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가정 자녀로서 받은 심리상담 3
상담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갈수록 마음이 이전보다는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약 열 번의 상담으로 이혼가정 자녀로서 받은 상처가 사라지거나 치유된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 내 편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새삼스럽게 유년기 시절의 내가 더 안쓰러워졌다. 바라던 거라곤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것뿐이었는데 그걸 그 어떤 어른도 해주지 않았다는 게 이로써 확실해졌으니 말이다.
“희결씨가 괜찮다면 학창시절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 해요. 어른들에게 좋지 않았던 기억이 많았다고 했는데 친구들에 대한 기억도 비슷한가요?”
“아뇨. 신기하게도 친구들은 하나같이 따뜻했어요. 제 사정을 몰라서 그랬던 친구도 있었겠지만, 사정을 알았던 친구들도 다정했어요.”
어른들에 대한 기억을 회상할 때와는 다르게 표정이 밝아졌다. 우울하고 불안하기만 하던 학창시절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건 친구들 덕분이었단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당연히 어린 나이니까 싸우고 멀어진 친구도 있었지만 그건 서로가 잘 맞지 않아서였지. 가정환경이 문제가 된 건 아니었다.
“친구들과는 잘 지냈다고 하니까 다행이네요. 기억에 남거나 고마웠던 친구가 있나요?”
“네.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나서 처음 맞이하는 생일 때 미역국을 챙겨준 친구요.”
그 시절을 함께 보낸 모든 친구에게 고맙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던 친구가 딱 한 명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진 같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고학년이 되길 앞두고 그 친구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서 헤어졌다. 앞으론 만나기 어렵겠다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중학생 때 같은 학교에서 진학하면서 반갑게 재회했다. 몇 년이 지난 뒤였지만 다행히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고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친하게 지냈다.
“희결아. 올해 생일 때 받고 싶은 선물 있어?”
생일 선물을 챙겨주고 싶다는 친구 말에 고개를 저었다.
“받고 싶은 선물 없어. 우리 가족들도 내 생일 아무도 기억 안 해주거든. 선물은커녕 미역국도 못 먹어. 그냥 이렇게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이후 매일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조금 더 나이가 있었더라면 부모님의 이혼을 현명하게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사는 게 괴로웠다. 부모님의 이혼은 자식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고 순전히 부모님의 선택일 뿐인데도 당시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고, 내가 잘못해서, 내가 잘못 태어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생일이 달갑지 않았다. 잘한 일도 없는데 축하는 받아서 무얼 하나 싶었고, 한편으론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생일이 되면 외로움만 더 커져서 싫었다. 괜히 외로움을 더 키워서 우울함까지 극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생일이 다가오기 한 달 전부터 신규 앨범 티저라도 뿌리듯이 여기저기 알리고 다니던데 나는 반대로 생일 때마다 더 조용해졌다.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 것도 굳이 생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건 언제까지나 혼자만의 바람이었던 건지 친구는 생일날 아침에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밀폐 용기에 담긴 것은 누가 봐도 미역국이었다.
“생일에 미역국도 못 먹는단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미역국은 처음 끓여봐서 맛은 장담 못 하지만 정성이라고 생각하고 먹어주라. 생일 축하해.”
집으로 돌아가서 친구가 만들어준 미역국을 먹었다. 분명히 처음 끓여본 거라고 했는데도 어찌나 맛있던지. 앞으로도 이 맛을 능가할 정도로 감동적이면서도 맛있는 미역국은 먹어보기 힘들겠단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다음 날에 밀폐 용기를 깨끗하게 씻어서 돌려주면서 미역국이 정말 맛있었다며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다른 친구들이 준 모든 선물이 보잘 것 없었다는 게 아니다. 내게 준 모든 선물이 고마웠고 좋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이 미역국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생일에 외롭지 않았던 첫 기억이어서가 아닐까.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던 생일을 만들어준 그 친구에게 고마웠다.
“그런 친구가 있었다면 저였어도 못 잊을 것 같네요. 정말 좋은 친구를 뒀어요.”
상담 선생님께서는 진심으로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셨다. 그런 작은 공감만으로도 지난날의 아픈 기억이 옅어지고 좋았던 기억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미역국을 끓여준 친구를 시작으로 좋았던 기억에 하나씩 접근해갔다. 내면에 괴로웠던 감정이 너무 깊게 각인돼서 잊고 지냈던 좋은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생각해보니까 우울감 해소방법이 글쓰기 말고 한 가지가 더 있었어요. 밤하늘 올려다보기였는데, 그건 학교 선배가 가르쳐준 방법이에요.”
