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사계절, 나의 사계절

by 아치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망설여진다. 겨우내 입은 묵은 패딩을 빨아 장롱에 넣으면 여봐란듯이 꽃샘추위가 찾아오는 봄인가, 커다란 수박을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여름인가, 아침저녁으로 코가 시큰한 가을인가, 눈 오는 날이면 괜히 읍내까지 산책 다녀오던 열세 살의 내가 생각나는 겨울인가.


계절은 음식과 함께 오기도 한다. 여름이 다가오면 식당에선 콩국수, 냉면 같은 메뉴를 내놓는다. 어릴 적 주말이면 온 식구가 아침 일찍 온천에 갔다가 목욕이 끝나면 시장 안에 있는 칼국숫집에 들르는 것이 코스였다. 여름이 되면 가족들 모두 콩국수를 시키는데 나는 홀로 칼국수를 먹었다. 소금과 설탕을 친다 해도 밍밍한 콩국수는 한 그릇을 다 먹기 힘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칼국수 파’지만 가끔은 콩국수를 시킨다. 콩국수의 담백함이 주는 어른의 맛을 조금은 즐기게 되었다.


겨울은 붕어빵으로 알 수 있다. 요즘엔 붕어빵도 종류가 다양해서 안에 팥뿐만 아니라 슈크림이 들어가고, 크기가 작은 제품도 나온다. 이사 오기 전 살던 동네에서 잔챙이 붕어빵이라고 한입 크기의 작은 붕어빵을 팔았는데 인기가 많았다. 팥 들은 것은 5개에 천 원, 슈크림이 든 것은 4개에 천 원이었다. 바삭한 부분이 많고, 크기가 작아서 아이도 편히 먹었다.


매일 붐비던 붕어빵 가게가 모처럼 한산한 날이었다. 아이가 지난번에 슈크림을 잘 먹길래 그걸 사주려고 했는데 자기는 오늘 붕어빵 안 먹는단다. 그럼 나라도 먹어야지 하고 주문했는데 앞서 기다리던 손님이 “아이부터 주세요”라며 양보하셨다. 주인아저씨는 지금 막 오픈해서 만들고 있는 중이니 시간이 걸린다며 미리 만들어 놓은 몇 개를 아이에게 맛보기로 건네주셨다. 내가 먹고 싶어서 사는 건데 어쩌지 하다가 모두를 속이는 것 같아서 실토했다.


“애는 배부르대요, 제가 먹으려고요.”


주인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건네려던 붕어빵을 다시 거둬들이셨다.


잔챙이 붕어빵으로 기억되는 그때를 끝으로 집을 지어 이사 왔다. 주택에서 사계절은 집 안팎을 타고 온다. 지나가는 계절과 새로이 다가오는 계절이 서로 내 집 마당, 대문 안으로 교차하듯 지나간다. 주택에서 계절의 변화가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지는 건 계절마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때 맞춰 준비해야 그 계절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봄이 오면 텃밭을 일구고 마당을 정리한다. 날씨가 좀 풀렸다 싶으면 농협 경제부에 가서 퇴비와 배양토를 사다 한 달 전에 미리 섞어놓아야 한다. 첫해에 텃밭이 처음이라 그걸 모르고 배양토만 넣어 토마토, 상추 등을 심었더니 잘 못 자랐다. 물도 수시로 주리라. 물을 적게 주어 말라죽은 작물도 있다. 올해의 실수를 돌이켜보며 내년에는 실패를 만회하리라 다짐한다.


겨우내 마당을 지켜준 그라스는 새로 자랄 수 있도록 아랫부분을 잘라준다. 봄이 되어 날이 풀리면서 데크에 있는 시간도 길어진다. 테이블과 캠핑의자 세 개를 아예 데크에 내놓고 주말이면 삼시 세 끼를 모두 밖에서 먹기도 한다.


우리 집 열혈 농사꾼. 봄에는 마당의 그라스를 베고, 텃밭 준비를 한다.


여름에는 수영장을 설치한다. 수영장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8월이 되어서야 샀는데 올해 산 물건 중 가장 잘 썼다. 얼마나 쓰겠나 싶어 망설이다가 결정이 늦어졌다. 아이도 좋아하고, 남편과 나도 기대 이상으로 만족한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면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가 질 때까지 두어 시간 물에 들어가 아이와 같이 논다. 해가 강할 때는 타프를 쳐서 그늘을 만들고, 간단한 음료를 아이스박스에 넣어 나들이 기분을 낸다.


아이는 물놀이를 하니 저녁도 달게 먹고, 피곤한지 잠도 잘 잔다. 아이만 놀겠지 해서 작은 걸 샀는데 웬걸, 물놀이는 어른도 너무 신나는 일이다. 놀다 보니 셋이 쓰기에는 좁아서 내년에는 더 큰 걸 사서 6월부터 마당에 펼쳐 놓기로 했다.


여름의 시작과 끝은 수영장이다.


가을이 온다 싶으면 수영장을 거두고 마당에 텐트를 친다. 일교차가 크지만 모기도 없고 밖에서 놀기 좋은 계절이다. 우리는 원터치 텐트 조그만 것만 있는데 언니가 큰 텐트를 주어 고맙게 잘 쓰고 있다. 남편이 뚝딱뚝딱 텐트를 세우면 버너를 가져가 그 안에서 조개를 굽고, 고기도 먹는다.


그릇, 조미료, 테이블, 의자 등 필요한 건 다 집에 있으니 고대로 들고 텐트로 가면 된다. 아이는 자기 장난감을 텐트로 이사시키느라 부산하다. 잠자리가 불편해 캠핑을 즐기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마당 캠핑은 좋은 점만 가득하다. 놀다가 잠은 내 방, 내 침대에서 편히 자면 되니까 말이다.


텐트의 조그만 프레임으로 바라본 마당 풍경은 새롭다.


양평의 겨울은 소문만큼 춥다. 기온이 서울보다 3도가량 낮은 것 같다. 겨울이면 차에 성에가 껴서 전날 저녁에 미리 앞 유리 가림막을 친다. 그래야 아침마다 성에를 긁어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추운 날씨에 방전되기 쉬우니 차 배터리도 살펴본다. 수돗가의 부동전을 방한재로 감싸고, 땅에 묻힌 수도 계량기에는 안 입는 옷을 채워 넣어 동파를 막는다.


눈이 오면 길을 쓸어야 하니 제설 장비도 갖춘다. 눈 쓸기용 빗자루 하나, 눈 밀대 두 개를 창고에 보관 중이다. 빗자루보다 눈 밀대가 효율이 좋아서 남편과 하나씩 쓰고 있다. 눈이 오면 마을 공동 물품인 송풍기가 출동한다. 송풍기가 지나간 뒤 각자 자기 집 앞을 요령껏 쓴다. 아이는 눈을 치우는 엄마 아빠 옆에서 눈사람을 만들거나 집게로 오리를 제작한다.


중무장하고 나와서 눈 쓸기


지난해 이사 와서 첫 사계절을 보내고 나니 주택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조금씩 요령이 생기고 있다. 집의 사계절에 맞춰 나의 사계절도 채워지는 느낌이다. 아침마다 마당에 나가 그날의 날씨를 가늠하고, 마당의 꽃과 나무가 자라는 걸 보며 계절이 바뀌는 걸 마주한다. 미숙했던 부분은 점차 나아지겠지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내게 남은 월동 준비는 단 하나. 바로 붕어빵이다. 아직 동네에 붕어빵 파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어서 붕어빵 가게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