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 찰스 코트니 커런
학부생 시절에도 나는 아싸 중에 최고봉 아싸였다. 동기들은 학회며, 술자리며, 축제며, 연애며 대학교 낭만을 충분히 즐길 동안에도 홀로 예외였다. 강의가 끝나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오죽하면 동기들이 너랑 약속 한 번 잡기 힘들다며 집에 꿀이라도 발라놨냐고 물었을까.
소극적인 태도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강의 시간에만 안경을 쓰고 복도나 캠퍼스를 돌아다닐 땐 안경도, 렌즈도 착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는 얼굴과 마주했을 때 어색하게 인사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였다. 물론, 나중엔 그렇게 지내는 것이 사회성 발달에 그리 좋지 않다는 걸 깨닫고 매일 렌즈를 착용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처럼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과도 잘 지내는 것이 서툴렀던 내가 어쩌다 보니 성당에서 교리교사로 활동하게 됐다. 처음엔 모든 행동이 서툴렀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가야 친해질 수 있는데 그런 능력 따윈 1%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들보다 더 낯을 가려서 로봇처럼 삐걱삐걱 대기 바빴다. 시리와 빅스비도 나보단 다정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난 어른이 되긴 또 싫어서 딴엔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든 이름을 외워서 불러주었고, 소소한 칭찬도 해주고, 옆에 붙어있으려고 애를 썼다. 진땀을 빼면서도 역할에 충실 하려던 노력이 가상했는지 다행히 아이들이 먼저 마음을 열어주었다. 멀리서 아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쥐구멍에 숨으려던 나는 어느 순간 먼저 손을 들고 인사하는 수준까지 갔다. 실로 놀라운 발전이었다.
“선생님, 교리교사도 돈 받아요?”
하루는 찬영이가 내게 물었다. 교리교사도 돈을 받냐는 아주 신박한 질문이었다. 아마도 아이들 눈엔 교리교사가 선생님들의 직업처럼 보였나 보다. 그 질문이 너무 귀여워서 웃으며 답했다.
“아니. 교리교사는 직업이 아니라서 돈을 받지 않아.”
“정말요? 그러면 선생님은 이 일을 왜 하는 거예요?”
말문이 막혔다. 순수하게 물어보는 눈망울을 보며, ‘응~ 사실은 선생님이 신부님의 제안에 거절을 못 해서 그렇단다.’ 같은 동심이 파괴된 말 따윈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너희들을 많이 사랑해서 이 일을 한단다.’ 같은 거짓말을 하기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게. 선생님도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봤네. 이 일을 왜 하는지 한 번 찾아볼게.”
이렇게 답변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이 일을 왜 하는지 찾아보겠다는 말. 물론, 그 말을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행복했다.
처음엔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삐걱거리던 나도 점점 아이들을 대하는 일에 능숙해졌다.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나 말투가 다정해진 것 말고도 가장 큰 변화는 행동이나 표정을 보고도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척척 잘하던 찬영이가 갑자기 못하겠다고 말하는 건 관심을 달라는 뜻이고, 주희가 다른 친구들의 행동을 대신 지적해주는 건 선생님이 힘들까 봐서 또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멀리서 보이면 하나 같이 우당탕탕 달려오는 건 그만큼 내가 좋다는 뜻이란 걸 알게 됐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이들을 통해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건 상대를 귀하게 여기거나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였다.
계절이 겨울로 넘어가던 무렵, 성탄절 준비를 앞두고 성당은 활기를 띠었다. 아이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성탄절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그 많은 아이 중 유하도 있었다. 유하는 평소에 장난기가 다분하고 활달했지만, 묘하게 마음이 여려서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고 곧잘 눈물을 잘 쏟곤 했다. 그날도 유하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자 눈물부터 쏟았다. 유하의 어머니는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도대체 사내아이가 왜 저렇게 눈물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께서도 우리 유하 보느라 힘드시죠?”
아마도 어머니는 아들이 걱정돼서 하신 말씀이었을 것이다. 감정이 잘 제어되지 않으니 다른 곳에 가서도 저렇게 울어서 해결을 보려고 하거나 선생님들께 안 좋은 낙인이 찍힐까 봐. 나는 어머니께 웃으며 대답했다.
“유하가 오늘은 기분이 좀 많이 상해서 그런가 봐요. 평소엔 얼마나 활달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데요. 아마 최근 일 년 사이에 가장 긍정적으로 바뀐 친구들을 뽑자면 유하일 거예요. 칭찬 많이 해주세요.”
“어머.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어머니께선 내 말을 듣고 안심하시는 눈치였다. 훌쩍훌쩍 울던 유하가 또 다시 아이들 틈에 껴서 자기가 할 일을 꿋꿋하게 해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분명히 이유가 없이 눈물이 많진 않을 텐데 유하의 마음이 읽고 싶어졌다.
그 이후에 다른 선생님들을 통해 유하가 엄마랑만 사는 이혼가정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제야 유하가 보였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됐다. 유독 내게 많은 장난을 친 것도, 자꾸만 주변을 배회하며 눈치를 살피던 것도, 사소한 일에도 서럽게 울어댔던 것도 전부. 그건 더 많은 사랑을 갈구하고 있단 의사 표현이었고 늦게라도 내가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에 안도감과 감사함을 느꼈다.
12월 성탄절이 눈앞에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비하며 마음을 담은 카드를 썼다. 뻔한 내용, 또는 다 똑같은 내용을 쓰고 싶지 않아서 모두에게 다른 내용을 썼다. 전부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장점 역시 다른 아이들이란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네가 어떤 매력이 있는 사람인지, 어떤 점이 기특하고 고마웠는지 한 명씩 꼼꼼하게 칭찬해주고 싶었다. 워낙 오래전 기억이어서 카드 내용이 또렷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유하에게 보냈던 카드 내용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유하가 다른 친구들보다 눈물이 많은 건 나약해서가 아니야.
다른 사람들보다 마음이 여리기 때문이야.
마음이 여린 사람에겐 다른 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어.
유하는 그런 사람이야.
진심으로 유하가 행복하길 바랐다. 눈물이 많다는 걸 장점으로 인식하길 바랐고, 다른 이들의 말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의 중심을 잡으며 살아가길 바랐다. 유하에게 이 말을 남기면서 이상하게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는 것 같단 기분이 들었다. 어른들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을 다른 아이에게 대신해 주는 방식으로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고 있단 걸 느낀 것이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을 만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말이다.
나에겐 과거의 상처를
사랑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했구나.
이혼가정이라는 낙인은 죽을 때까지 내 안에 상처로만 남아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긍정적으로 바꾸는 방법 따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 상처를 상처로만 남겨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된다는 걸 알았다. 상처도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더니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더 이상 나를 지켜줄 좋은 어른을 기다리지 말고 내가 좋은 어른이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아이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이혼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