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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Feb 23. 2024

비상등으로 말해요

내가 운전면허를 딴 2013년은 일명 ‘물면허’로 유명한 시기였다. 필기는 책을 보고 혼자 공부한 뒤 합격했고, 학과교육 5시간은 운전면허학원을 방문한 당일 받았다. 그리고 기능 2시간, 도로주행 6시간을 마치면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기능은 직진과 정지 한 번이면 끝났다. 이 정도면 떨어지는 게 더 어려울 텐데, 할 정도로 쉬웠다.      


도로주행에는 주차까지 포함돼 있었는데 6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간을 추가하자니 학원비가 부담스러웠다. 유튜브로 내가 다닌 학원의 코스를 찾아 수없이 반복하고 실제 차에 앉은 것처럼 발을 허공에 대고 브레이크와 액셀 밟는 연습을 했다. 한 번에 붙어 돈과 시간을 절약하겠다는 일념으로.     


시험 당일 2인 1조로 면허 시험을 치렀다. 내 차례가 먼저라 운전석에 앉았다. 뽑기의 결과 C 코스에 당첨됐다. 나와 짝이 된, 모르는 사람을 뒷자리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에 앉은 시험 감독관은 내 운전을 꼼꼼히 체크했다. 유튜브를 보고 연습한 보람이 있는지 널뛰는 심장과 달리 운전은 평온했다.


다만 정지 신호에서 기어를 중립(N)에 놓아야 하는데 계속 까먹고 있다가 시험 막바지에야 깨달았다. ‘어떡하지? 지금부터라도 넣을까?’ ‘아니야, 그러면 이전에 안 넣은 게 더 티가 날 거야. 아예 모르는 척 끝까지 넣지 말자.’ 두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혔다.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후자였다. 주행이 끝난 뒤 옆에 탔던 감독관이 물었다. “응시생, 왜 기어를 중립에 안 놓나요?” 어리석은 선택을 한 멍청이의 말로는 감점이었다. 중간에 알았을 때, 그때부터라도 할걸. 뭐든 잘못을 알았을 때 뭉개지 말고 바로 수정해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다행히 이것 외에는 특별히 마이너스가 없었는지 결과는 합격이었다(오예!).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듯이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언니 차를 타고 가다가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언니가 말했다. “앞차 후진하려나?” 멀쩡히 있는 차가 후진하다니? 뭘 보고 아느냐고 했더니 “후진등이 켜져 있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면허를 땄음에도 나는 자동차 후면의 후진등, 브레이크등, 비상등을 구분하지 못했다.      


다행히 혹독한(?) 초보 시절을 보내면서 각종 버튼의 조작법과 쓰임을 알게 되었다. 왼쪽, 오른쪽 번갈아 켜지며 갈 곳 잃은 나의 깜빡이, 잘못 건드려서 맑은 날에도 열심히 일하는 와이퍼, 무조건 안 쓰는 게 능사는 아닌 클랙슨 등 각종 버튼을 나름의 원칙으로 적재적소에 쓰고 있다. 가장 많이 쓰는 건 방향지시등과 클랙슨, 비상등이다.      


먼저 방향지시등이다. 


흔히 깜박이라고 부르는 방향지시등은 무조건 켠다. 앞뒤 아무도 없는 한적한 동네 길도 습관적으로 켠다. ‘주변에 차가 없으면 안 켜도 되지 뭐’ 생각한 적도 있으나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내가 못 본 곳에 차가 있을 수도 있고, 주변에 차가 있는지 살필 시간에 켜는 게 나은 것 같다. 신호등이 없는 삼거리에서도 안 켜는 차를 보면 의아하다. 자기가 어디로 갈 지 한번 맞춰보라는 걸까.


방향지시등을 켜는 시간도 중요하다. 너무 일찍, 또는 너무 늦게 켜면 다른 운전자를 당황하게 할 수 있다. 길 중간에 있는 마트에 가려고 좌회전 깜빡이를 켰다. 마주 오는 저 차가 지나가면 들어가야지 하고 기다리는데 직진하는 줄 알았던 차가 마트 앞에서야 자기도 깜빡이를 켜고 마트에 들어갔다. 이럴 때면 바짝 약이 오른다. 미리 켰으면 내가 안 기다리고 갈 수 있었잖니, 투덜댄다. 하지만 지나치게 일찍 켜도 좋지 않다. 깜빡이를 켜고 한참을 달리는 앞차를 보면 언제 어디로 빠지는지 몰라서 조심하게 된다. 따라서 깜박이는 제때, 꼭 켜도록 한다.     


다음은 클랙슨으로 일명 ‘빵’이다.


살살 누르는 ‘빵’, 길게 누르는 ‘빠~아~앙’, 짧게 여러 번 누르는 ‘빵빵빵’ 등 여러 종류가 있다. 클랙슨의 강도와 주기, 반복을 통해 운전자의 화남 정도와 기분 상태를 추측할 수 있다. 간혹 서로 빵빵대며 의사소통하는 차들도 있다.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나만 잘못했냐, 너도 양보 좀 해라’ 말하는 것 같다.     


사진: Unsplash의 Afif Ramdhasuma


초보 때는 클랙슨은 안 누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조건 안 누르는 게 상책이 아님을 깨달았다. 회전 교차로에서 무리하게 진입하는 차나 고속도로에서 조는 듯이 가는 앞차에는 꾹 눌러준다.


다만 보행자에게는 누르지 않으려고 한다. 동네에서 길을 걷다가 지나가는 차가 누른 클랙슨에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외길에서 위태롭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길 가운데로 가는 분께는 창문을 내리고 말하는 편이다. “선생님, 저 좀 지나갈게요” 하면 다들 비켜주신다.      


마지막으로 동네를 다닐 때 많이 쓰는 비상등이다. 


고마움을 표시할 때, 비상시, 후진할 때 켠다. 동네 좁은 길에서 다른 차를 만나면 누구 하나가 비켜줘야 한다. 동네에 차들이 많이 움직이는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는 마주 오는 차를 꼭 한 번은 만나기에 쓰는 빈도가 방향지시등만큼 되는 것 같다. 꽤 쓴다는 말이다. 저 차가 나 때문에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구나 인지하면 한참 전이라도 미리 켠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끼워준 차에 고마움을 표시할 때도 쓴다. 초보 때는 고마운 일이 많아서 비상등 켜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지난 요즘은 내가 비상등을 받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아유, 뭘 비상등까지 켜고 그래요’라고 혼잣말하지만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작은 비상등 하나로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고마운 상황에서는 나도 아끼지 말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Unsplash의frank mck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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