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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Oct 30. 2022

아들, 아빠도 여행이 가고 싶다

들어가는 글

2018년 8월과 2020년 1월.

한 해, 그리고 5개월.

첫 유럽 여행 후,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유럽 여행까지 기다린 시간. 그러고 보니 첫째 아들 이후 둘째 아들을 만나기까지 기다린 시간과 비슷하다.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언제나 늘 그렇듯, 우리 기억 속 17개월은 흡사 17일과 다르지 않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다.


2018년 8월 아이들과의 첫 유럽 여행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여행을 계획했다. 18년도의 여행은 참 힘든 여행이었다. 젖먹이와의 장시간 비행, 부모의 걱정이 투영된 그 많은 짐. 말썽을 일으킨 쌍둥이 유모차. 유난히 더웠던 그해 여름 날씨까지. 어쩌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마치 훈련 같은 느낌이다. 여행을 마칠 땐 우리 부부 모두 지칠 대로 지쳐, 당분간은 여행을 못 하리라 말했지만. 나와 아내는 그 말을 잊은 채 다음 여행을 꿈꾸고 있다.

여행이 내 삶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틈틈이 항공사 마일리지를 적립해왔다. 그 덕에 2018년 여행도 처음으로 유럽으로 향하는 직항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네 사람이 편도로 유럽까지 갈 수 있을 만큼의 마일리지를 다시 모았다. 그 마일리지를 가지고 2019년이 시작할 무렵, 2020년 1월 런던행 편도 항공권을 구매했다. 마일리지 항공권은 1년 전부터 예약이 가능한데 환불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예약을 할 때 부담이 크진 않다. 아이와의 여행은 언제 어떻게 여행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첫째 세현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일본 후쿠오카를 가기 위해 항공권을 예약했었는데, 여행 당일 새벽, 잠을 자던 세현이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소아과 선생님으로부터 부모 침대에서 같이 자면 안 된다는 주의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 편하자고 함께 침대에서 재우다 일이 나버렸다. 세현이 한쪽 머리가 잔뜩 부어올랐다. 즉시 여행을 취소하고, 세현이는 대형 병원에 가 CT 검사까지 해야 하는 처지였다. 물론 큰 이상은 없었고, 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지만, 당시엔 적잖이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아이와 여행을 하려고 하면, 단순 감기로도 여행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와의 여행을 위해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건 꽤 괜찮은 방법이다. 물론 마일리지로 원하는 날짜 항공권을 예약하는 일이 쉽진 않다. 그래서 일단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예약을 하고 보는 편이 낫다.


2018년 유럽 여행 아이들의 어린 모습 (2018년 독일 뮌스터, 이탈리아 로마)
2018년 유럽 여행 아이들의 어린 모습 (2018년 스위스 베른, 이탈리아 베니스)


우리는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모으고 있다.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사용해서 갈 수 있는 유럽 도시는 현재 기준 런던, 파리, 로마, 프랑크푸르트, 베니스, 바르셀로나 등이다. 지난번 여행 때는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추운 겨울, 그보다는 따듯한 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함께 여러 경로를 고민하다 런던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순전히 내가 런던에서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축구를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30대에 접어들 무렵, 교사인 내가 가끔 받았던 질문이 있다. 


"꿈이 뭔가요?"


학생들로부터, 그리고 대학원 수업 중 교수님으로부터.

이 질문은 주로 내가 해봤던 질문이지, 들어본 질문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꿈을 묻는 사람이 있었던가. 심지어 학창 시절에도 들어본 기억은 잘 없다. 하지만 누가 묻지 않아도 내 꿈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은 있다. 취업을 해보겠다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면서 말이다. 다소, 혹은 조금 많이 과장된 내 꿈에 대한 일종의 선전을 주장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교사인 나에게 주어진 꿈에 대한 질문은, 마치 "교사 그런 거 말고 네 진짜 꿈은 대체 뭐야?"라는 속삭임처럼 들렸다.


"저는 축구 감독이 되어 선수들을 지도해보고 싶습니다."


나의 대답이었다.

다들 흘려듣고 웃어넘겼지만, 나는 꽤 진심이었다. 나는 축구를 할(볼) 때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조금 과장하면 매일, 온종일 축구를 하라고 해도, 내 체력만 허락한다면 질리지 않고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선수가 되는 과정은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냥 생각뿐이었다. 나이 서른에 교직을 그만두고, 축구 감독이 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내진 못했다. 시간이 지나 후회될 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니, 이미 조금은 마음속에 후회가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정말 늦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여전히 지금도 용기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네 모임에 나가 공을 찰 수 있고, 집에 앉아 유럽의 축구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또 마음만 먹으면 직접 유럽에 가서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으로선 그걸로도 만족한다. 


2018년 여행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이제 부모도 무언가를 욕망하고, (극히 일부이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누릴 계획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아이들과 같이 유럽에서 축구 관람이라니! 아이들이 자랄수록 부모도 무언가를 욕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2년 전 유럽여행 당시 둘째 아들 세온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젠 혼자서 너무 잘 걷는다. 거의 완벽하게 대화도 가능하다. 기저귀 생활을 졸업했고, 이젠 밥돌이가 아니라 다양한 음식을 잘 먹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순전히 내 욕심에서 시작된 런던 여행 계획이지만, 아내도 예전 런던에서의 며칠 지낸 기억이 좋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그러던 2019년 8월 어느 여름날. 

