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tranger Jul 13. 2022

신나게 일하고 싶다

아쉬움도 후회도 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직 욕구

이직한 지 1년 5개월째. 이전 6개월 다닌 때 쓴 소회와 사뭇 다른 1년 반 남짓의 소감, here we go-!


이상하게 우리 팀에는 사람이 자주 들고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팀장 포함 5명인 팀인데, 팀장만 10년 가까이 다녔을 뿐, 나머지는 3년, 2년 차, 1년, 그리고 오래 다닌 5년 차 S가 퇴사했다가 다시 입사해서 신입이 된 셈. 내가 여기서 1년 5개월 남짓 다녔는데 그동안도 2명이 퇴사, 3명이 입사(재입사 포함)했다.


팀장은 거의 여기서 일을 시작한 셈이고 아직까지 다른 회사를 경험해본 적이 없으며, 두 사람(재입사자 포함)은 여기가 첫 직장이고, 나머지 한 사람 H와 나는  두 번 이상 이직을 해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나와 H만이 다른 회사를 경험해봤고, 나머지는 그런 경험이 없는 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분명히 좋은 회사다. 복지는 한국에서 거의 최고 수준이라고 정평이 나있고, 사옥도 좋고, 사람들도 젊고 다 decent 한 것 같다. 어린이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거의 한국에서 직장 어린이집을 설립한 시조새 격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에게 중요한 회사 gym은 거의 호텔 수준이다(여태까지 다닌 회사 gym 중 최고 시설!!!!!). 이것뿐이랴, 블라인드 회사 평점에서도 보기 드물게 4점이 넘는다(내가 여기에 좀 혹했지... 얼마나 좋길래... 하면서).


그래 다 좋다! 그런데 왜 나는 재미가 없을까...


우리 딸이 조금 더 어렸다면, 그래서 어린이집 혜택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조금 다른 면에서 만족을 덜 느껴도 감사히 이 회사를 잘 다닐 수 있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제조업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 그런지 지금 회사의 사업분야가 너무 좁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소프트웨어 등)을 다루는 업계다 보니, 쇳물 끓이고, 고무 냄새나던 과거 회사들의 공장이 너무 그리운 것이다.


이전 회사에서 입사 교육을 받을 때, 공장 투어를 하면서 빨간 쇳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을 때, 희열을 느꼈고, 그전에 고무 냄새나는 공장을 돌아다니면서도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는 것이 너무 신기했었다. 그리고 공장 출입을 하면 무언지 모를 생동감이 느껴지곤 하였다.


이건 물론 내가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이 아닌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일하는 사무직이라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다 헤아릴 수도 없고, 보기만 하는 입장이라 그럴 수도 있다(실제로 공장에서는 어마 무시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연구개발, 제품 기획, 생산기획, 생산, 마케팅, 판매, 물류, 클레임 등등 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제조업에서 이 많은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다루고,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던 내가 지금은 정말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들을 제공하는 업계에 있다 보니...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싶다.


그리고 친구가 팀장이고 그 친구가 힘들어해서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온 것이기는 하지만, 친구야, 네가 묘사했던 이 팀과 이 회사의 분위기와 실제는 좀 온도차가 있는 거 아니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이 친구는 다른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 비교대상이 없고, 그래서 이 회사를 묘사하는데 부정적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친구는 정말 착하고, 이 회사에서만 오래 업무를 해서 그런지, 그냥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뿐인데, 내 입장에서는 이 회사에서는 정말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거다.


예를 들면, 이 전에는 장점으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다. 친절한데... 무언가 허례허식이 너무 많다. 옆 팀의 한 직원이 이민으로 퇴사하신다고 했을 때, 우리 팀원들의 반응이, '너무 아쉽네요.'라는 괜찮은 반응부터, '친절한 J님의 부재가 많이 느껴지겠네요.', '그 팀으로서는 큰 손실이네요 정말.'까지, 나라면 쓰지 않을 듯한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들이다.


나 같으면, '헉, 대박. 부럽다-'거나, '와우. 갑작스럽네요. 어디로 가신데요?'라고 먼저 반응했을 것 같은데... 내가 너무 걸러지지 않고 말하나 싶을 정도로 이 회사 모든 사람이 거의가 다 이런 단어들을 쓰는 것 같다. 너무 친절하고 예의 차리는데, 나에게는 너무 어색하다 ㅜ.ㅜ


친절한 게 해가 되겠냐만은... 하지만 보통의 친절을 넘어선 super 친절함이 나를 이방인으로 만든다(막무가내식 소통이 좋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쨌든, 결론은 그래서 또 스멀스멀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재미있게 일하고 싶어서다.


일을 재미있게 한다는 것이 혹자에게는 오버스럽다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나는 이전에 정말 재미있게 일했다. 프로젝트성이건 레귤러 한 일이건 몰입해서, 내 일을 하듯, 열심히, 모르는 건 찾고 물어서 해나가면서 일하는 과정에서 재밌고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꼈었다. 그렇다고 워커홀릭은 절대 아니고, 출근해서 퇴근시간 전까지는 일에 몰입하는 타입이었을 뿐이다. 집에 일찍 가기 위해서!


