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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Oct 17. 2022

노출 콘크리트와 악플

우리 집은 내부를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했고, 열 효율이 좋은 패시브 주택으로 지었다. 2층은 가벽을 세우느라 일부 목공 작업을 했지만 집 전체로 보면 비율이 크지 않다. 노출 콘크리트는 건축가인 남편의 결정이었다. 이유는 마감에 드는 예산을 절약하고, 에너지 축열 성능을 시험하고자, 그리고 추후 스터디를 위해서다(실험 정신이 강한 남편은 자꾸 집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고, 더하고 뺀다. 나중에 2층 가벽을 다 털고 뭔가 할 거라는데 못 들은 척 하고 있다). 노출 콘크리트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 집은 ‘유로폼 노출’이라는 거친, 날 것 그대로를 보여 주는 형식이다(즉, 노출 중에서 저렴한 공법이다).     


노출 콘크리트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선택인데 나는 어느 쪽이냐면 ‘극호’다. 남편이 내부를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자고 했을 때 외부도 노출로 하면 안 되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재료 본연의 거친 날 것 그대로를 좋아한다.      


(좌) 공사 중이던 계단실 (우) 노출 콘크리트, 벽, 마루가 만나는 2층 방


집이 완공된 후 감사하게도 잡지 여러 곳에 실렸다. 한 곳에서는 그달의 특집으로 자신의 집을 짓고 사는 건축가 세 명을 소개했다. 그중 하나가 우리 집이었다. 종이 잡지가 나오고 얼마 뒤 네이버 포스트도 올라왔는데 포털의 ‘리빙’ 부문 메인에 걸렸나 보다. 모르고 있다가 지인이 말해주기에 우리 집을 찾아봤다.      


우리 집이 나온 페이지에 댓글이 많이 달리고 있었다. 댓글의 90퍼센트는 노출 콘크리트에 대한 맹비난이었다. 가루 나온다, 오염물질 발산된다, 가정집에 노출이 웬 말이냐, 공사가 덜 끝난 거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호불호가 갈리는 선택이니 ‘불호’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가정집에 노출 콘크리트가 흔한 일은 아니므로.      


댓글 중 개인의 기호를 떠나 잘못된 추측이 마치 사실처럼 올라오기도 했다. 남편이 잘못된 정보에 대해서는 설명을 달았다. 그 내용을 옮기면 이렇다.


먼저 공사비와 실내 노출 콘크리트에 관해서다.      


“실내 노출 콘크리트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있는데, 실제 공사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가장 저렴한 유로폼 노출을 선택했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노출 콘크리트 품질이 아닙니다. 저희 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이었다면 이렇게 진행하지 못했을 겁니다. 최소한 벽지라도 붙였겠지요. 선택이 필요했고 그것이 꼭 최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는 실내 분진 및 공기질에 대해서다.     


“실내공기질 체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VOCs,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온습도), 표면 오염 때문에 발수를 진행했으나 콘크리트 강도가 충분하다면 분진을 위한 별도의 도장은 필요치 않다고 봅니다. 준공 후 콘크리트에서 비산되는 먼지는 거의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완공 후 초기 콘크리트 내부 습기 배출을 위해서는 마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환기장치 및 프리필터가 있어 이산화탄소, 미세먼지는 기본적으로 최적의 상태로 유지됩니다. 문제는 VOCs이며 이는 신축 건물에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베이크아웃으로 100퍼센트 제거되지 않습니다) 환기장치와 더불어 지속적인 외기 환기를 하고 있습니다. 라돈의 경우 아파트와 별다르지 않은 컨디션이며 라돈은 무엇보다 축적이 되지 않게끔 지속적인 환기가 중요합니다. 최근 수치 확인을 위해 '라돈아이'로 확인했으며 기준치인 4피코의 절반인 2피코가 하루 중 최고치였습니다(평균 1.3피코 정도).”     


남편은 이렇게 글을 마쳤다.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셨길 바라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이유와 사연이 있겠지요. 걱정해주시는 것과 달리 저희 가족은 이 집에서 매우 쾌적하게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며 잘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만 살아보셨다면 언젠가 꼭 주택에 살아보시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모두 행복하시길 빕니다.”     


댓글을 처음 봤을 때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바닥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서 얼마간 힘들었다. 비아냥과 조롱 섞인 글도 있었기 때문이다. 조롱 섞인 악플을 단 사람에게 남편의 글이 얼마나 가닿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달렸다.


그달의 특집으로 우리 말고도 두 분의 건축가가 잡지에 실렸는데 우연인지 우리까지 세 집 모두 실내에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했다(적용한 면적에 차이는 있다). 우리보다 품질이 좋은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한 건축가가 계셨는데 그분의 포스트에 적힌 댓글을 보고 실소가 났다. 댓글에는 "안방까지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한 집은 처음 본다"라고 쓰여 있었다. 저 글을 적은 분은 다행히 우리 집은 아직 못 본 게 분명하다. 우리 집 안방은 한쪽 벽을 제외하면 천장까지 모두 노출인데 말이다.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니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개인의 선택이라면 서로 존중해주길.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고, 거기에는 이 집을 지은 우리도 포함된다. 우리가 살 집을 우리의 취향대로 지었는데 평범한 선택은 아닌지라 낯선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어쨌든 남편의 말대로 우리는 이 집에서 매일 즐겁게 지내고 있다. 가라앉았던 마음이 조금 낙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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