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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그래퍼 Oct 11. 2022

그저 즐기면 그만인 것

“어떤 목적도 어떤 의의도 없이 그저 즐기면 그만인 것, 세상에서 무엇이 그럴까?”

“바로 서핑(surfing)이다”


확신에 찬 강사의 목소리로 서핑 강습이 시작한다. 

강사는 서퍼답게 구릿빛 피부와 자유로운 영혼이 깃든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첫인상에 압도되었는데 생각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근차근 서핑을 소개한다. 


서핑은 오롯이 재미에 올인하려고 거친 푸른 파도에 뛰어든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까에 집중한다는 서핑, 그 생각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보드 종류, 재질, 소재, 타는 방법 등 다양하게 발전해왔다고 한다. 

알쓸신잡처럼 서핑의 역사를 소개해주는데, 서핑의 정확한 시초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기록으로 알려진 게 하와이 원주민이 긴 나무로 파도를 타는 모습 정도였고 그 모습을 북미지역 사람들이 보게 되면서 현대의 서핑으로 이어졌다. 

들으면 들을수록 서핑의 매력에 빠져든다. 


최근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서핑이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전 세계 내로라하는 서퍼들의 쇼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만큼 현재 서핑 문화가 꽃피우는 시기인데 이때 강습 신청을 했으니 매우 시의적절한 도전이라며 환영을 해준다.

얼마 전 동해 해파랑길을 걷다가 우연히 남애3리 해변 앞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을 봤었다. 나도 한 번쯤 서핑을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해둔 것을 실행에 옮겼을 뿐인데, 나이스 타이밍였던 것.


서핑은 사계절 할 수 있는 스포츠로 지역마다 서핑하기 좋은 파도 시기가 다르다. 동해는 겨울이 파도가 좋고 여름엔 제주도가 최적이란다. 

제주도를 갔어야 했나 싶었는데 오히려 초보들이 배우기엔 파도가 잔잔하고 수심이 낮은 여름의 동해를 추천했다.

어제까지 오던 장맛비가 딱 그치고 오늘은 적당히 흐린 데다가 파도까지 유난히 잔잔한 날이라 그야말로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서핑 배우기에 완벽했다.

매번 느끼지만, 운 좋게도 나는 여행가서 날씨 운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 모래를 밟으며 눈누난나 본격적인 강습에 들어간다. 


서핑을 하려면 테이크 오프(Take-off), 즉 보드에서 일어나야 한다. 

테이크 오프의 동작 단계는 패들링(Paddling), 푸시(Push), 업(Up)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패들링은 엎드려 누워 팔꿈치를 구부리지 않고 자연스레 수영하듯 내젓는 동작, 푸시는 요가 동작인 업독(up-dog)처럼 활 모양으로 바닥에서 팔을 펴 몸을 들어 올리는 동작, 업은 잽싸게 보드 위로 일어서는 동작이다. 

운동신경이 그리 발달한 편이 아니어서 푸시까지는 잘 따라 하겠는데 마지막 업 동작에서 무한 실패를 맛보았다. 

업 동작에서 계속 물에 빠지니 과장 좀 더해서 동해 바닷물을 혼자 다 마셔버린 것만 같았다.

코어 근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케틀벨 운동이랑 스쿼트 좀 열심히 해둘 걸, 의욕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자꾸 물에 빠져서 서핑 동작을 연습하는데 주저하고 위축되는 찰나에 강사가 응원의 한마디를 건넨다.


“물에 빠지려고 바다에 온 거잖아요. 즐겨요! 

조금 더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업까지 해낼 거예요”


물놀이하러 온 건데 조바심 낼 필요가 뭐가 있을까. 

시간은 어차피 내 편이고 잘 안되면 서핑 보드에 누워 그저 파란 바다와 하늘을 품고 쉬면 될 일이거늘. 

두려움의 벽을 조금 허물고 다시 도전!

전보다 의지대로 몸이 움직여준 탓에 딱 한번 몇 초 업 상태를 유지했다. 

어정쩡한 테이크 오프지만 잠깐이라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랄까. 


“행복이 별거냐, 하고 싶은 것 즐기면 그만이지.”


첫 서핑을 사고 없이 무사히 체험하니 용기가 샘솟는다.  얼마 전 걷기여행 중 읽었던 정세랑 소설 ‘시선으로부터’의 ‘우윤’처럼 서핑을 성공한 후 기념으로 파도 거품을 담아오고 싶어졌다. 

아직 제대로 파도를 타 보지도 못했는데도 마음은 이미 소설 속 등장인물 처럼 완벽한 파도를 타고도 남았다. 하체 코어 근육을 열심히 단련해서 다음 강습을 이어 가야겠다고 심기일전한다.

역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건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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