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살다가 양평으로 주택을 지어 이사 오면서 차를 사륜구동으로 바꿨다. 집이 오르막에 있기 때문이다. 지대가 높은 다른 집들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지만 그래도 경사가 꽤 있다. 더구나 양평이 어디인가. 1981년 1월 5일, 영하 32.6도의 역대 최저기온을 기록한 곳 아닌가. 눈이라도 오면 경차로 오르막길을 가기는 무리였다. 결국 차를 팔기로 했다.
판매는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집까지 방문해서 견적을 내주는 서비스가 있기에 가격이나 알아보자 하고 신청했다. 바로 약속이 잡히고 기사님이 방문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곱게 주차된 차량을 꼼꼼히 살펴보시더니 매입가를 책정해 알려주셨다. 어라? 근데 내 예상보다 높았다. 이 가격이면 당장 오늘 팔아야지, 하고 아침에 남편에게 농담처럼 얘기한 그 금액이었다.
내가 중고로 이 차를 산 금액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원래 인기가 높은 모델이고, 당시 중고차 가격이 많이 올라서 매입가도 오른 덕이었다. 아울러 1년 반 동안 1,500킬로밖에 안 타서 연식에 비해 주행거리가 짧고, 늘 지하에 주차해 차가 깨끗했다. 시기에 맞게 엔진 오일 갈고, 에어컨 필터 교체하고, 블랙박스도 앞뒤로 달았다. 게다가 애초에 풀옵션 차가 아니더냐!
이러한 연유로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이사를 며칠 앞둔 시점이라 차가 없으면 불편한데, 하는 생각에 잠깐 머뭇거렸다. 그러자 기사님은 거기에서 20만 원을 더 올리셨다. 원래는 쿠폰으로 지급되는 것을 현금으로 주겠다고 제안하셨다.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차를 팔고 며칠 뒤 우리는 양평 주택으로 이사했다. 집 정리가 덜 된 탓에 아이와 나는 지방에 있는 본가에 내려가 며칠을 지냈고, 일주일 뒤 남편이 내려왔다. 양평은 차로 이동하는 게 대부분이라 올라가면 바로 차가 필요했다. 매일 데려다줘야 하는 아이 어린이집부터 문제였다. 일 년 반 전, 첫 차를 살 때처럼 남편과 나는 중고차 사이트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어떤 차를 골라야 할지 막막했다. 소형차부터 중형차, SUV, 픽업트럭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살펴봤다.
“이야, 이것 좀 봐. 픽업트럭 멋지다!”
“이참에 픽업트럭 장만해봐?!”
픽업트럭을 보며 잠깐 행복한 상상을 하다가(이거 있으면 나무시장 가서 나무 사서 바로 싣고 올 수 있겠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우리의 의견은 사륜구동, 중형차로 좁혀졌다. 작은 차가 날쌔고 좋으나 남편 차가 소형차라 또 소형차를 사려니 용도가 겹쳤다. 아이를 매일 태우고 다닐 사람은 나니 안전을 위해 중형차로 바꾸고, 주말이면 그 차를 가족용 차로 이용하기로 했다.
몇 가지 매물로 의견이 모였다. 양평으로 올라오는 길에 수원 근처의 자동차 매매상에 들르기로 했다. 남편이 봐둔 매물이 있었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수원을 대표하는 중고차 매매 단지였다. 첫 번째 후보에 있던 매물은 직접 차를 타보니 생각보다 별로였다. 시야가 답답하고 뒷좌석도 시트가 짧아 불편했다. 남편 역시 같은 생각이라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차로 돌아왔다. 주차장에서 다시 중고차 어플을 켰다.
전에 봐둔 매물 하나가 근처에 있어서 온 김에 이 차도 보고 가기로 했다. 통화 후 그쪽으로 이동했다. 젊은 딜러분이 나왔다. 이 차는 예전에 한 번 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시야 좋고, 뒷자리가 넓어서 쾌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괜찮았다. 차도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연식도 적당, 주행거리도 적당했다. 사고 이력도 크게 없고, 가격도 그 모델의 평균가였다.
크게 모나지 않고 모든 게 적당한 이 차에 마음이 기울던 차에 젊은 딜러분이 아이에게 초콜릿 과자를 건네셨다. 자신도 일찍 결혼해 아이 아빠인지라 아이들 보면 귀엽고, 챙겨주고 싶다면서. 거기에 나는 홀랑 넘어갔다. 원래 염두에 두고 있던 모델이라는 점과 초코 과자의 후광으로 우리는 이 차를 계약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차량 금액을 입금한 뒤 양평 집에서 탁송으로 받았다.
이로써 우리는 세 번째 중고차를 맞이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2015년식 남편의 파란색 차, 두 번째는 쿨거래가 이루어진 2015년식 나의 하얀 경차, 세 번째는 2015년식 남색의 중형차다. 몇 년씩 시차를 두고 샀는데 우연히도 모두 2015년식이다(2015년과 인연이 있나 보다). 그리고 작년에 남편이 파란색 첫 차를 팔고, 전기차를 신차로 샀기에 세 번의 중고차와 한 번의 신차로 구매 이력이 바뀌었다.
경차를 팔고 산 나의 두 번째 차는 우리 집에 온 지 2년이 넘었다. 곧 있으면 연식도 10년이다. 10년 차에는 고칠 곳이 많다는데 아직은 큰 문제없이 타고 있다(조만간 소식이 올까 봐 벌벌 떨고 있다). 앞뒤 범퍼의 양쪽 모서리 네 군데 중 세 곳에는 어여쁜 흠집이 생겼다. 그중 두 개는 내가 만든 것이다. 하나는 다리 위에서 마주 오는 차를 비켜주다가 너무 난간에 붙는 바람에 긁었고, 다른 하나는 후진하다가 전봇대에 살짝 스쳤다. 하지만 앞 범퍼 오른쪽은 주차된 차를 누군가 긁고 도망갔다. 긁힌 것도 2주 뒤에야 알았다. 사비로라도 고칠까,라는 내 물음에 남편은 말했다.
“어차피 또 긁을 텐데 그냥 타.”
그렇게 나는 영광의 상처들을 안고 동네를 쏘다닌다. 오늘도 안전 운전, 내일도 안전 운전, 다른 차 박고 토끼지 말자를 되뇌며.
제목 사진: Unsplash의 Alev Tak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