그런데, 이 회사에서는 그런 다이내믹한 기분을 느낄 수가 없다. 1년이 지난 시점인데도 재미를 못 느끼는 걸 보면 에라이, 여긴 아닌가 보다...라는 데 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두 번째, '내 회사'라는 생각이 안 든다.


예전 회사들, 8년 다닌 첫 번째 회사는 당연하지만, 특히 2년 3개월 다녔던 이전 회사에서는 다닌 지 일주일도 안되었을 때도 한 2-3년은 다닌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고, '내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도적으로 신나게 일했었는데, 지금 회사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회사는 여전히 '내 친구 회사'이고 나는 이 친구를 도와주러 온 것 같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는데... 나도 왜 이런지 모르겠다.


세 번째, 내가 파악할 수 없는 회사의 구조가 정말 힘들다.


회사의 특성상, 매월 인사발령이 날 정도로 팀/부서가 바뀌고 사람도 많이 바뀐다. 그리고 조직도에 어떤 사람이 그 조직에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없고, 아직도 어떤 부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를 못한다.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히스토리 파악, 배경 설명이 중요한데, 누가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무엇을 누가 알고 있는지 찾기가 어려워, 담당자 파악 및 히스토리를 찾는데만 한 세월이다. 업무 할 의욕이 확 꺾인다... 성격 급한 내 탓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게 빨리 찾아지지를 않아서, 무엇보다 어디서 어떻게 찾을지를 몰라서 매우 챌린징 하다.


네 번째, 사람들이 경험을 축적하여 일을 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매월 1일에 인사발령이 나고, 그에 따라 부서명 변경부터 부서 이동, 인사이동 등이 일어나기 때문에, 어제 어떤 일로 연락한 사람이 오늘은 그 업무를 안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만해도, 담당 부서가 수시로 변경되기 때문에, 아직도 내가 담당하는 부서가 어딘지 모두 꿰뚫고 있지 않고, 문의가 올 때마다 찾아봐야 한다. 이 보다 더 큰 조직에서도 이런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러니, 한 사람이 진득이 일을 배울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그러다 보니 일을 잘 알고 잘할 수가 없다. 정말 다들 열심히 일하지만, 경력에 맞는 업무 경험을 할 수 없고, 그래서 커리어를 발전시키기에 어려움이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예전 회사들에서는 한 사람이 몇 년씩 동일한 업무를 하기 때문에(물로 여기서 발생되는 단점도 많다) 담당업무는 전문가처럼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를 지원받을 일이 있을 때만 내가 담당하는 직군에 문의하게 된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본인의 R&R  범위는 잘 알지만, 그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서, 일에 대한 주도권이 없고, 본인의 역할까지도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보통은 '제가 A 업무를 하고 있는데, 그중 A' 부분은 X팀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 것 좀 봐주시겠어요?' 라거나 'A'부분이 리스크가 있는 것 같은데,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정도인데, 내가 경험하기로 이 회사는 '제가 A 업무를 하고 있는데, A 관련 리스크는 (몽땅, 전부) 다 알려주세요.'의 느낌인 것이다.


내가 잘 모르니 알아서 알려달라... 그럴 수 있다. 잘 모르니깐 물어보는 거니. 하지만 보통은 내가 살펴보고 해 보고 모르는 부분만 묻는다거나 지원을 요청하지 않나 싶은데. 그건 업무 스타일이 다르니깐 그렇겠지... 하면서도 너무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게 내가 받은 인상이다.


위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직 생각 이유를 적어봤지만,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듯이, 이 회사의 좋은 점도 정말 많다. 다만, 이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랑 안 맞다는 게 지금 생각일 뿐이다.


여러 회사를 다녀봐서 잘 안다. 완벽한 회사는 없다는 것을...


이쯤 되면, 아니 과거에도 잘 알았다. 장점만 있는 회사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또 이직을 생각하는 이유는, 나에게는 중요한 부분이 충족 안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나에게 안 맞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


객관적으로 과거 회사들이 지금 회사보다 좋은가, 그건 또 아니다. 다만,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라는 것이 나에게 꼭 좋은 회사인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회사라면, 내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더 충족되는 회사라면 그것이 나에게는 좋은 회사인 것이 아닐까.


나는 신나게 일하고 싶다.


어린이집도, 회사 카페도, 예의 차리는 말투의 이메일도 정말 좋지만, 나에게는 즐겁게 몰입해서  일처럼 주도권을 가지고 일할  있는 곳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 무식할지 모르지만 용감한 행보라 생각한다(물론 한 직장에서 오래 다니시는 분도 정말 존경한다. 나도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다).


당연히, 후회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안 해보면 모르지, 후회할지 안 할지. 안 하면 또 평생 물음표를 가지고 살아갈 테니깐, 해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했던 그녀가 돌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