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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Feb 09. 2024

남편의 첫 차, 파란색 볼보 V40

남편도 차를 꽤 늦은 나이에 샀다. 서른다섯에 장만한 그의 첫 차는 하늘색 볼보 V40 D2 모델이다. 연식은 3년, 주행거리는 5만이 조금 안 된 중고차였다. 지금은 단종된 그 차는 남편의 첫 차이자 우리 가족의 첫 차였다. ‘파워 블루’라는 이름이 붙은, 은은한 펄이 들어간 하늘색이 남편과 잘 어울렸다.


결혼한 뒤에 차를 살까 고민했었다. 가끔 차가 필요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차를 사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찮기에 최대한 늦게 사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쏘카와 같은 공유 차와 대중교통으로 버텼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면 외근이 거의 없어 출퇴근만 하면 됐기에 가능했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설계 일은 지역을 국한해서 들어오지 않았다. 전국이 일터였다. 경기도까지는 광역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그것도 왕복으로 하면 서너 시간이 소요되었다. 경기도에 다녀오면 그날은 그게 하루 일과의 다였다. 이동에 이렇게 시간을 쏟는 것은 오히려 일에 지장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를 낳을 계획이었다. 첫 임신은 8주차쯤 유산으로 판명됐다. 초음파를 보던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하며 옆 방 선생님을 모셔 왔다. 두 분은 모니터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 뒤 고개를 끄덕였다. 옆 방 선생님이 돌아간 뒤 영문을 몰라 하는 나에게 아기 집만 있고 아기는 없는 고사난자라고 설명해주셨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선생님 방에 있던 휴지 한 통을 거의 다 쓸 만큼 한바탕 울고 진료실을 나왔다. 수술은 다음 날 오전 9시였다.     


침잠하는 밤을 보낸 뒤 다음 날 아침이 됐다. 평일 아침 시간에 택시를 잡아본 적 없는 우리는 도로에 나와서 적잖이 당황했다. 출근 시간과 겹쳐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어플로 택시를 불러도 연결되지 않고, 지나가는 택시도 모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수술 시간 전에 미리 와서 동의서를 쓰고 준비해야 했기에 마냥 길에 서 있을 순 없었다.      


걷기엔 애매한 거리에 있던 산부인과는 대중교통이 불편했다. 도보는 26분, 대중교통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20분이었다.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오히려 돌아가는 걸 타야 했기에 차라리 걷는 편이 나았다. 남편과 나는 병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날씨 따뜻하고 기분 낙낙한 날에야 운동도 되고 좋지만 찬 바람이 부는 2월, 수술하러 가는 길이 즐거울리 없었다. 우리는 말없이 불광천을 걸으며 병원으로 향했다. 차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개월이 지나 그해 6월 차를 샀다. 남편은 이 차의 디자인과 색상을 몹시 마음에 들어 했다. 흰색, 회색, 검정 등 무채색 차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그 차는 어디서든 눈에 잘 띄어 좋았다. 어린이대공원, 올림픽공원처럼 아무리 주차장이 넓은 곳에 가도 하늘색으로 반짝이는 우리 차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동네에 남편 차와 똑같은 차가 없기에 간혹 여기저기에서 “아까 지나가던데?” “오늘은 출근이 늦네?” 같은 남편의 행방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기도 했다.      


어디서든 눈에 잘 띄는 남편 차


아이를 처음 카시트에 태운 날도 생각난다. 차를 산 다음 해 3월, 아이가 태어났다. 운전석 뒤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아이는 낯선 듯 주변을 살폈다. 바구니 카시트도 커서 공간이 많이 남아 안전띠를 단단히 매주었다. 카시트를 거부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안전과 직결되므로 예외를 두지 않았다. 아이는 카시트에 서서히 적응했고, 차에 타면 으레 카시트로 향했다. 그러면 나는 옆자리에 앉아 떡뻥을 대령하고, 짝짜꿍을 선보였다.


소형차라 차가 날렵하고 좋았지만 아이가 태어나니 트렁크 크기가 아쉬웠다. 트렁크에 아이 물건을 실으면 남는 공간이 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캠핑 의자와 돗자리를 넣고 산으로 들로 아이와 나들이했다.     


바구니 카시트도 크던 아이가 자라서 주니어 카시트로 바꿔줬다. 아이는 길어진 다리로 앞자리 운전석을 발로 찰 정도가 됐다. 차를 사면 지출이 많아지니 늦게 사거나 아예 안 사는 편이 돈 버는 건 맞지만 남편과 나는 조금 일찍 살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았겠지만 있으니 좋은 점이 많았다. 전국 어디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니고, 짐도 편하게 실을 수 있다. 대중교통을 탈 때는 비가 오면 한숨부터 나왔는데 차가 있으니 궂은 날씨도 나쁘지 않았다. 또 다른 안락한 집이 생긴 기분이었다.      


남편 차는 신호대기 중 뒤에서 누가 박은 거 말고는 사고 없이 잘 타고 다녔다. 그러다 작년에 남편이 전기차로 바꾸면서 이 차를 팔게 되었다. 어플로 신청하니 경매가 들어오고 그중 최고가를 선택해 거래가 성사되었다. 탁송을 맡은 기사님이 오셨다. 모든 게 물 흐르듯 매끄럽고 빠르게 진행됐다. 젊고 쌩쌩할 때 우리에게 왔는데 이제는 주행거리 18만을 향해 가는 전성기를 지난 차가 되었다.     


남편은 차 키를 건넨 뒤 회사로 향했고, 나는 하원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를 데려왔다. 그러다 집 앞 교차로에서 우연히 남편 차를 만났다. 탁송 기사님이 운전하고 계셨다. 내 바로 뒤에 우리 차가 따라왔다. 백미러로 흘끔거리며 한참을 같이 갔다. 운전석에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낯설고, 이제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울컥했다.      


아이는 뒤따라오는 아빠 차를 보며 꺼이꺼이 울었다. 이제 다시는 못 타는 거냐며, 며칠 전 아빠가 차 타고 산책하러 가자고 했을 때 갈 걸 그랬다며,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딜 가든 아빠 차 찾는 재미에 살았던 아이. 아이의 울음에 나까지 눈이 뜨거워졌다.


얼마 뒤 나온 갈림길에서 나는 왼쪽, 남편 차는 오른 쪽으로 향했다. 7년을 함께한 우리의 첫 차였다. 멀어져가는 차를 보며 네 덕에 우리 가족 안전하게 잘 다닐 수 있었다고,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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