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가정 상처를 사랑으로 바꾼 순간 2
성당 교리교사 경험과 전공을 살려 독서학원 선생님으로 취직했다. 이곳에서 할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가 읽어온 책을 중심으로 대화하고 아이가 써온 글을 첨삭지도 하는 일이 전부였다. 간혹 글쓰기를 두려워하거나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가 있다면 그림 그리기로 대체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어 또는 논술학원은 학교 성적과 직결되기 때문에 선생님과 아이가 함께 스트레스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지만, 독서학원은 독서가 최우선이라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왠지 이곳이라면 내가 아픈 기억을 딛고 좋은 어른이 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처음부터 이 일이 쉬웠던 건 아니었다. 아이마다 독서 수준과 사고력, 어휘력 차이가 나서 맞춰주는 것도 어려웠고, 하교 후에 아이들이 학원으로 몰리는 시간이라도 되면 영혼까지 탈탈 털려야 했다. 이럴 땐 일대일로 세심하게 대화하기가 어려웠지만, 가끔 여유로운 시간대에 아이와 여러 대화를 나눌 때면 행복했다.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순수함으로 날 웃게 하거나 때로는 기발하게 멋진 생각으로 놀라게 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직장을 이곳으로 택했지만,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많을 정도였다.
하루는 학원에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신규생, 윤서가 들어왔다. 윤서는 기본적으로 언어 감각도 있었고, 활동지를 한 장씩 완성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줄 아는 아이였다. 게다가 독서도 좋아해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곧잘 숙지하다 보니 선생님 입장에선 이보다 가르치기 좋은 아이는 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지났을 때부터 윤서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활동지에 서술해온 맞춤법이 틀려서 고쳐주려고 하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 어디 틀렸어요? 제가 고치면 안 될까요?”
내가 맞춤법을 고쳐주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고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라고 했다. 여기에서는 ‘~하지 안아.’가 아니라 ‘~하지 않아.’가 맞는 맞춤법이야.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자 윤서는 틀린 맞춤법을 지우개로 벅벅 지우고 정갈한 글씨로 올바르게 고쳤다. 그때까지만 했어도 워낙 자립심이 높은 아이여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문제는 이때부터 점점 더 심각해졌다. 활동지를 검사할 때마다 생글생글 웃던 윤서가 어느 순간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초조함이 얼굴에서 다 드러날 정도였다. 활동지를 검사하다가 고개를 살짝만 갸우뚱해도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어디가 틀렸는지 확인부터 하려고 들었고, 좋은 표현이 있어서 칭찬해주려고 볼펜을 가져다 대면 소스라치게 놀라기까지 했다. 결국에 같이 일하는 동료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윤서가 요즘에 맞춤법 강박이 생기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서가요? 제가 한 번 수업해볼게요.”
다른 선생님과 수업할 때도 윤서는 반응이 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혼자서 해내려 하고 선생님들의 싸인 외에는 활동지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이대로 가다간 문제가 더 커질 것만 같아서 윤서와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윤서가 여느 날처럼 활동지 검사를 하러 왔을 때였다. 이번에도 역시 틀린 게 있는지 확인부터 하길래 윤서에게 물어봤다.
“윤서야. 틀린 맞춤법을 왜 확인하고 싶은 거야?”
“제가 고치고 싶어서요.”
“왜 고치고 싶어?”
윤서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수줍게 말했다.
“혼자서 더 잘 해내고 싶어서요.”
“혹시 선생님이 여기에 맞춤법을 교정해주면 윤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고치고 싶었던 거야?”
윤서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맞춤법에 왜 강박적으로 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맞춤법을 교정해줄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게 싫던 것이다.
그런 윤서가 걱정됐다. 지금은 아직 어려서 고작 맞춤법 정도로 끝나겠지만 앞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배우고, 고쳐야 할 것이 늘어만 갈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심지어 어른인 나도 맞춤법이 완벽하지 못하고 아직도 배울 것이 산더미인데 어린 윤서가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틀린 답을 마주할 때마다 지금처럼 혼자서 해결하려 들고 실수하지 않으려는 강박을 느낀다면 쉽게 지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윤서가 그런 상황에 놓이길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틀리지 않고 써가면 엄마가 좋아해요.”
“선생님이 맞춤법을 교정해주면 엄마가 싫어하실까 봐 걱정돼?”
“네.”
독서학원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보이는 순간이 많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엄마를 얼마나 깊게 신뢰하고 사랑하는지는 조금만 대화를 나눠봐도 뚜렷하게 느껴진다. 윤서 역시 다르지 않았다. 엄마의 칭찬과 사랑을 계속 받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강박, 또는 완벽주의로 변질된 것이다. 순수하게 어른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윤서가 어린 시절의 나와도 닮아있어서 마음이 쓰였다.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너는 사랑스러운 존재인데. 당연히 틀려도 괜찮은 나이인데 아직 그걸 잘 모르는구나.
“맞춤법을 아무리 많이 틀려도 엄마는 윤서를 사랑하실 거야.”
“엄마가 실망하면 어떡해요?”
“전혀 그렇지 않아. 엄마는 윤서 자체를 사랑하신 거지. 맞춤법을 잘 아는 윤서만 사랑하신 게 아니잖아.”
윤서는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자마자 무엇이든지 다 잘하는 어른은 없어. 선생님은 윤서 나이 때 윤서보다도 글씨 못 썼고, 이만큼 해내지도 못했지만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거야.”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선생님이 그때 글씨 어떻게 썼는지 보여줄까?”
어렸을 적에 엉망으로 쓰던 글씨와 맞춤법을 흉내 내며 윤서에게 보여줬다. 윤서는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 표정에서 초조함이 옅어진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얼마든지 틀려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는 거야. 그걸 가르쳐 주기 위해 선생님이 여기 있는 거고. 그런데 윤서가 모든 걸 혼자서 해내려 하면 선생님은 윤서를 도와줄 수가 없어. 선생님이 윤서를 도울 기회를 줄래?”
윤서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대화 이후로 윤서 안에 있던 맞춤법 강박은 차츰 사라졌다.
“윤서야. 이 부분 맞춤법을 고쳐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틀린 맞춤법이 보이면 불안해하던 윤서는 더 이상 활동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의젓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틀린 건 선생님이 가르쳐주세요.”
해맑게 웃는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볼펜으로 맞춤법을 교정해주고 포스트잇을 한 장 꺼내서 세 번씩 따라 쓰는 연습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틀려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기분 좋게 글씨를 쓰는 윤서를 보며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응원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