중학생 때 친해진 선배가 한 명 있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친해진 건 아니었다. 선배는 타고난 이과생이었지만 난 뼛속까지 문과생이었고, 난 전형적인 문예부 동아리 일원이었지만 선배는 정보성 글을 모아서 편집하는 동아리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지만, 책을 좋아하고 글쓰길 좋아한단 이유만으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선배는 아는 것이 많았다. 필름 카메라에 일가견이 있어서 사진도 잘 찍었고 천문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별자리나 성운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선배만의 특별한 취향이나 다정한 시선을 닮고 싶었다. 추천받은 소설을 열심히 읽고 선배가 좋아한다던 뉴에이지, 팝페라를 들어보는 등 나 역시 선배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했다. 선배는 그런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주며 보듬어주었다.
“희결아. 혹시 괜찮다면 올해 겨울에 나랑 별 보러 갈래?”
하루는 선배가 내게 별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 얘길 듣는다면 그게 가능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선 가능했다. 우리가 살던 곳은 인구수가 적은 소도시로 가로등이 많지 않아서 조금만 어두운 곳에 가도 금방 별이 보일 정도였으니까.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선배의 요청을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그해 12월 겨울밤, 우리는 약속했던 시간에 만났다. 밤 9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따뜻한 담요와 돗자리, mp3 등을 챙겨서 선배와 함께 근처 뒷산으로 향했다. 선배는 이곳만큼 별이 잘 보이는 곳이 없는 것 같다며, 겨울이 되면 이곳에 혼자 종종 온다고 말했다. 마치 자신의 비밀 아지트를 공개하는 어린아이처럼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우리는 가로등이 있는 뒷산 입구를 지나쳐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뒷산 입구에서 조금만 멀어졌을 뿐인데도 가로등이 없으니 사방이 금세 어두워졌다. 어둠에 두 눈이 익숙해지고 밤하늘에 별들이 점점 더 도드라졌다. 우리는 오르막길 중턱쯤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담요로 몸을 덮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얼어 죽으려고 작정했냐며 혀를 찰 것 같은 광경이었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가로등 불빛과 멀어진 만큼 밤하늘은 더 짙은 빛깔을 띠었고, 별은 시릴 정도로 밝게 빛났다. 심지어 평소엔 잘 보이지 않던 잔별마저 잘 보여서 시선을 두는 곳마다 별천지였다.
선배는 내게 사계절 중 겨울철 별자리가 가장 잘 보이는 이유도 설명해주었다. 다른 계절보다 대기가 깨끗해서 구름에 의해 가려지는 부분이 적기 때문이란다.
“괜히 우울해지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 이렇게 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앞으로 너도 힘든 일 있으면 이렇게 밤하늘을 올려다봐. 도움이 되는 때가 있을 거야.”
사람들 속에 있을 땐 내가 가장 작은 존재가 되는 것 같아서 외로웠다. 네가 나약해서 이 시기를 견뎌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자책하게 되고 마음이 좁아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여기서 더 좁아질 공간도 없다고 여겼는데 선배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법을 가르쳐준 덕분에 시선을 좀 더 넓은 곳에 두는 법을 배웠다. 나를 비추고 있던 카메라가 알고 보니 너무 많이 줌을 당긴 상태였단 걸 깨달은 것이다.
한껏 당겼던 카메라 줌을 조금씩 풀자
다른 것들이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의 땅은 넓었고, 그 땅에 작은 나무도 자라고 있었으며, 하늘엔 수많은 별이 떠 있었다. 멀리서 보려고 할수록 모든 존재가 작아졌고 당연히 날 힘들게 한 사람들과 비수가 된 말, 시선 역시 작아져서 종국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선배는 이걸 알려주고 싶던 게 아닐까. 힘든 일을 너무 가까이서 들여다보지 말고 조금은 멀리서 지켜보라고. 결국엔 다 작아지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다행히도 주위에 따뜻한 사람도 있었네요. 그런 사람들과의 기억이 모여서 지금의 희결씨가 마음속 우산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될 걸지도 몰라요.”
상담 선생님께선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잊고 있던 좋은 기억들이 되살아난 것부터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다.
“아프기만 했던 시간 속에도 반드시 긍정적인 기억이 숨어있어요. 스스로 이걸 찾아내지 않으면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기 쉬워요. 이젠 그런 부정적인 기억 말고 좋은 기억을 희결씨의 자산으로 만들어봐요. 충분히 그럴만한 힘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상담 선생님의 조언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움을 느꼈다. 앞으로 좋은 기억들이 찾아올지 확신할 수 없어서였다. 예전과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나서다가 괜히 또 상처를 받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그렇게 10회 상담이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