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에는 차를 끌고 지하 주차장을 슬슬 돌았다. 혼자 이 자리, 저 자리 찾아가며 차를 열심히 넣었다 뺐다. 지하라 공기가 탁해도 양쪽 창을 모두 내리고 고개도 빼꼼 내밀었다. 누가 봐도 주차 연습하는 초보의 모습이라 간혹 순찰하는 경비 아저씨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다. ‘저러다 다른 차 치는 거 아니야?’ 그럴 때는 괜히 민망해서 딴청을 부리다 아저씨가 가신 걸 확인하고 다시 움직였다.
한 칸은 위험하니, 최소 두 칸이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았다. 운 좋게 세 칸이 나란히 빈자리도 있었다. 신난 내 마음과 달리 차는 자꾸 삐뚜름하게 들어갔다. 주차 칸의 가운데에 반듯하게 대고 싶은데 옆 칸으로 가거나 두 칸의 중간에 걸쳤다. 마치 시험지의 틀린 문제에 내리치는 빗금 같았다. 남편은 내가 너무 핸들을 끝까지 팍팍 돌린다고 했다. 사이드미러와 후방 카메라를 보면서 적당한 각도로 틀어야 한다는데, 많이 연습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단다.
다행히 조금 비뚤게 대도 내 옆자리를 좋아하는 차가 많았다. 차가 작아서 양옆으로 자리가 많이 남기 때문이다. 주로 큰 차들이 내 옆자리를 선호했다. 내 차를 찾아다니는 건가 싶을 만큼 자주 내 옆에 대는 차도 있었다. ‘으이그, 나 좀 그만 따라다녀.’ 남자에게도 못해본 말을 옆 차에 할 줄은 몰랐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어느 정도 연습한 뒤 마트를 다녔다. 마트도 평일은 한가해서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은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평소 자주 대던 2층에 딱 한 자리만 남았다. 양쪽에 차가 있어 못 대고 다른 층으로 가려는데 통로가 이어지지 않았다. 2층에 들어온 차는 2층에, 3층에 들어온 차는 3층에 대는 시스템이었다. 여태 2층이 꽉 찬 적이 없어서 그걸 몰랐다. 할 수 없이 한 자리 남은 곳으로 다시 갔으나 다른 차가 이미 댄 후였다.
당황해서 출구로 내려갔더니 아예 마트 밖으로 나왔다. 결국 건물을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주차장으로 진입해야 했다. 건물이 작기나 하나, 멀쩡한 자리 두고 주차를 못해서 한 블록이나 되는 거리를 돌고 있자니 ‘나 왜 이러니’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진짜 울면 눈물이 앞을 가리니 입으로만 흐느꼈다. 주차도 못하는데 앞도 안 보이면 안 되니까. 그 뒤로 2층이 ‘혼잡’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3층으로 갔다.
그러다 내 나약한 주차 실력이 쑥 올라간 계기가 생겼다. 멀리 떨어진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한 것이다. 몸이 점점 예전 같지 않아 운동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뭘 배워야 하나 고민하는데 집 바로 앞에 필라테스 학원이 문을 열었다. 필라테스를 배워본 적은 없으나 효과가 좋다고 많이 들었던 터라 상담도 받았다. 그런데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다른 학원을 알아 보니 옆 동네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회원을 모집하는 곳이 있었다. 집에서 20분 거리였는데 오후 2시에 상담 예약을 잡았다. 직접 가보니 선생님도 친절하고 공간도 좋았다. 큰 빌딩에 있어서 주차장도 컸다. 지하 1층, 2층을 넘어 지하 4층까지 있었다. 주차장이 여유로워 차도 금방 댔다. 상담하러 간 그날 바로 3개월을 등록하고 룰루랄라 집에 왔다.
대망의 첫 수업 날, 일찍 도착했음에도 주차 때문에 지각했다. 상담하러 왔던 오후에는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었는데 오전에는 차가 빼곡했다. 지하 1층을 돌다가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거기도 자리가 없었다. 빙빙 돌다 지하 3층으로 향했다. 급한 마음에 커브를 빠르게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벤츠가 ‘뿅’ 하고 나타났다. 내가 너무 가운데로 붙었는지 하마터면 올라오는 벤츠와 내려가는 내 차가 부딪칠 뻔했다.
노련한 벤츠 운전자께서 피하셔서 사고는 면했다. 유유히 올라가는 그 차를 보며 얼마나 고개를 숙였는지 모른다. 좀 더 싼 곳을 찾아왔다가 첫날부터 벤츠를 박을 뻔하다니 가슴이 철렁했다.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가까스로 주차한 뒤 학원으로 향했다. 이날 무슨 정신으로 운동했는지 모르겠다.
이후 일주일에 두 번씩 운동하러 갈 때마다 주차난은 계속됐다. 지하 4층까지 내려간 날도 많다. 밑으로 갈수록 올라올 때 한참 걸리고, 출차하는 차끼리 곧잘 엉키기도 했다. 지하 4층은 끝까지 갔다가 자리가 없으면 후진으로 나와야 해서 더더욱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하 1층부터 꼼꼼히 훑으며 빈자리가 있으면 가리지 않고 대기 시작했다. 양 옆에 차가 있든 없든 고를 처지가 아니었다. 주차하다가 뒤에 차가 오면 당황해서 도망가곤 했는데 그것도 조금 의연해졌다. 지금 여기에 안 대면 지하 4층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날 단련시켰다.
필라테스는 여러 기구를 사용하고 소규모로 진행해서 소문대로 좋은 운동임을 체험했다. 그러나 한 달 반이 지나자 의욕이 사그라든 나는 갖은 핑계를 만들며…. (이하 생략) 나머지 반을 날린 후 계산해 보니, 비싸서 안 갔던 집 앞 학원에 다니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운동은 망하고 돈은 날렸지만 짧은 기간에 주차 실력이 향상된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그래서 이글의 결론은,
“운동은 가까운 곳이 최고다.”
제목 사진: Unsplash의 Doruk Bay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