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프로젝트 : 49]
[Archive 049] 2002, Designed by GM Daewoo Design Forum. ⓒ Dong Jin Kim
희망 없는 암흑기를 보낸 대우자동차는 마침내 2002년 10월 17일 'GM대우'라는 이름을 달고 새 출발을 알렸다. 회사가 서서히 정상화되자 희망에 부푼 개발진들은 대우차 시절 미완의 프로젝트들을 다시 작업대에 올렸고, 당해 연말에 개최된 제4회 서울모터쇼에 그 결과물들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만반의 준비를 한 모터쇼의 주인공은 단연 라세티였다. 프로젝트 J-200, 워크아웃 이래로 줄곧 개발에 난항을 겪었으나 개발 착수 2년 6개월 만에 마침내 화려한 재기의 신호탄이 되어주었다.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는 라세티의 몫이었다. 하지만 모터쇼의 진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10년에 걸쳐 개발된 대우차 최후의 명기, XK엔진이다.
1994년, 갓 홀로서기를 시작한 대우차는 완전한 기술 자립을 위해 엔진의 독자 개발에 착수했다. 이미 티코를 끝으로 풀라인업을 완성한 대우차는 0.8리터에서 3.0리터까지 대응이 가능한 획기적인 모듈형 엔진을 기획했다. 비록 모듈 아이디어는 그룹의 자금 사정과 양산화의 한계로 사장되었지만, 그 대신 직렬 6 기통이라는 엽기적인 발상이 실현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성능 지향의 고급차에 간간히 적용되는 직렬 6 기통은 당대 저가형 중형차에게는 확실한 오버스펙이었다.
어쨌거나 서울모터쇼는 개발이 완료된 XK엔진을 대중들에게 알릴 최고의 기회였다. 고심 끝에 대우차가 선택한 방법은 콘셉트카였다. 대우차는 자사 라인업에 없는 쿠페형 SUV에 XK엔진을 적용해 파워트래인의 유연성과 라인업 다각화의 여지를 동시에 남겼다.
오토는 2030 세대를 겨냥해 쿠페의 뛰어난 주행 성능과 SUV의 안정적이고 강인한 디자인을 결합한 실험작이다. 대우차는 이 콘셉트를 신개념 크로스오버라 정의했다. B필러를 없앤 뒤 수어사이드 도어를 채택해 개방감을 높였고 공기역학을 추구한 직선 위주의 에지 스타일 조형이 인상적이다. 실내에는 요즘에야 상용화가 되고 있는 아웃사이드 카메라 미러와 와이드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운전에 필요한 각종 교통 정보를 IT화 하여 편안한 주행과 안전을 도모했다. 이 디스플레이는 다른 수납공간과 더불어 폴딩이 가능해 운전자의 조작 자유도를 극대화했다. 또한 상황에 따라 좌석 배치를 자유롭게 조정하도록 하여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응하도록 고안했다. 이외에도 엔진 시동과 AV 시스템, 디스플레이 조작, 그리고 도어 개폐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리모컨 시스템을 적용했다.
대우차는 2.5리터 X25D1 XK엔진을 맞물려 최고출력 157/5800 ps/rpm, 최대 토크 24.5/4000 kg.m/rpm을 발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차량은 파워트래인이 장착되지 않은 목업 모델이다.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이 콘셉트카에 적용된 XK엔진은 실제로 상용화된 적이 없는 디젤 파워트래인이었다. 타이어 규격은 255/55R-18이다. 오토는 이후 2003년 제네바 모터쇼에도 출품되었는데, 이 때는 오토 대신 스코프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은색에서 주황색으로 색상도 바뀌었다. 출품 이후 이 차량은 군산공장 홍보관에 한동안 전시되어 있었다. 2019년에는 군산공장이 청산되면서 군산 대학교 새만금 캠퍼스에 기증된 것이 알려졌다. 현재는 김우중의 가족이 소유한 아도니스 호텔 측이 소장하고 있다.
한편 XK엔진에게 주어진 삶은 길지 않았다. 애초에 수십 년에 걸쳐 신뢰성이 검증된 2.0리터 엔진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 GM 입장에서 내구성에 한계가 분명한 XK엔진은 눈엣가시일 뿐이었다. 결국 매그너스에 처음으로 장착된 이후 8년 만인 2010년 11월, 토스카의 단종과 함께 XK엔진은 최종적으로 단산되었다. 비록 대우차 개발진의 결실은 3년 천하로 끝이 났지만 XK엔진을 장착한 매그너스와 토스카는 독보적인 감성 품질을 자랑하며 지금까지도 단단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OTO (SCOPE) 제원
- 전장(mm) : 4,474
- 전폭(mm) : 1,897
- 전고(mm) : 1,710
- 축거(mm) : 2,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