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욱 Jul 11. 2020

이제 그는 내 지갑이나 다름없다

행복한 삶을 계획하는 방법

행복한 삶은 우리가 꿈꾸는 지상 최대의 과업이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한 삶을 꿈꾸고 바로 그 문제로 번뇌하다가 세상을 뜨고 만다. 지저분한 공기, 아파트의 층간 소음, 디딜 틈도 없는 만원 지하철, 말을 안 듣는 아이, 늘어만 가는 유흥업소, 파괴되는 지구. 주변의 모든 인간이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려고 앙심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방법이 없을까?


유일한 해결책은 행복한 삶을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우리 삶이 행복은커녕 불행한 이유는 애초에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꿈꾸기 때문이다. 행복해야 한다가 아니라, 행복하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행복뿐만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좋은 차를 사고 싶다, 여행 다니며 살고 싶다, 이러한 욕구에 집착하는 순간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설령 그 욕망을 달성했다고 해도 즐거움은 잠깐이다.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더 큰 욕망과 더 큰 고통이 따라오게 된다.


하루는 로더리고라는 이름의 자존감이 부족한 청년이 찾아와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선생님, 제 주변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다들 제 욕심만 차릴 뿐이고, 세상은 정말 불합리하죠. 그런데 선생님은 행복해 보여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죠? 어째서 선생님의 삶은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하죠?"


나는 로더리고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사실 내 주변에도 현명한 이로 존경할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네. 단지 내가, 그리고 자네가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지."


로더리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좋죠? 바보처럼 굴어 창피합니다만, 제가 정신이 모자라서 알아먹질 못하겠네요."


난 이해한다는 듯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시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 안에 갇혀 살지. 사회가 너무 경쟁에 매몰되어 그저 자기주장만 할 뿐 다른 사람 의견은 듣지 않는 거야. 자네도 TV에서 토론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겠지. 그 프로에서 상대방 주장에 수긍하는 토론자를 본 적이 있나? 크든 작든 어떻게든 흠집을 내기 바쁘지. 한 번은 어느 유력 정치인에게 왜 출연자들이 그렇게 자기주장만 하는지 물은 적이 있네. 그도 할 말이 있더군. 다른 편 주장에 고상하게 고개나 끄덕일 거면 토론 프로그램에는 왜 나갔느냐는 지지자들의 항의를 받게 된다는 거야. 이렇듯 정치적 행위는 해결책이 될 수 없어. 행복이라는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지. 이미 오래전에 로마의 시인 티불루스는 우리가 애인을 껴안고 있으면서도 지금은 없는 다른 애인이 그리워 한숨짓는다고 노래한 바 있지.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됐어. 이런 사회에서 행복해지고 싶다면 인간의 그런 모습을 그냥 인정해 버리면 돼. 내가 나도 못 바꾸는 데 남을 어떻게 바꾸겠나. 오래전에 몽테뉴는 실로 이해심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세. 사람들이 뭐라고 주장을 하면 반박하지 말고 "그렇군요." 하고 대답하면 되는 거야. 그게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지."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로더리고는 그렇게 말하면서 재차 물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어떻게 될까요? 이유를 더 들어야겠습니다."


"자네는 연극을 좋아할 거 같으니 연극을 예로 들겠네. 자기주장만 하는 자들은 연극을 보면서도 논리를 따지고 든다네. 남녀 주인공이 금세 사랑에 빠지는 게 너무 작위적이라는 거야. 하지만 현실성 때문에 상영 시간을 늘리면 진행이 느리다고 지루해하거나 각색이 엉망이라고 아우성을 치지. 이렇게 그 치들은 연극을 보면서도 논리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네. 그것도 자기 좋을 대로 말이야. 건 경험이 부족한 나이 어린 친구들이나 학식이 부족한 무지렁이 이야기가 아니네. 오히려 저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는 친구들일수록 더 그렇지. 연극이든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상대방이 형편없다고 단정 짓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내가 그려도 이보단 잘 그리겠다."라고 자신하는 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하지만 인간은 대개 그렇다네. 자기 생각에 심취해 다른 것은 보지 않지. 그러니 자네 주위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세.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아무리 형편없어 보여도 그것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훌륭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주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네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행복한 삶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죠? 다른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해줘야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그렇지. 요새 시끄러운 카지노 활성화 같은 문제도 그래. 상업지에 그런 건물이 들어서는 걸 무조건 반대해서는 해결되는 일이 없다네. 카지노가 생기면 괴롭다, 그렇게 생각하면 행복할 수가 없어. 어쩌면 주민 반대로 카지노 계획이 철회될 수도 있겠지. 그럼 주민들은 기쁠 테지. 하지만 그런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네. 다음엔 카지노가 아니라 모텔이 들어설 테고, 그럼 주민들은 또 투쟁해야 하지 않겠나. 문제점만 보면 행복할 수가 없어. 좋은 점은 없는지 생각해 봐야지. 결국 바뀌어야 하는 건 남이 아니라 바로 나의 관점이라네. 세상의 일은 사방으로 퍼지는 빛과 같다는 걸 명심하게. 앞으로 가는 게 있으면 뒤로, 그리고 옆으로 가는 것도 있어. 그러니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그 모든 것에서 장점을 발견하는 통찰력을 키워야 하는 거야."


"그래요, 그렇군요. 알겠어요." 로더리고가 기쁨에 차 말했다. "이제야, 드디어 알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 선생님. 저는 그동안 너무 한쪽만 보며 살았어요. 반대하고 비난하고 논쟁이나 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고 그래서 전 고통스러웠어요. 이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로더리고는 크게 기뻐하며 퇴장했다.


그가 나가자 비로소 내 마음은 평온을 되찾았다. 난 와인셀러에서 아껴두었던 프리울리의 아템즈 로제 와인을 한 병 꺼내 잔에 따랐다.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말랐다. 입에 한 모금을 넣어 혀를 굴리자 알싸한 감미로움이 입안에 돌았다. 얘기하는 내내 어찌나 이 맛이 그립던지!


방금 왔던 자는 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카지노 사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자였다. 며칠 전 반대 시위에서 그자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TV에서 보았는데, 분명 위원급 인물이었다. 그는 내가 카지노 투자자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자가 나갈 때의 태도로 보건대 이제 그는 카지노 반대 시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카지노 사업이 지역에 가져올 이익을 따지며 반대파를 설득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그는 내 지갑이나 다름없다. 그놈이 나를 잘 봐줘서 계획대로 행하기가 쉬워졌다. 인간은 겉만 정직한 자를 진짜 정직하다고 믿지. 어쨌거나 까다로운 인물 하나를 처리한 셈이다. 이제 곧 큰돈이 굴러들어 올 것이다. 난 앞으로의 일을 상상하며 웃었다. 행복한 포만감이 밀려왔다. 난 거울에 보며 환희에 차 소리쳤다. "내 행복을 위하여, 건배!"


이전 08화 아무튼 웃기는 세상이라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