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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Feb 16. 2024

아마도, 아빠의 마지막 차


아빠가 평소 나에게 준 가르침이 세 가지 있다.      


첫째, 깨떡 먹고 웃지 마라.

첫 번째 조언은 까만 깨가 고소하게 발라진 깨떡을 먹으며 내가 깔깔대고 웃을 때 한 말이다. 아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진경아, 깨떡 먹고 웃으면 안 된다.” 이 사이로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감촉으로 내 이에 가득 낀 깨는 이미 알고 있었다. 떡만 내려가고 깨는 남았구나. 하지만 깨떡을 하나만 먹을 건 아니잖은가. 깨떡을 다 먹을 때까지 사람이 웃지도 못하는가. 아빠 말에 기분이 언짢았지만 거울에 비친 내 이빨을 봤을 때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고 웃을 순 없겠군. 그 뒤로 깨떡을 먹을 때면 아무래도 조심하게 된다.     


둘째, 선크림은 얼굴에서 목까지 이어지게 발라라.

두 번째는 평소 미모 유지에 힘쓰는 아빠가 특별히 시범까지 보이며 알려줬다. 선크림을 목까지 잘 펴 바르지 않으면 얼굴만 동동 뜬다는 것을. “봐라, 얼굴만 바르고 목은 안 바르면 숭허지? 목까지 이렇게 발라야 자연스럽지.” 거울 앞에서 아빠의 얼굴과 목을 구분 짓던 경계가 사라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당시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다른 지점에서 의문이 든다. 아빠 선크림은 왜 그리도 백탁현상이 심했을까. 발라도 하얗게 뜨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미는 제품도 많은데 말이다.      


셋째, 운전할 때 멀리 봐라.  

세 번째는 엄마에게 운전을 가르쳐줄 때도 늘 했던 말이다. 운전대를 너무 밭게 잡지 말고, 시선은 항상 멀리까지 봐야 한다는 이야기. 내가 운전을 시작한 뒤로 아빠는 운전에 도움 되는 여러 조언을 해준다. 무턱대고 앞차만 따라가면 안 된다, 후진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보험 들었으니 사고 나도 당황하지 말아라 등등. 하면 안 되는 사례로 엄마를 종종 예로 들며(아빠는 주로 안 좋은 예를 들 때 엄마를 자주 등장시킨다) 예시까지 풍부하게 나열한다.


깨떡은 즐겨 먹는 음식이 아니고, 선크림 역시 귀찮아서 거의 안 바르기 때문에 앞선 두 조언은 마음에만 새기고 있다. 반면 오랜 시간 운전을 업으로 해온 아빠이기에 운전에 관한 조언은 심리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큰 도움이 된다.     


아빠는 우편 차를 운전하는 기능직 공무원이었다. 자가용도 꽤 일찍 샀다. 동네에 차 있는 집이 많지 않던 때였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첫 번째 차는 검은색 세단이다. 당시 서울에 살던 아빠 친구가 타던 차를 얻어왔다고 한다. 차가 꽤 컸지만 그 차가 우리 집에 있던 기간은 길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식구는 할머니, 부모님, 딸 넷으로 총 일곱 명이었다. 5인승 차는 우리 가족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그 뒤 9인승 봉고차가 왔다. 바람 쐬러 다니기 좋아하는 아빠가 산 차다(엄마가 운전을 배운 뒤 끌고 다니다 여기저기 박은 그 차다). 여름이면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얼음이 가득했다. 언제 어디든 아빠가 가자고 하면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봉고차에 아이스박스를 싣고 엄마와 아빠의 지휘하에 대천 바닷가, 안면도 등 여기저기 다녔다. 이미 사춘기가 온 네 딸은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온 가족이 가는데 빠질 수 없었다. 가끔 동네 이웃들도 합류해 떠들썩한 나들이가 되기도 했다. 화려했던 봉고 시절을 끝내고 빨간 티코, 소형차, 갤로퍼가 우리 집을 거쳐 갔다.


지금 타는 아빠의 SUV는 기아에서 나온 모하비다. 내가 결혼한 다음 해인가 샀으니 10년쯤 되었다. 딸들은 결혼했으니 이제 부모님 두 분만 주로 탈 텐데 아빠가 갑자기 큰 차로 바꿔서 의외였다. 연비도 좋지 않고, 차가 커서 주차할 때 빠듯하고, 유지비도 많이 들 텐데 말이다. 아빠는 내 나이를 생각했을 때 아마도 이게 마지막 차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한번 차를 사면 기본 10년 이상, 폐차할 때까지 타는 아빠의 성향상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 말을 들은 뒤로는 사고 없이 안전하게 잘 타시라고 말씀드렸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는 차를 잘 타고 다닌다. 특히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선산에 다닐 때 유용하다. 정년퇴직 후 갈 곳이 없어진 아빠는 매일같이 산으로 출근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잠들어 계신 그곳에 감나무, 자두나무를 심고, 오이, 가지, 애호박, 고추를 기른다. 포장이 되지 않아 흙길인 탓에 일반 자가용으로는 오르지 못하는 곳이다. 차가 크고 힘이 좋아 웬만한 차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산길을 아빠의 SUV는 잘 올라간다. 뒷자리를 접으면 트렁크가 넓어져 농사지을 때 필요한 삽이나 장화, 비료도 가득 실을 수 있다. 기름값은 예상대로 많이 들지만 아빠의 즐거움을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빠가 이 차가 자신의 마지막 차가 될 거라고 말했을 때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빠 말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아빠는 운전면허를 반납해야 할 것이다. 그럼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탈 일은 영영 없겠지. 봉고에 가족들을 태우고 신나게 바다로 향하던 기억도, 비 오던 날 우산 없는 나를 위해 학교로 데리러 오던 일도 먼 옛날이 된 것처럼.


생각만 해도 코가 시큰하다.




사진: Unsplash의 Danny Sleeuwenho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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