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칩(Memory Chip) - PART 6
민수는 자신의 집 침대에서 잠이 깼다. 눈을 떠보니 분명 본인의 방인데 구조가 달랐다. 몽롱한 시선으로 뭔가에 홀린 듯 테라스를 향해 걸어갔다.
민수는 자주 꾸던 꿈속의 여인을 다시 만났다. 아파트 테라스 의자에 앉아있는 그녀는 검은 단발머리에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민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민수는 그녀의 옆에 앉아 마주 보며 웃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민수의 아내, 혜정이었다.
갑자기 주변이 캄캄해졌다. 민수는 조금씩 땅으로 끌려들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늪처럼 민수는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민수의 아내, 혜정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에게 공격받고 있었다. 혜정을 칼로 위협하던 두 남녀는 혜정이 계속해서 저항하자 귀찮은 듯 그녀를 발로 찼다. 그리고 그들은 말했다.
“왜 이 여자뿐이지?”
위협하던 여자가 혜정의 두 팔을 못 쓰도록 뒤에서 꽉 붙잡았다. 남자는 저항하지 못하는 혜정의 배를 아무렇지 않게 칼로 쑤셨다. 혜정은 숨이 멎을듯한 소리를 냈다. 남자는 멈추지 않고 칼을 여러 번 더 혜정의 복부에 박아 넣었다. 선홍빛의 피가 마구 튀었다. 혜정은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더니 이내 멈췄다. 그런 혜정을 보며 여자는 마구 웃어댔다. 점점 초점이 없어지던 혜정의 시선은 민수를 향했다. 여전히 민수는 가라앉고 있었다. 민수는 그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그만해!’
무슨 말인지도 모를 괴성을 내었다. 하지만 그들은 민수의 외침을 들을 수 없었다. 민수가 거의 늪에 잡아먹혔을 때 얼핏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은 종현과 은정이었다.
‘으윽!’
민수는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던 민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은정이었다. 민수는 정신을 차리고 은정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몸을 일으켜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크윽”
그들은 바닥으로 넘어졌다. 민수는 여전히 은정의 목을 강하게 쥐고 있었다. 은정은 고통에 신음하며 말했다.
“그.. 그만..”
민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은정은 허리춤에서 그녀의 단검을 천천히 꺼냈다. 그리고 손잡이 부분으로 민수의 머리를 가격했다. 민수가 맥없이 쓰러졌다.
민수가 찡그리며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그의 두 손과 발은 의자에 묶여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샹들리에가 있던 거실 중앙이었다. 옆에선 은정과 노인, 아니 그는 박사 K였다. 박사 K가 서있었다.
은정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날 왜 공격했어?”
민수는 잠시 은정을 응시하다가 말했다.
“모르겠어.. 기억이 나질 않아.”
민수는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
“그 X자식 기억은 네 머리에 들어갔어? “
“응..”
민수가 의자에 묶인 채 몸을 들썩이며 말했다.
“PTSD 오는데 일단 이것 좀 풀어줘. 나 지금 멀쩡하니까..”
“안돼.”
은정은 단호하게 이어 말했다.
“네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고, 일단 물어볼 것이 있어. 제대로 대답하면 풀어줄게.”
민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돈 정말 다 썼어?”
민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아니, 다 안 썼어.”
은정은 그 자리에서 펄쩍 뛰며 기뻐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 자식이 다 써버릴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거든.”
은정은 소리치며 기뻐하다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멋쩍은 듯 다시 말을 이었다.
“크흠, 마지막 질문! 그럼 내 돈은 어디 있지?”
“우리 - 은정과 종현 - 자주 갔던 도항호수 앞 오두막에 있어. “
“좋았어. 당장 가자. “
은정은 흥얼거리며 허리춤에서 단검을 휘리릭 꺼내더니 민수의 뒤로 가 밧줄을 풀었다. 민수는 박사 K를 보았다. 박사 K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민수를 응시하였다.
민수는 살짝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박사 K도 고개를 끄덕였다. 은정이 민수를 묶은 밧줄을 다 풀고 일어섰다.
“자, 이제 가자! 선생님, 감사합니다. 여기요.”
은정은 박사 K에게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꾸벅 인사하고는 먼저 재빨리 문을 나섰다. 민수는 나가는 은정을 한 번 보고는 박사 K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모른 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 K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앞으로 자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관여할 자격이 없다네.”
“이번엔 다른 선택을 해보려고요. ”
민수는 꾸벅 인사하고는 저택을 나섰다. 저택을 나서는 민수에게 박사 K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리고.. 미안하네.”
민수는 박사 K의 말을 들었지만 대꾸하지 않고 나갔다.
은정이 어느새 차량을 저택 입구까지 끌고 와 운전석 안에서 소리쳤다.
“야! 뭘 꾸물거려? 얼른 가자! 내 돈 찾아야지!”
민수는 뛰어가며 조수석에 탔다. 그러자 바로 차량은 흙먼지를 흩날리며 저택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