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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Mar 24. 2024

구례 화엄사를 찾아서


구례 화엄사 오르는 길은 승용차가 거북이걸음을 하고 사람이 인산인해다.

"오늘 무슨 행사날입니까?"

"아닙니다. 화엄매를 보러 오시는 분들입니다."

늘 한 번 가 보고 싶던 곳, 화엄사!

오늘따라 파란 하늘마저 설렘을 배가시킨다.

화엄매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평일에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을까 갸웃 둥 하면서도 기대에 부푼다.

경내에 들어서자 커다란 홍매 한 그루에 사람들이 둘러서서 앵글을 맞추느라 포즈가 갖가지다. 허리를 뒤로 젖히고 림보자세를 취한 사람, 숫째 뒤로 누워서 하늘에다 포커스를 맞추는 자, 꽃과 기왓장과 하늘과 뒷나무까지 넣으려는 욕심쟁이, 눈까지 애꾸가 되어 입까지 실룩거리는 초보까지 각양각색이다.

이 홍매는 카메라 세례를 억만 번은 받았을 것 같다. 기념 촬영은 꼭 나무밑에서 해야 하는지, 커플들의 꽁냥꽁냥 포즈로 인해 대기 줄은 더욱 길어진다.


일단 우리는 참배하러 대웅전에 먼저 들린다. 삼 배를 하면서 초이기적인 초개인적인 발원 기도를 하며,   

너무 세속적이라는 생각에 설핏 썩소가 나온다. 어쩌겠는가. 나도 하나의 필부필부일 뿐일 테니.

홍매 한 그루에 각도를 이리저리 맞춰보며, 아름다움에 젖어든다. 한편 이 한그루를 보러 이렇게 몰려드는 국민의 고운 정서가 고맙고, 그들의 여유로움이 뿌듯함으로 밀려온다.


경내를 휘휘 돌아보고 각황전 왼쪽 108 계단을 오르려니 숨이 차서 쌕쌕 휘파람이 나온다. '이것쯤이야'라는 최면을 걸고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네 사자가 삼층석탑을 받치고 있다. 주위에 빙 둘러앉은 불자들이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 중이다. 모두 무엇이 저리도 절실한지 함께 숙연해진다. 삼월 중순이라 한들 아직은 꽃샘바람이 귓전을 훑고 지나가는 차가운 날씨다. 저렇게 맨땅에 앉아서 무념무상하기엔 냉기가 사나운데, 꿈쩍않는 그 인내는 무엇일까. 저리도 치열하게 기도 중인 분들을 보니, 나는 너무 대충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반성도 된다.  

그러나,  나 지금 행복하고, 나 지금 보람찬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멀리 지리산 자락을 넋 놓고 바라볼뿐이다.

지리산에 둘러싸인 화엄사의 가장 높은 곳, 네 사자 삼층 석탑에서 탑돌이를 하며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영혼의 광합성을 한다.


탑돌이를 세 번 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지킴이 소나무 운치가 예술이다. 어쩜 저리도 멋지게 자랐을까. 인위적이 아닌 구부림과 뻗침과 기울기가 더욱 멋스럽다. 어느 화가가 저런 구도의 작품을 그려낼 수 있을까. 

솜씨없는 내 기술로 저 소나무의 구도를 망치지나 않을까 여러 컷 시도해 본다. 


경내를 빠져나오니, 마침 택시 한 대가 대기하고 있다. 다리도 아픈데 안성맞춤이다. 기도빨인지 오늘은 머피의 법칙이 얼씬도 못한다. 우리는 구례터미널로 직행하여 터미널 건너편 코다리찜 집을 향하여 허겁지겁 허기를 달래러 들어간다. 소개받은 맛집답게 40cm 넘는 대짜 코다리 세 마리가 식탁 반을 차지한다. 일단 시각적인 만족도가 별이 다섯 개다. 함께 나오는 우거지도 무척 연하고 간이 잘 배서 만점이다.가래떡은 포만감을 고려하여 킵해두었다가 결국 못 먹었다. 코다리도 너무 커서 다 먹지 못했다. 


이 포인트에서 감동의 순간이 왔다. 일행 중 한 분이 농경시대 아버지를 떠올리며, 지게에 볏단을 산더미처럼 지고 나르시다가 눈앞에 벼 이삭이 떨어져 있으니 신발을 벗고 엄지와 검지 발가락으로 이삭을 집어 올려 주머니에 넣고 다시 출발하는 아버지를 뵙고 나서는 낟알을 절대 못 버리고 밥도 절대 못 버린다는 거다. 결국 가래떡을 포장해 달라고 부탁한다. 버리면 환경 오염이고, 쌀이 아깝다는 거다. 환경 지킴이에다 검소함까지 겸비한 그 선배가 훨씬 크게 보이고 존경하게 된다.  또 한 수 배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만감에 괴로우면서도 커피를 마시는 우를 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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