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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Oct 05. 2022

이웃과 적절한 거리 유지하기

비가 오면 마을 단톡방이 바빠진다. 특히 큰비가 오는 장마철에는 비상이다. 내내 잠잠하던 단톡방이 쏟아지는 빗방울처럼 톡톡톡톡 울린다. 몇 년 전,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 토사가 흘렀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으로 비가 오기 전 다 같이 모여 마을 배수로를 정비하고, 보수할 곳을 찾는다. 날짜와 시간이 정해지면 사람들이 모이는데 참석이 필수는 아니다. 그날 못 나가면 내 집 주변만 알아서 챙기면 된다.

      

나는 가급적이면 남편과 함께 가거나, 둘 중 하나는 참여하려고 한다. 작게나마 보탬이 되려는 마음도 있지만 일단은 궁금하다.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고, 관리해야 하는지 직접 보고 싶다. 우리보다 먼저 이사 온 분들이 대부분이라 참석하면 뭐라도 배우는 것이 있다. 지난번에는 배수구를 여는 데 필요한 쇠 지렛대도 하나 얻었다. 내가 너무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는지 집에 여러 개가 있다며 하나 주셨다. 전원생활에서는 공구가 생명이기에 사양하지 않고 넙죽 받았다.


이제 내게도 쇠 지렛대가 있다.

      

봄맞이 마을 청소에는 아이를 데리고 갔다. 마을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아이에게 너도 이 동네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장 선거에 가서 투표권을 행사하고, 마을 잔치에는 세 가족이 참석해 상품도 받아왔다. 위쪽에 사는 친구도 온다고 했더니 우리 아이도 신이 나서 잔치에 갔다.


그날 아이는 낯선 사람들 틈에서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나중에 마을 잔치가 재미있었다고 말해서 의외였다. 마을 잔치 또 언제 하느냐고 묻기에 뭐가 기억에 남았는지 물어보니 그냥 좋았단다. 여럿이 모여 맛있는 걸 먹고 상품 뽑기도 해서 그런가 보다. 마을 정비나 청소는 시간이 맞으면 당연히 가려고 한다. 마을 잔치는 친목 성격이 강한 것 같아서 고민했는데 아이의 반응을 보니 가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행사에 꽤 열심히 참여하는 내가 남편은 예상 밖인가 보다. 개인주의가 강한 나는 공동주택의 익명성을 사랑했다. 굳이 위아래에 누가 사는지 알고, 인사를 하고 지내야 할까. 누구든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우리가 사는 동안 아랫집과 윗집이 바뀌었지만 그저 사다리차로만 그 사실을 알아도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면을 트면 그 뒤부터는 인사를 하고 지내야 하니 처음부터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였기에 집을 짓기로 하고 땅을 보러 다닐 때 내 걱정은 이웃과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어떻게 유지할까였다. 결속력이 너무 강한 공동체면 어쩌지, 버거운 책임이 맡겨지진 않을까 걱정했다. 텃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외지인이 많은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있다. 동네에 집들이 모두 새로 지어서 이사 왔기에 원주민이라기보다 조금 먼저 오고, 늦게 오고의 차이만 있다.


다만 이웃집들과 너무 붙어 있는 건 결정을 망설이게 했다. 필지가 크지 않아 집들이 촘촘하게 이어진 탓이다. 물리적으로 이웃집들과 거리가 가깝다 보니 조심하는 건 있다. 층간소음은 없지만 집간소음은 있다. 동네가 워낙 조용해서 마당에서 너무 크게 떠들거나 음악을 쩌렁쩌렁하게 틀지 않는다. 이웃집이 보인다고 해도 노골적으로 쳐다보지 않도록 시선도 신경쓴다.


그런데 직접 살다 보니 겁 많은 나에겐 단점이 곧 장점으로 바뀌었다. 방범을 위해 담을 치고 삼중 창을 설치하고 cctv도 달았지만 가장 든든한 건 이웃집들이다. 서로의 집과 마당이 보이고, 도둑이 들어도 소리치면 닿는 거리다. 언젠가는 마당에서 방울토마토를 구경하다가 벌이 날아들어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옆집 문이 벌컥 열리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 눈길이 느껴졌다. 멋쩍어진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심리적으로는 자연스레 거리두기가 유지되고 있다. 동네에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거리 두고 살고 싶은 사람들, 가족이 우선인 사람들이다. 여름이면 마당에 수영장을 설치하고, 날이 좋으면 여기저기서 바비큐 하느라 고기 냄새가 퍼진다. 다들 자기 집 안에서 즐기느라 정신없다. 서로 친분이 두터운 집도 있지만 다른 집들에까지 강요하진 않는다. 각자 조용조용 즐기며 산다. 나는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워 어디서든 있는 듯 없는 듯 살자가 모토인데 동네에 꽤 자연스럽게 들어앉은 것 같아 만족스럽다. 와글와글하던 단톡방도 장마가 끝나고, 폭설이 그치면 기나긴 휴지기에 들어간다.

     

올해 우리 집 초복 메뉴는 보쌈이었다. 곁들여 먹을 상추를 따러 마당에 간 남편이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허겁지겁 들어왔다. 앞집, 뒷집, 아랫집 모조리 고기를 굽고 있단다. 마당에 나가 보니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사방에서 풍겼다. 남편은 우리도 질 수 없다며 당장 고기를 사다 구워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마트로 내달렸다. 결국 우리는 시류에 편승해 보쌈 대신 목살을 구워 먹었다. 이웃집 따라 갑자기 저녁 메뉴가 바뀌는 건 장점일까 단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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