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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Oct 30. 2022

Day 3. 부다페스트 베를린

20200106 Budapest Berlin

새벽 2시 반을 넘어갈 무렵 첫째가 잠에서 깼다.

역시 아직 시차 적응이 되었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혹시 그제보다는 어제 늦게 잠들었기에 기상 시간이 늦어지리라 조금은 기대했다. 하지만 늦게 잔만큼 늦게 일어났다. 아이들 몸의 시계는 어른의 그것보다 정확한가 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한 시간 정도 뒤척이다 3시 반쯤 다시 잠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다시 눈을 붙이려고 하는 순간, 둘째가 잠에서 깬다. 마치 두 녀석이 미리 계획한 것처럼. 누굴 원망할까, 이 정도는 여기까지 두 녀석을 끌고 온 부모가 감내해야 할 부분 아니겠는가.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40분. 세온이를 다시 재우기 위해 실랑이를 하던 중 결국 네 가족 모두 잠에서 깨 버렸다. 시차 적응이야 천천히 해도 되기에, 새벽에 깨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것. 다른 방 수면에 방해가 될까 시끄럽게 놀 수도 없고, 밖에 나간다고 해서 우리를 기다리는 건 깊은 어둠과 찬 바람뿐이다. 그리고, 이 시간엔 조금 무섭다.

시간을 보내다 6시가 다 되어 호텔 근처로 산책을 나왔다. 베를린으로 가기 전 국회의사당의 새벽 야경도 구경하고 가능하다면 사진도 찍기 위해서이다. 아뿔싸, 밖에 나가보니 국회의사당 조명은 꺼져있었다. 이건 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트램을 배경으로 사진 하나 남기고, 호텔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이른 새벽, 운행을 시작한 트램을 배경으로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베를린으로 향하는 항공편은 9시 25분 출발 예정이다. 공항까지 가는데 넉넉잡고 한 시간 걸린다고 예상한다면,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는 걸 이제야 실감한다.

6시 30분. 조식 시작 시각에 맞춰 짐을 챙겨 조식 먹으러 1층으로 내려왔다. 이 좋은 공간에서 훌륭한 식사를 15분 만에 먹고 출발해야 한다니 너무나 아쉽다. 마음 같아선 여유 있게 식사하고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가고 싶지만, 우리 부부에겐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20 킬로미터를 넘는 거리를 택시를 타다니. 정말 시간이 촉박해 비행기를 놓칠 상황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결정이다.

6시 50분 무렵 택시를 불러 타고 시내로 향했다. 그리고 7시 15분 시내에서 공항버스에 탈 수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버스 좌석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버스는 이미 만원이다. 다행히 한 자리는 남아있어서 세현이를 앉혔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나와 아내는 많은 짐을 부여잡고, 또 세현이는 잘 앉아 있나 곁눈질하며 힘겹게 서 있었다.


버스 타고 공항 가는 길 잠든 세현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버스에서 10분 넘게 지났을 무렵, 힘들었지만 웃을 일이 생겼다. 세현이가 혼자 다른 승객 옆에 앉아 있었는데, 밖 구경을 하다가 혼자 쿠션을 옆에 놓고 잠이 들었다. 아이가 이른 시간 버스에서 피곤해 잠이 든 모습이 특별한 그림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현이를 잘 아는 우리 부부에겐 아주 특별한 일이다. 세현이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이 든 모습을 이제껏 딱 두 번 봤다. 한 번은 언젠가 마트에서 자동차 카트를 타고 가다 잠이 든 적이 있다. 아마 당시 어린이집에서 외부 견학을 다녀온 후 지칠 대로 지쳤었던 거 같다. 목 받침대도 없는 자동차 카트에서 목이 뒤로 꺾일 정도로 조는 모습을 보며 당시에도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오늘, 이 어린 녀석이 쿠션을 창문에다 받치고 자고 있다. 기특하고 신기하면서도, 미안하기도 하다. 얼마나 피곤하면 저렇게 잠이 들까.

7시 45분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했다.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절차를 밟는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라이언에어이기에 다소 긴장했는데, 다행히 별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아, 입고 온 잠바랑 여타 짐을 캐리어 안에 넣는다는 걸 깜박했다. 돌이켜보면 공항에 오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급해지는 건 나이를 먹어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이들과 함께 다니다 보니 더 정신이 없다.

보안 검색 후 면세구역으로 진입한다. 탑승구에서 비행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다. 유모차를 끌고 갈 수도 없는 길이어서 유모차 두 대를 가방에 넣어 들고, 카메라 가방에 배낭까지. 온이가 계속 업어달라 해서 아내는 더 고생이다.

