)을 몇 장 투척했더니, 그제야 "내가 문제가 많구나"라고 하셨다.
사실 13년 동안 쌓인 것을 말한 것이 저 메시지 정도라면 매우 훌륭한 남편임이 분명하다. 나에게 꼭 맞는 우주 최강, 세계 최고 남편이라는 점에서는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만큼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남편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던, 남편을 잃었던 몇 달은 정말 정말 상심이 컸고, 슬프고 힘들었다. 오죽하면 독립을 생각했을까...
다행히 지금은 나를 아껴주고 보드라운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원래의 남편으로 돌아왔다.
남편을 잃었던 이유가 갱년기였는지 부모님 챙기느라 힘들어서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갱년기였다면, 갱년기라는 것은, 우주 최강 세계 최고 남편으로부터 나를 독립할뻔하게 하는, 아주 무서운 놈인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