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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결 Oct 07. 2023

우울을 뚫고 나가는 달리기

블루 노트 (우울을 이겨낸 달리기 기록 모음)

달리기 하러 나가서 직접 찍은 사진




   매일 달리기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여전히 격일 달리기를 선호한다. 이 글을 쓰는 요즘도 일주일에 3~4회 정도는 꾸준히 달리고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달리기에 푹 빠진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달리러 나가는 게 매번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어떤 날은 달리러 나가기 전부터 설레고 기대되지만, 또 어떤 날은 달리기를 내일로 미루고 싶고 귀찮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하루만 더 쉬자는 나약한 마음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더 빨리 러닝용 옷으로 갈아입고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다. 몸이 먼저 달릴 준비를 끝내면 준비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나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반강제로 현관문을 나서면 그때부턴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왕 나온 거 오늘도 열심히 달려보자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달리기를 통해 늘어지는 마음을 통제할 힘을 기르게 된 이후, 수년간 내 삶을 장악하던 우울은 그만큼 약해졌다. 아직도 우울에서 완벽히 벗어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우울로 인해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울증은 우리 사회에서 배척받는 질병 중 하나였다. 의지와 정신력의 부재가 만들어낸 질병이라는 말도 안 되는 편견으로 인해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숨겨야 했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길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최근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경험을 고백하고, 인터넷으로 우울증은 뇌의 문제라는 올바른 지식이 전파되면서 예전만큼 배척받진 않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에 비해서 지금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 편하고 행복한 건 아니다. 사회적 시선만 조금 유해졌을 뿐, 그들이 겪는 고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우울감에 시달리는 기간이 길어지면 일상을 지탱하는 다양한 감각들이 무뎌진다. 가장 먼저 대외적인 사회생활 감각부터 무뎌진다. 사람을 만나는 게 피곤해지며 집 안에 혼자 있길 바란다. 일반적인 집순이와는 결이 다르다. 집순이는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게 가끔 찾아오는 이벤트가 되지만, 우울한 사람들은 밖에 나가는 일부터 가슴을 옥좨는 일이 된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생활을 하는 게 의미 없게 느껴지기 때문에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나고 종국엔 집에서 나오지 않게 된다.

   우울은 사회생활에만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일상을 유지하는 감각도 무너뜨린다. 불면증으로 인해서 제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규칙적인 시간에 기상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밥을 먹는 것도 버거워서 끼니를 거르는 일은 일상다반사가 되고, 정말 심할 땐 샤워도 하지 못하거나 쓰레기를 방치하고 쌓아두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이 무너진 상태를 오래 유지하게 되면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조차 사라진다. 숨이 붙어있고,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죽어있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에 우울에서 빠져나오기가 더 힘들다.



   나도 우울이 극심했던 시절엔 스스로 눈만 뜬 시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내가 좋아했던 모든 것들이 나에게서 등을 돌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 살아보려 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연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으론 하루에도 수백 번씩 내일은 눈을 뜨지 않길 바라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아무것도 좋아할 수 없고, 살아있다는 감각이 마비되는 현상은 삶 자체를 공포로 만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끝나도 미련이 없을 정도로 우울했던 내가 조금씩 달라진 건 달리기의 공이 컸다. 달리기는 나에게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땅을 박차고 달리는 발의 감각은 다리와 허리, 팔과 어깨로 이어져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뇌까지 영향을 미쳤다. 우울로 인해 부정적으로 망가진 사고회로에 전환점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눈만 뜬 시체가 아니었구나. 이렇게 잘 살아있구나. 생명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존재감을 달리기를 통해서 되찾았고, 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달릴 때마다 전신의 근육이 일제히 움직이고 심장은 빠르게 요동쳤다. 땀은 온몸을 타고 흐르고 턱 끝까지 숨이 찼다. 살아있다는 감각은 더는 죽음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살아있음을 깨닫고 난 뒤부터는 무감하게 느껴지던 모든 것들이 새로워졌다. 뺨을 스치는 바람과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꽃, 나보다 빠르게 떠내려가는 구름과 곁을 지나치는 사람들까지 생동했다. 멈춰있던 내가 움직이자 세상도 움직였다. 나만 없어지면 세상이 괜찮아질 거란 건 우울이 만든 잘못된 함정이었다. 내가 있어야 비로소 세상도 존재했다.



   오늘도 나는 석양이 지는 공원에서 달린다. 거창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기 위해서 달린다. 방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던 나를 끄집어내고, 조금이라도 달리게 하고, 이때까지 살아있게 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아무도 해줄 수 없는 일을 스스로 해낸 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내가 강한 사람임을 증명한 것과 같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이깟 하찮은 우울에 지지 않을 것이다. 눈앞을 가로막는 푸른 우울을 내 발로 뚫고 달려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느리지만 꿋꿋했던 성실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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