이런 경험 후엔 가능하면 저가 항공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항공권을 알아볼 때가 되면 그 모든 고뇌를 잊게 해 줄 만큼 저렴한 가격에 또다시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된다. 아이 없이 다니는 여행이라면 이 정도쯤이야. 하지만 또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선 비용 부담 때문에 저렴한 티켓을 찾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는 9시 25분 정시 출발했다. 연착 없이 출발해 너무 다행이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도시 부다페스트여 잠시 안녕.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 타기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현이는 여전히 피곤한지 비행기 안에서 금방 잠이 들었고, 나와 아내도 잠깐 눈을 붙인다. 잠결에 온이에게 어서 자라고 계속 이야기하지만, 온이 녀석을 도통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번 여행의 복병은 세현이의 잠이 아니라, 온이의 잠이다. 유모차에 눕히고 자라고 하면 곧장 눈을 감던 세온이는 대체 어디 간 것인가!

비행기가 베를린에 도착할 즈음 세현이를 깨웠다. 버스에서 스스로 잠이 들 정도로 피곤했을 테지만, 도저히 아이를 안고 짐을 들고 내릴 자신이 없었다. 힘겹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 그래도 베를린 Schönefeld 공항에선 이동 동선이 짧았다. 유모차를 찾아 아이들을 태우고, 베를린 시내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이동. 베를린 중앙역으로 향하는 S9 기차에 탑승했다. 온이는 여전히 잠잘 생각이 없어 보인다.                         


베를린 Schönefeld 공항의 기차역 풍경 /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 안 (2020.1. 독일 베를린)

                           

베를린에는 왜 오게 되었을까? 누군가 묻는다면, 딱히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부다페스트에서 갈 수 있는 도시 중 베를린행 항공편이 가장 저렴했던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독일에 대한 우리 부부의 특별한 애정도 큰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행 일정 속에 어떻게든 독일 도시를 껴 넣고 싶은데, 베를린이 당첨되었다고 할까. 또 그리고, 베를린이란 도시가 가진 다소 무겁고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우리 기억 속 베를린은 따스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베를린에는 두 번째 방문이다. 처음 베를린에 왔던 건 2014년 독일 뮌스터에서 지내고 있을 때였다. 당시 뮌스터에서 지내면서 독일 여러 도시를 돌아다닐 때였다. 뮌스터에서 베를린까진 기차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당시 뮌스터에서 함부르크를 잠시 들러 구경하고 베를린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함부르크엔 그저 햄버거 한 번 먹어보려고 들렀었다. 젊은 시절의 나와 아내 둘 이선 이런 여행이 가능했었다니. 지금은 도저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함부르크에 들러 햄버거 한 끼 먹고, 베를린에 가서 2박을 했다.

당시에 4월 중순이었는데, 마침 부활절이어서 문을 연 식당이 잘 없어 고생을 조금 하긴 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에 가서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는데 그 사진이 맘에 들지 않게 나와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날씨가 너무 좋았다. 특별한 일정 없이 공원에 그냥 앉아만 있어도 충분했다. 화창한 하늘과 길가의 꽃들.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가진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화창한 봄날의 이미지가 우리 부부 기억 속 베를린의 모습이다.

                                       

무언가 무거운 느낌의 베를린 중앙역 풍경 (2020.1. 독일 베를린)


1월 한겨울의 베를린은 어떤 모습일까. 여러 상상을 펼치다 보니 금세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10분 정도 도보로 이동해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는 중앙역 인근의 Jugendgästehaus Hauptbahnhof라는 명칭의 숙소를 예약했다. 우리나라 표현으로 하면 유스호스텔 같은 개념이라고 해야 할까. 호텔 같은 아늑한 느낌은 아니지만, 개별 화장실과 2층 침대가 있어 우리 가족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30분경. 혹시 체크인할 수 있을지 문의를 했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만 숙소 내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침 점심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는데, 이렇게 감사한 일이. 우리는 체크인 시간까지 기다릴 겸 점심을 먹기로 한다. 식사는 말 그대로 학생 식당 같았다. 빵과 햄 등 몇몇 종류가 있었고, 주린 배를 채우기엔 충분했다.


베를린에서 이틀간 머무를 우리의 숙소 전경 (2020.1. 독일 베를린)


식사하다 보니 세온이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 요 녀석이 자라고 해도 그렇게 안 자더니 대체 얼마나 피곤할까. 점점 이상 행동을 보인다.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 유모차에 태워 밖으로 나왔다. 일명 뺑뺑이(?)를 돌며 재우려고 노력하지만, 이젠 오기가 생겼는지 눈을 감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세온이가 떼를 부리는 사이, 나의 인내심도 점점 바닥을 드러낸다. 혼도 내보고, 짜증도 부려보고, 협박도 해보지만, 결국은 아빠가 졌다. 이제 더 어쩔 도리가 없다. 결국 나와 아내 둘 다 포기. 결국, 시간도 늦어졌겠다 낮잠은 생략하고 밤에 일찍 재우기로 했다.         

