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치 Mar 22. 2024

혼자 친정에 내려간 날

운전을 시작하면서 내가 목표한 곳은 크게 두 군데였다. 첫째는 부모님이 계신 친정이고, 둘째는 강남 고속터미널이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아직 강남 고속터미널은 가지 못했다. 그래도 운전을 한 지 3년이 지난 2023년 8월, 친정에는 갔다. 경기도 양평의 우리 집에서 17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안 막히면 2시간 반쯤 걸린다.


처음 내려간 날 차가 막혀서 3시간쯤 걸렸다. 며칠 전부터 잔뜩 긴장한 탓에 전날 잠을 거의 못 잤다. 당일 아침에도 ‘갈 수 있을까? 고속도로는 처음인데?’ ‘지금이라도 기차 타고 갈까?’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남편이랑 같이 갈까?’ ‘아니야, 언제까지 남의 도움으로 살 거야? 부모님도 점점 나이 드시는데 집에 갑자기 일 생기면 그때도 마냥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늘은 기필코 운전해서 가야 한다는 결심과 좀 더 나중에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충돌했다.     


아침 먹고 일찍 출발하려던 계획이 결국 점심까지 늘어졌다. 아빠가 몸이 안 좋아서 입원했다가 퇴원해 집에 오신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만 계시기에 언니들과 당분간 기간을 나누어 교대로 집에 가기로 했고, 이번엔 내 차례였다. 혼자 운전해서 가든 기차를 타고 가든 어쨌든 오늘은 무조건 가야 했다.      


대중교통을 검색했다. 기차를 타려면 용산역으로 가야 하고, 버스는 강남 고속터미널로 가야 했다. 우리 집에서 거기까지 가는 데 두 시간, 거기서 기차든 버스든 두 시간, 내려서 친정집까지 20분, 총 네다섯 시간이 훌쩍 넘는 여정이었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친정에 가서 여기저기 다니려면 차가 필요한데 대중교통을 타면 어떻게 움직일지 까마득했다.


결국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다. 혹시 몰라 전날 기름을 가득 채워둔 게 다행이었다. 부모님께 출발한다고 전화하고, 빠진 게 있나 짐을 살피는데 셋째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에게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걱정 많은 셋째 언니는 고속도로를 어떻게 타려고 하느냐, 그냥 주말에 제부랑 같이 와라, 아니면 기차 타고 와라, 하며 나를 말렸다. 말리는 언니를 보니 오히려 용기가 생겼다.      


“아냐, 자꾸 미루면 언제 해. 이따 도착해서 연락할 테니까 그전에는 전화하지 마. 내비 봐야 하니까.”     

중간에 연락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고 집 주차장을 나왔다. 며칠 전부터 틈틈이 봐둬서 외우다시피 한 길을 따라 친정으로 향했다. 삼성서울병원, 여주곤충박물관 등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정도는 운전한 적 있지만 혼자 이렇게 멀리 가는 건 처음이었다. 하남 IC,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가는 길이었다.


미리 유튜브와 네이버 카페를 보며 고속도로 운전 시 주의할 점을 챙겼다. 앞차와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트럭이나 큰 차 옆은 가급적 피하고, 빠져야 할 곳에서 못 나가면 무리하지 말고 다음번에 나가기 등등. 길 잘못 들면 좀 돌아가지 뭐,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보채는 아이도 없고 길이 막힌다고 한숨 쉬는 사람도 없으니 마음이 느긋했다. 먼 거리에 있는 친정이라 항상 남편을 대동하고 갔는데 혼자 단출하게 움직이니 홀가분했다. 남편은 조심히 다녀오고, 다음에는 아이도 꼭 데리고 가라며 덕담을 건넸다.


평일 낮이라 차가 많지 않고, 진출입 구간이 어렵지 않아 생각보다 수월했다. 길은 서울을 빠져나갈 때와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잠깐 막혔다. 긴장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막히는 구간 외에는 속도를 내고, 다른 차들과 호흡을 맞춰 신나게 달렸다. 약 3시간 후 부모님이 계신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에 순조롭게 진입했다. 이걸 못해서 몇 년을 망설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혼자 운전해서 온 나를 반색하며 맞았다. 엄마는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막내딸이 혼자 운전해서 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묻기도 했다. "정말 네가 운전해서 여기까지 온 거냐?" 나는 분주히 짐을 풀며 그렇다고 답했다.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뭐든 시작하기 전에 최악을 생각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출발 전에 유서를 써놓고 올까(남편에게 미리 공인인증서를 비롯해 각종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너 줄게, 했는데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았다), 보험 상속은 누구에게 되는지 약관을 들춰 보고,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괜스레 눈물이 났다. 고향 친구들에게는 나 지금 운전해서 내려간다고 비장한 어조로 연락을 한 탓에 친구들은 내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을 때까지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오래 망설이긴 했지만 차를 가지고 간 덕에 친정에서 편하게 다녔다. 아빠를 태우고 우체국에 볼일 보러 가고, 마트 가서 장도 보고, 맛있는 어죽을 포장해 집에서 오붓하게 먹었다. 이틀 뒤 다시 양평으로 올라올 때도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때에 출발했다. 운전할 생각에 여전히 긴장됐지만 한 번 와봤다고 그래도 조금 자신이 생겼다.


내려올 때 실수한 부분은 바로 보완했다. 생수통을 뚜껑도 열지 않고 음료 자리에 꽂아놓은 까닭에 2시간 넘게 갈증에 허덕였다. 100킬로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뚜껑을 딸 여유가 어디 있는가. 목이 바싹바싹 타는 와중에 물이 옆에 있는데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어찌나 원통하던지. 고속도로 요금소를 빠져나온 뒤 도착 30분 전에야 빨간 신호를 만나 간신히 물을 마셨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올라오는 길



내려올 때의 일을 반면교사 삼아 올라올 때는 미리 뚜껑을 열어 빨대도 꽂아놓고 커피도 준비했다. 혹여 넘칠까 봐 물과 커피, 둘 다 반만 담았다. 현명하기도 하지. 어깨가 으쓱거린다.

이전 11화 고속터미널을 왜 못 가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