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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Sep 28. 2022

‘텅’ 빈 배달의 민족

 ‘텅’     


곳간이 비듯 배달 어플이 ‘텅’ 비었다. 동네에 치킨집, 피자집, 식당, 커피숍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곳은 왜 배달이 안 될까. 양평에서도 빌라나 아파트가 많은 곳은 되는 걸 보면 아마도 주택이 대부분이라 사람이 적게 살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이 많지 않으니 자연히 주문이 적고, 집들이 띄엄띄엄 있으니 배달 거리가 길다. 많지 않은 주문을 위해 배달 기사가 상주하기 힘드니 배달로 이윤을 남기기 좋은 곳이 아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의 선택지에서 배달은 사라지게 되었다. 배달만 안 될 뿐 집 직접 가게에 가서 먹거나 포장해오는 것은 가능하므로 외식 생활은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손가락 몇 번 톡톡 하면 집까지 배달해주는 편리함에 비하면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번거로워서 집에서 해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메추리알 조림과 애호박볶음은 가족 모두가 잘 먹으니 자주 하고, 브로콜리도 데쳐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밥하는 게 부담일 때는 반찬가게에 의지하거나 한 그릇 음식을 주로 한다. 주먹밥, 볶음밥은 채소를 소진하기 좋고 아이 먹이기도 편하다. 많이 해서 얼려두면 다음 날 점심으로도 먹을 수 있다. 계란찜도 전자레인지에 하면 간편하다.


데크의 새로운 쓰임. 메추리알과 애호박볶음을 식히기 좋다.


다행히 남편과 아이는 음식에 까다롭지 않다. 아이는 매운 음식만 아니면 대체로 잘 먹는다. 남편은 식사를 대체할 알약이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무식욕자인데, 식욕도 없지만 음식 투정도 없다. 주는 대로 먹고 밥하는 사람의 노고를 안다. 출근할 때 계란 프라이를 해주면 아침부터 이렇게 손 많이 가는 걸 했느냐며 고마워한다.   


문제는 나다. 먹는 건 좋아하는데 음식을 잘하지 못한다. 요리 과정도 그리 달갑지 않다. 먹기도 잘하고 만들기도 잘하면 좋으련만 왜 내게는 반쪽의 재능만 있는가. 먹고 싶은 건 또 어찌나 화수분처럼 솟아나는지 모르겠다. 텔레비전에서 곱창이 나오면 곱창이 먹고 싶고, 김치찌개가 나오면 그게 먹고 싶다. 남들 먹는 건 다 먹고 싶어진다는 말이다. 예전이라면 당장 배달 어플을 켜고 검색에 들어갔겠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생각해본다. 왜냐, 내가 만들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육개장을 끓였다. 마침 집에 선물로 들어온 한우가 있었다. 내 평생 말로만 듣던 이 어려운 음식을 할 줄이야. 대단한 사람이 된 듯했지만 맛을 보고 알았다. 좋은 재료 다 넣어서 만들어도 국물이 이렇게 밍밍할 수 있구나. 맵기만 하고 깊은 맛은 없는 국물을 떠먹으며 연신 ‘그렇구나’만 반복했다.


하루 지나면 간이 배어서 나을지 몰라, 하고 기대했으나 밍밍함은 그대로였다. 주는 대로 먹는 남편마저 한사코 마다하는 바람에 한솥 가득 끓인 육개장은 며칠에 걸쳐 간신히 먹었다. 언제쯤 다시 육개장에 도전할지는 모르겠다.     


동네에 없는 프랜차이즈 음식은 대체품을 찾는다. 햄버거 가게가 없어서 낙심하던 중 해장국 집에서 햄버거 파는 것을 발견했다. 해장국과 햄버거라니, 믿기지 않는 조합에 의심이 갔다. 다행히 가게 리뷰를 보니 맛있다는 의견이 많았다(리뷰를 단 사람 대부분은 나처럼 의문을 품고 있었다. 왜 해장국 집에서 햄버거를 팔지? 심지어 왜 맛있지?). 세트에 탄산음료가 포함 안 된 건 아쉽지만 맛은 괜찮아서 햄버거는 이 집으로 정착했다.


해장국집 리뷰에 등장하는 햄버거들


주로 배달을 많이 시키던 불금에는 반찬가게의 금요 특선 메뉴를 활용하거나(금요일에는 닭발, 보쌈 이런 걸 내놓으신다) 남편이 퇴근길에 치킨집에서 포장해온다. 동네에 배달 오는 곳이 없으니 배달 소음이 없는 건 장점이다. 일회용 포장 용기도 적게 나오니 환경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남편은 이제 휴대폰 속 배달 어플을 지우라고 하지만 그건 아직이다. 내 삶의 윤활유가 되어주던 배달 음식들.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을 그들과 함께 했던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혹시 하는 마음으로 배달 어플을 열어본다. 역시나 '텅'이지만 차마 지우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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