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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결 Oct 11. 2023

달리기를 응원하는 마음

블루 노트 (우울을 이겨낸 달리기 기록 모음)

Unsplash의Nathalie Désirée Mottet




   함께 운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서 운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혼자서 운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달리기를 선뜻 시작하게 된 이유 또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수영이나 헬스를 비롯한 각종 운동은 타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단 사실만으로 진입장벽이 높았다. 다른 사람과 운동하는 것이 싫다는 게 아니라 내가 잘 해내지 못했을 때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시작부터 거부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달리기는 혼자 힘으로 자료를 찾아보고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낮아서 좋았다. 망해도 내 탓만 하면 되고, 잘하면 더 좋고, 아프면 쉬어가도 되니까 부담이랄 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혼자서 참 치열하게도 달렸다.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도 해보고, 다시 스스로 격려하고 달리길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혼자서 달리고 나를 격려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하루는 꽤 저녁 늦게 달리러 나갔다. 하필이면 계절도 가을에 접어들어서 해가 금세 떨어졌다. 밤공기가 조금 쌀쌀했지만 달리다 보면 또 더워진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집 근처 산책로를 달렸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산책로는 일직선으로 약 500m에 불과하다. 왕복해야 겨우 1km가 채워지는 셈이다.

   공원에서 달릴 땐 반환점까지 꽤 달려야 했지만 여기선 500m마다 반환점이 돌아오다 보니 코스가 눈에 익어서 쉽게 지겨워졌다. 풍경이라도 흥미로워야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텐데, 시간 가는 줄 알고 달리고 있으니 다리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졌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스스로 독려하는 것 외엔 없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티자고, 목표치가 코앞이라며 나를 북돋아 주었다. 500m 반환점을 몇 번이고 돌다가 거의 마지막으로 반환점을 돌았을 무렵이었다.


   “이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남자의 탄성이 들렸다. 지쳐서 바닥만 보고 달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산책로 반환점에 설치된 벤치였다. 그곳에 웬 노부부께서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데 노부부 중 할아버지께서 먼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셨다. 힘내라고 격려해주시는 듯 활짝 웃고 계셨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도 덩달아 두 손을 번쩍 들어서 흔드시더니 박수까지 치셨다. 순간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반환점엔 우리 세 사람 말곤 아무도 없었다. 그분들은 정확히 나를 응원하고 계셨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예의 없게 그냥 휙 가버릴 수가 없어서 달리다 말고 벤치쪽으로 몸을 살짝 틀었다. 두 분께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게걸음으로 달렸다. 페이스도 느리고, 잘 달리지도 못하는 나에게 응원을 건네주신 그 마음이 감사했다.

   노부부를 지나치고 다시 혼자서 달려나갈 때 신기한 경험을 했다. 닻을 매단 것처럼 무거웠던 두 다리가 갑자기 가벼워진 것이다. 좀 전에 반환점을 막 돌던 때까지만 했어도 달리기 장소를 잘못 골랐다고, 보이는 풍경이 하나도 재미없고 지루하단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심지어 이 기세라면 조금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단 의욕마저 생겼다. 두 분의 따뜻한 시선과 응원 덕에 지친 상태로 달리다가 마지막엔 웃으면서 달리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태껏 달리면서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꽤 오랜 시간을 혼자서 스스로 독려하며 달렸던 터라 다른 사람의 개입을 상상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날 경험을 통해서 혼자 달리고 스스로 독려하는 것도 자유롭고 멋진 일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도 꽤 멋진 일이란 걸 알았다. 달릴 때 꼭 혼자가 아니어도 괜찮구나. 가끔은 다른 사람과 섞이는 것도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겠구나. 그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삶을 살아가는 시야가 더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도 나는 혼자서 달린다. 가끔 친구들이 나를 따라서 달리기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는 말을 할 때면 이런 얘길 한다.


   “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서 응원해줄게.”


   내가 바닥만 보고 달릴 때 힘내라고 먼저 웃어 보이셨던 그 노부부처럼 나도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응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럼, 그날의 나처럼 친구도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시간도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을 수많을 사람들이 있다. 부디 목표한 대로 꾸준히 달려가길.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길. 나를 괴롭히던 것들로부터 멀어져서 끝내 자유로워지길 응원한다. 그리고 그날 제게 응원해주신 어르신, 어디에 계시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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