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내가 역광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삼각대를 고정하던 나는 고개를 들어 아내 뒤쪽의 너른 공간을 바라보았다. 바다 위로 엷게 낀 구름이 빛을 머금은 채 하늘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아내는 그 상황이 역광을 찍기에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역광이라. 카메라 뷰파인더로 아내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곳에 그늘진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난 잠시 망설이다 역광으로 찍기는 어렵겠다고 말했다. "역광으로 찍기는 어려울 거 같아. 타이머 설정하고 당신 옆에 서면 빛이 바뀌는데, 보고 찍는 게 아니라서 어떻게 바뀔질 모르겠네. 한참 찍어봐야 할 것 같은데." 아내는 이해하는 듯했지만 약간의 실망감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 후 내가 가끔 역광으로 사진을 찍을 때면 아내는 "그때 바로 이런 사진을 찍어 주길 원했던 거야." 하며 집어 주곤 했다.
아내가 역광으로 찍어주길 바랐던 사진은 결혼식 때 쓸 사진이었다. 당시 우리는 셀프로 웨딩 촬영을 하고 있어서 직접 사진을 찍어야 했고, 둘이 함께 나오는 사진은 리모컨을 쓰거나 타이머를 설정하여 예측 샷을 찍어야 했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 역광을 나오게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진을 골랐다. 아직도 난 액자에서 그 사진을 빼놓지 않았다. 아내는 결혼식이 끝난 이후로는 결혼사진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액자를 꺼내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나와 달리 아내는 물건이나 도구에 관심을 보이는 일이 드물었다. 뭔가를 하더라도 나만큼 빠져들지 않았다. 아내에겐 어떤 거리가 있었다. 아마도 심리적인, 방어적인 무언가가. 궁금했지만 물어보아도 소용없는 일이라 묻지 않았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 아내가 지닌 심리의 기저에는 내 몫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쉽게 물드는 존재니까. 내가 만들어 낸 어두운 그림자가 아내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2.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 소설 <여학생>엔 몇 장의 사진이 담겨 있었는데 사진마다 빛이 가득했다. 완전한 역광은 아니었지만 그런 분위기를 충분히 살린 사진들이었다. 주말 아침, 잠에서 막 깨어 눈을 떴을 때 창문으로 쏟아진 빛이 눈앞을 가득 감싼 듯한 느낌의 사진들. 선명하지 않은, 엷은 안개가 낀 듯한 사진.
<여학생>을 읽다가 문득 아내의 그 말을 떠올렸다. "역광으로 찍어 줄 수 있어?" 아내가 빛으로 가득한 우리 사진에서 무엇을 읽어내고 싶었는지 궁금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인생의 2막이라고 부를 만한 경계를 앞둔 우리가 소녀와 소년이라 불렸던 시절의 감정을 거의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불투명한 빛만큼이나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우리의 사진에서 찾아보고자 한 것일까? 난 묻지 않았다. 아내는 단순한 태도가 좋다고 믿고, 그런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래서 "뭔가 화사하잖아."라거나 "그냥 한 말인데."라고 대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에게도 소녀 시절이 있었다. 여학생이라고도 불리던 시절. 난 그 시절을 모른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내가 아는 아내는 그저 조각에 불과했다. 아내에게도 낭만시를 암송하던 시절이 있었을까? 버스 안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을까? 우리는 우리가 남다르다는 걸 깨달을 때, 그런 남다름을 지적받을 때, 그것 때문에 계속 바보 취급당할 때, 그래서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빠질 때, 그런 상처가 유아기부터 오래 지속될 때, 세상에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때 우리는 우리를 방어하고자 단순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 그런 상처를 잊게 될 때쯤, 우리는 우리가 원래 단순한 사람이었다고 믿게 된다.
나도 아내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단순명료한 사람. 그런데 아내가 역광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을 때, 아내가 이런 사진을 바란다고 했을 때, 난 아내에게 감춰져 있던 은밀한 기호를 엿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 역시 "그렇게 하지마."가 아니라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라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한 것 아닐까? 심지어 남편에게서도.
3.
빛은 필요하다. 그런데 종류가 다른 빛이 있었다. '안 돼'가 날카로운 빛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면, '어떨까'는 흩어지며 감싸는 빛으로 희미한 경계를 만들어 냈다. 역광이 만들어 내는 희미한 경계. 그림자마저 희미하다. 내가 옆에 서더라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다. 아내는 역광으로 찍은 사진에서 그런 이미지를, 그런 시절을, 그렇게 다가올 미래를 읽어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흩어지는 빛이 물안개처럼 우리 주위를 감싼다. 그러자 이분법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우리가 완전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은신처가, 그때 그려 보던 미래가 자신을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