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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Mar 15. 2024

고속터미널을 왜 못 가니

부모님은 정기적으로 서울에 오신다. 병원 진료를 보기 위해서인데, 아빠와 엄마를 합하면 일 년에 4~6번 정도다. 각자 진료를 보는 과는 다르지만 병원은 같다. 일원동에 있는 삼성서울병원이다. 13년 전쯤 엄마가 그곳에서 큰 수술을 했다. 이후로 매년 정기검진을 다닌다. 상태가 안 좋으면 두세 달에 한 번,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6개월에 한 번이다. 다행히 요새는 몸 상태가 크게 나쁘지 않고 수치를 잘 유지하고 있어 1년에 두세 번 간다. 아빠 역시 검사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은 6개월에 한 번 예약을 잡는다. 담당 교수님의 진료일이 달라서 한날로 몰지는 못하고 엄마 따로, 아빠 따로 온다.     


내가 운전을 시작한 이유에는 부모님의 병원행도 큰 몫을 차지한다. 언니들은 모두 지방에 있고 그나마 경기도에 사는 내가 병원과 가장 가깝다. 그래서 엄마나 아빠가 서울 병원에 가는 날이면 내가 동행한다. 부모님이 충남 본가에서 삼성병원으로 가는 길은 크게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예약 당일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다행히 버스정류장이 본가에서 멀지 않다. 도보로 10분 거리다. 그곳에서 강남 고속터미널로 오는 직행버스를 타면 2시간 안에 도착한다. 터미널에 도착하면 버스 내리는 곳에 미리 서 있던 나를 만나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향한다.


둘째, 기차를 타고 수서역에 내린 뒤 병원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탄다. 기차는 도착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병원 예약에 늦을 일이 없다. 하지만 차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야 하고, 직행이 없어서 중간에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셋째, 경기도 양평의 우리 집으로 미리 올라와 자고 새벽에 내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한다. 재작년 아빠의 병원 검사가 일주일 간격으로 잡혀 있을 때 썼다.


넷째, 본가에서 차를 끌고 병원으로 직접 간다. 예전에는 가능했으나 아빠가 나이 들면서 장거리 운전이 어려워 쓸 수 없는 옵션이 되었다.


별일이 없으면 우리는 첫 번째 방법을 가장 많이 쓴다. 갈아탈 일 없으니 버스를 탔다는 전화만 받으면 나 역시 이게 가장 마음 편하다. 강남 고속터미널 내의 호남선 버스 내리는 곳에 미리 가서 기다리다가 부모님을 만나 병원으로 향한다. 외래 예약 시간이 보통 이른 아침이기에 지하철을 탄다. 택시를 타면 출근길 정체 때문에 시간이 배로 걸리기 때문이다.


출근길 인파로 지하철이 빽빽해 서서 가야 하지만 몇 정거장만 지나면 한가해진다. 부모님을 편히 모시지 못해 죄송하지만 오히려 지하철에 가득찬 사람들을 보며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바쁘고 힘들게 산다며 측은해하신다.


고속터미널역에서 일원역까지 9정거장이다


양평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양수역에 차를 댄 뒤 지하철을 타고 3호선 고속터미널역으로 갔다. 이후 운전이 조금 늘면서 우리 집에서 삼성병원까지는 직접 차를 몰고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삼성병원에 도착해 주차하고 3호선 일원역으로 향한다.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역으로 가서 부모님을 만나 같이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온다. 충남에서 출발한 부모님도 두 시간이 걸리지만 나 역시 편도 두 시간이 꼬박 걸리는 길이다.


내가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미안한지 부모님은 병원에 알아서 갈 테니 터미널에 오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예전에 엄마가 혼자 지하철 타기를 시도했다가 엉뚱한 방향을 탄 적이 있다. 바쁜 출근 시간대에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지하철 타는 곳을 물어볼 부모님 생각에 그럴 거면 택시를 타라고 단단히 일러도 택시는 비싸다며 절대 타지 않는다. 마음 졸이며 걱정하느니 고속터미널로 가서 만나는 게 낫다.


운전하는 김에 바로 고속터미널로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돌아오면 서로 편할 텐데 나는 왜 이렇게 하는가. 고속터미널은 운전해서 못 가기 때문이다. 병원까지는 그래도 할 만한데 고속터미널은 정말이지 모르겠다. 일단 지하철 3, 7, 9호선 세 개 노선이 지나가고,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강남 꽃 시장과 붙어 있어 규모가 크다. 커도 한산하면 괜찮은데 도로는 택시, 버스, 자가용이 뒤섞여 도무지 내가 낄 자리가 없어 보였다. 미리 가서 고속터미널 주변을 뱅글뱅글 걸어가며 차의 진출입로와 주차장 입구를 확인했는데 더 어려워만 보였다. 자신감은 점점 떨어졌다.      


하남에 사시는 아빠의 사촌분이 태워다주신 적이 있다. 서울 운전에 능한 그분도 이곳은 힘들어하셨다. 게다가 한때 일원동에 살았던 큰 형부도 초보인 내가 운전해서 가기엔 무리라고 판단했다(형부가 몇 년 전에 한 말을 나는 아직도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매번 삼성병원에 주차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에 가는 것이다.


진료가 끝난 뒤에는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고 부모님을 고속터미널에 데려다준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삼성병원에 와서 주차해둔 내 차를 타고 운전해서 집으로 간다. 멀쩡한 차는 병원에 세워 두고 뭐 하는 건지, 어디에 말하기도 부끄럽다. 언젠가 엄마가 고속터미널은 왜 운전해서 못 가냐고 묻기에 서울 운전이 쉬운 줄 아냐고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내가 못 가는 게 고속터미널뿐이랴. 하지만 다른 곳은 안 가도 그만이지만 여긴 꼭 가야 하기에 문제다. 올해는 갈 수 있을까? 나의 운전 목표 두 가지가 본가에 운전해서 내려가기와 고속터미널 가기다. 이 중 본가에 가는 건 작년에 성공했다. 이제 고속터미널로 부모님 마중 가기만 남았다. 올해는 하나 남은 나의 운전 목표, 강남 고속터미널 가기에 도전해보련다.






아자아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을까?

                   무서운데...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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