여행 계획을 완전히 변경했다. 애초에 런던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만 예약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비행기를 찾아야 했다. 그즈음 항공사마다 2020년 항공 일정을 결정했고, 나는 적절한 가격대의 항공권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 검색을 이어나갔다. 유럽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찾기 위해, 유럽 온 도시를 뒤지고 또 뒤졌다. 

그러던 중 인천-부다페스트 왕복 항공권을 발견했다. 내가 생각한 편도 항공권 가격으로 왕복이 가능하단다. 그것도 직항이라니! 때마침 폴란드 항공에서 인천-부다페스트 직항 노선을 신규로 취항하면서 이벤트를 했기 때문이다. 비록 2018년 폴란드 항공에 대한 안 좋은 추억(베니스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취소되었다)이 있긴 하지만,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었다. 더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결제를 완료하고, 기존 런던행 항공권을 예약을 취소했다. 런던에는 저가항공을 이용해 다녀오면 될 일이다. 

부다페스트행 항공권을 예약하자마자 여행 경로를 정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어느 도시를 갈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지.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일차적으로 염두에 둔 부분은 동선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지난 2018년 여행에서 너무 많은 도시를 이동하느라 고생을 했던 터라, 나도 아내도 조금은 힘을 빼고 여행 경로를 짜기로 했다. 처음엔 그냥 부다페스트에서만 지내다 올까 고민도 했다.

문제는 부다페스트의 겨울 날씨가 꽤 춥다는 사실. 아내는 추위를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나도 (적어도 20대까진 겨울에도 추운지 모르고 지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추위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 더군다나 아이들을 데리고 추운 지역 여행은 도저히 무리다. 추위에 대한 고려, 축구 관람,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도시, 접근성(교통수단의 다양성과 경제성) 등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하여 여행 경로를 정하게 되었다.      


부다페스트 – 베를린 – 말라가 – 포르투 – 리스본 – 빈 - 부다페스트     


결정하고 보니 도시 이동이 너무 잦다. 안 그러려고 분명 노력했는데, 독일과 포르투갈을 다 가려고 하다 보니 일정이 꼬인다. 인 아웃 도시 부다페스트에서 6박. 독일엔 꼭 들러야 할 것만 같아서 짧게 2박. 그리고 스페인 말라가에서 3박. 포르투갈에서 5박. 항공 일정 때문에 비엔나에서 1박. 이런 일정이다. 부다페스트와 따뜻한 지역(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최대한 시간을 많이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항공 일정과 경제성을 고려했다. 왜 런던은 빠졌는가? 우리가 갈 수 있는 날짜에 런던에서 손흥민 선수 팀 경기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날짜를 맞춰 축구 경기를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여행할 도시를 선정하고 교통편을 예약하고 나면, 이제 출국 날짜를 기다리는 일뿐이다.



그동안의 여행 사진들 (2019 대만 가오슝 / 2019 일본 다카마츠)

     


그동안의 여행 사진들 (2019 일본 고쿠라 / 2019 마카오)


한 해, 그리고 5개월.

첫 번째 유럽 여행과 이번 여행 사이, 우리 가족은 몇 차례 여행을 다녀왔다. 대만 가오슝, 일본 오키나와, 시코쿠 지방, 규슈 지방, 마카오까지. 참 많이도 다녔다. 여러 장소를 여행하는 사이 아이들은 자랐고, 우리도 아이들과의 여행이 이젠 익숙하다고 느낀다. 

덕분에 이번 여행은 저번 유럽여행보다 수월하겠다고 생각했다. 세현이와 세온이는 정확히 21개월 차이다. 2018년 여행 당시의 세현이 모습이 지금 세온이와 비슷하다. 2018년 여름 여행을 하면서 “세온이가 형만큼만 커도 여행할만하겠다”라고 아내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번 여행, 세온이가 형만큼 자랐다. 이젠 어엿한 어린이 같은 세현이, 그 시절 형만큼 자란 (물론 몸집 자체는 훨씬 더 크다) 세온이를 데리고 하는 여행이 더 편할 것이라고 믿는다. 


30대 중반을 넘긴 지금,


"꿈이 뭔가요?"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여행작가라고 이야기할 것 같다. 그나마 이 쪽이 축구 감독보다는 현실성이 있어서일까? 차마 더 적극적인 용기를 내지 못하고, 이렇게나마 글을 쓰고 있는 건 조심스럽게나마 꿈을 실천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내 글쓰기에서 '작가'라고 불릴만한 자격을 하나라도 발견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자격은 없지만 이렇게 기회가 있고, 마음을 먹고 시간을 들이면 쓸 수 있는 플랫폼이 주어져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전문성 없는 내가 이렇게 볼품없는 글을 써내려 가도 누가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여전히, 이 책은 그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글쓰기의 나열이다. 아이와의 여행 일기의 모음이라고 해야 할까. 여행의 매 순간, 우리가 어떻게 아이들과 여행을 했고, 뭐가 좋았고, 뭐가 힘들었고, 그 과정에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하소연을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빠가, 어떻게든 여행이 하고 싶어 아이들을 끌고 다녔고, 그 이야기를 글로 좀 남겨보고 싶었다. 

혹시, 지금 이 대목을 읽는 누군가가 계시다면, 놀랍게도 나의 이 책이 시리즈라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부디 이 시리즈의 1편에 쓰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꼭 읽어주시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두 번째 유럽여행을 두 번째 책으로 쓰고 있는 나에게, 왜 이 책을 쓰냐고 묻는다면. 그때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한없이 부족한 글 솜씨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그때도 밝혔지만 내 책을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리라는 확신과 함께. 그래도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나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부디 아이들이 커서, 이 여행을 추억해 줄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하며 우리의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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