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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카 아카이브 Dec 03. 2021

전기차도 '가전제품'처럼,
삼성 SEV-3 이야기.

[아카이브 #8] SAMSUNG SEV-3 (1994)

표지 제작: 필자 본인.

전기차도 '가전제품'처럼, 삼성 SEV-III (1994)

삼성은 오래전부터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여러 기업들과 협상 테이블에 올랐었다. 그 시작은 1984년이었는데, 크라이슬러의 소형 승용차를 생산해 수출하는 조건으로 합작 회사 (가칭 삼성 자동차)을 계획했지만 한국 정부가 끝내 허가를 내주지 않아 무산된다. 이후엔 부품을 조달하는 방향으로 후퇴를 하는데 이마저도 1986년 크라이슬러가 등을 돌리며 삼성은 실패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삼성은 멈추지 않았다. 크라이슬러와의 부품 생산이 무산된 지 3년 만인 1989년부터 삼성은 다시 자동차 산업 진출을 꾀하게 된다. 이번엔 삼성이 독자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는데, 정부의 부정적인 반응을 간파하고 있었던 삼성은 일찌감치 독자 법인이 아닌 '삼성중공업'의 개별 부서 (삼성물산의 협력도 포함.)로 자동차 개발을 진행시킨다. 물론 정식적인 '자동차 제조 사업 인가'를 받지 못했으므로 양산차를 개발하기엔 무리였다. 그래서 삼성중공업은 허가를 받기 전까지 전기차와 스포츠카를 개발하며 대중들의 주목을 끄는 전략을 취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개발된 차량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차량이 바로 'SEV-III'이다. 이름 'SEV (Sansung Electric Vheicle)-III'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 차량은 국내 최초로 전기 파워 트레인을 갖춘 고유모델이다. 1994년 5월 16일, 용인 자연농원의 모터 파크 (현 AMG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SEV-III는 계획과 설계, 제작에 이르는 모든 개발 과정들을 삼성 자체적으로 해결한 것이 큰 특징이다.


물론 초기 전기차답게 기술면에선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전기차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던 국내에서는 관련 부품 수급이 어려워 외국에서 부품을 수급했는데, 외국에서 들여온 AC 모터와 좌석, 센터 콘솔 밑에 위치한 28개의 12V 밀폐형 납축전지가 맞물려 총 336V의 동력을 발휘한다. 다만 모터 출력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데, 당시 시승기를 진행한 자동차 생활에선 32kW (이후 기사에선 90kW로 정정), 신문 기사에선 90kW라고 표기를 한 상태이다. 

 

차대는 알루미늄 프레임과 FRP 패널로 마감했으며, 전기차답게 계기판에는 배터리 충전량과 전압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원형의 회전식 시프트 레버는 오로지 D, R, N으로 구성되었다. 엔진이 없으므로 내연기관의 그것이 아닌 자체적인 진공 펌프를 달아야만 했다. 놀랍게도 회생제동 장치를 장착해 짧은 주행거리를 어느 정도 보완했다. 이외에도 과전류 보호 장치, 비상 스위치 같은 안전장치, 파워 스티어링 휠, 파워윈도우, 에어컨/히터 같은 편의 장비도 챙겼다. 일반 가정용 전원으로도 충전이 가능하다. 


삼성 자동차가 '배터리보단 모델 개발에 주력했다'라고 언급한 만큼, SEV-III는 자사의 뛰어난 전기 기술을 과시함과 동시에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을 반대하던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여담으로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 같은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삼성의 이런 행보에 경계했다는 후문. 아쉽게도 SEV-III는 이후 공식적인 출품 없이 근황이 전해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외형이 거의 동일한 후계 차종 (SEV-IV)으로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 보존이 되어 오고 있다.

사진 출처: 한국일보, 카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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