 

둘째 녀석 재우기 위해 돌던 한적한 산책로 / 베를린에서의 우리 숙소 모습, 아늑하다 (2020.1. 독일 베를린)

                                           

오후 2시 반. 체크인이 가능하다 하여 곧장 방에 올라갔다. 사실 꽤 많이 피곤한 상태라서 쉬려고 침대에 누우면 내일까지 쭉 잘 것만 같았다. 아이들에게 방에서 쉴지, 아니면 놀러 나갈지 물어보니 아이들은 아까부터 눈여겨본 숙소 1층 놀이방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간단히 짐을 풀고 놀이방으로 향한다. 그곳엔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다양한 놀잇거리가 있다. 마침 세현이가 한창 관심이 있는 BRIO 기차가 있어서 아이는 잔뜩 흥분한 채 놀이에 열중한다. 이대로면 해가 질 때까지 놀이방에서 계속 놀 수도 있겠다. 슬슬 배도 고파오고, 베를린 시내 구경도 하고 싶었던 부모는 트램을 타러 가자 아이들을 꾀어서 길을 나섰다.    


                                                      

베를린 숙소 1층의 키즈 놀이방 (2020.1. 독일 베를린)


베를린에서의 첫 목적지는 바로 알렉산더 광장(Alexanderplatz)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알렉산더 광장 역 인근의 Va Piano란 식당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그곳엔 마침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상점인 TK Maxx와 dm도 있다. 몇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기엔 알렉산더 광장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을 했다.

트램을 타고 가는 길 창밖을 보니 아직 크리스마스 마켓도 열려 있다. 해가 바뀌고도 며칠이나 지났기에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말로만 듣던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족 모두 한껏 들떴다. 잠시 내려 구경을 할까. 아내와 고민을 하다 트램에서 내릴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래, 저녁 먹고 가면 더 좋을 거야. 그렇게 합리화하며 우리는 목적지로 향한다.

Va Piano. 유럽에 올 때면 꼭 한 번 이상 들리는 이탈리안 식당이다. 2014년 가난한 유럽 살이 시절,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 종종 애용했던 곳이다. 셰프가 직접 조리하는 모습도 눈앞에서 보며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물론 대화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긴 하다. 마치 단골인 거처럼 자연스럽게 알리오 올리오, 키즈 파스타 뽀모도로, 크림 리소토를 주문했다. 아이들은 주방장이 자기 눈앞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영 신기한가 보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하는 부모 모습이 신기했으려나. 주문한 음식이 완성됐다. 셰프 혼자 세 가지 메뉴를 만들다 보니 맨 먼저 만든 알리오 올리오는 면이 굳어버려서 아쉬웠지만, 이 가격에 이 정도면 역시나 훌륭하다. 마침 식당 안에 간단한 놀이 시설이 있어, 아이들을 먼저 먹이고 그곳에서 놀도록 했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남은 음식을 마무리한다.

                                                                             

베를린에서의 첫 저녁 식사, 식당에서도 여전히 놀이 삼매경 (2020.1. 독일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Va Piano 식당의 훌륭한 화장실 시설 (2020.1. 독일 베를린)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렀는데, 유아를 위한 시설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아내와 감탄을 했다. 깔끔한 건 둘째 치고, 아이를 위한 필수용품이 완벽하게 준비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래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 아웃렛 등을 가면 다양한 용품을 제공해준다. 첫째 어렸을 때 일회용 분유를 주기도 해서 참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대체로 육아를 위한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오늘 이 단면만 보고 우리나라와 독일의 상황 전반을 비교할 순 없다. 다만, 독일이건 우리나라건 육아를 위한 시스템이 양적으로 건 질적으로 건 좋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물 밖으로 나오는 데 문제가 생겼다. 온이가 갑자기 분유를 먹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저녁 양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너무 피곤해 갑자기 분유 생각이 난 걸까. 이 상황이 웃기면서도 참 난감하다. 4살 아이가 갑자기 분유라니. 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일단 분유 병을 사러 가기로 한다. 인근 Rossmann 상점에 가니 다행히 2.99 유로 분유 병이 있어 구입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내용물을 살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일단은 물을 넣어서 주니, 요 녀석이 그것도 좋다고 먹기 시작한다. 아내와 나는 낄낄대며 웃으면서도, 너무 지쳐 빨리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이대로 크리스마스 마켓에 들리는 것은 무리다. 이제 안전하게 숙소로 복귀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번엔 첫째 녀석이 자기는 꼭 이층 기차를 타고야 말겠다고 선포한다. 그냥 왔던 대로 가면 안 될는지 아이에게 애원해보지만, 녀석은 이미 결심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기차를 기다렸다 타고 베를린 중앙역을 거쳐 숙소로 복귀. 들어오는 길에 다행히 온이는 잠이 들었다.

역시 도시를 이동하는 날은 참 힘들다.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닌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속소로 복귀한 나와 아내, 그리고 세현이까지 간단한 세면 후 침대로 향했다. 부디 푹 쉬고, 내일은 좀 더 활기찬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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